26년 차 간호사의 생생한 고백, ‘나는 아직 사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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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병원 양은미 간호사, 치열한 의료 현장의 희로애락 담은 에세이 출간으로 묵직한 울림 선사

[위키트리 전남광주특별시 취재본부 노해섭 기자]대학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 그리고 수술실은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교차하는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전남대병원 양은미 간호사
전남대병원 양은미 간호사

밤낮이 수시로 바뀌는 고된 3교대 근무와 예고 없이 울려 퍼지는 야간 콜(Call) 호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긴박한 진료 현장 속에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간호사들은 매일같이 ‘이곳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버틸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최근 출간되어 의료계 종사자들은 물론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공감과 강렬한 울림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에세이 ‘나는 아직 사직하지 않았다’는 바로 이처럼 숨 막히는 생사의 현장에서 무려 2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전남대학교병원 소화기센터 양은미 간호사의 아주 솔직한 고백이자 눈물겨운 기록이다.

◆ 펜으로 눈물을 닦으며 써 내려간 26년의 생생한 병동 기록

양 간호사는 이번 에세이를 출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과도한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남들처럼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이나 여행을 떠나는 대신 오롯이 나만의 ‘기록’이라는 방법을 조용히 택했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병원에서 상처받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밤새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고통스럽고 외로운 순간들을 하나하나 활자로 꾹꾹 눌러 담아 글로 적어 내려갔다. 언젠가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고 방황할 후배와 동료 간호사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내 진솔한 이야기를 전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퇴직 후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할 때 강의 자료로 쓰기 위해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그녀의 생생한 경험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했고, 동시에 다채로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결국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대한민국 25만 간호사들에게 작게나마 따뜻한 위로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한데 모여 마침내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사직의 유혹과 버텨야 할 현실적 이유의 절묘하고 유쾌한 대비

이 책은 목차에서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1부 ‘사직하고 싶을 때’와 2부 ‘사직하기 싫을 때’라는 매우 직관적이고 선명한 대비는 현직 간호사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양 간호사 역시 임상에 갓 뛰어든 3년 차 시절,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 찾아온 5년 차 슬럼프, 심지어 베테랑 소리를 듣는 22년 차가 된 순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었기에 이처럼 현실 밀착형 목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책을 통해 환자나 보호자, 혹은 동료들에게서 받은 날 선 말의 상처들, 견디기 힘든 인격적인 모욕, 그리고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병원 시스템의 장벽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좌절했던 뼈아픈 순간들을 조금의 가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동시에 사학연금이라는 든든한 노후 보장,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해외 연수 기회,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건강검진 등 ‘힘든 시간을 버텨내면 비로소 얻게 되는 현실적인 결실’들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수술장과 소화기센터 등 험난한 부서를 두루 거치며 켜켜이 축적된 의료인으로서의 넓은 시야와 대체 불가능한 고도의 전문성이야말로 억만금을 주고도 결코 살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임을 긍정적으로 표현하여 짙은 여운을 남긴다.

◆ 감염병 병동부터 해외 오지까지, 가슴속에 새겨진 찬란한 보석들

그녀가 묵묵히 걸어온 26년간의 간호사 생활에는 눈물과 한숨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보석 같은 감동의 순간들이 페이지 곳곳에 가득 채워져 있다.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최일선 감염병 전담 병동에 전격 투입되어 두꺼운 방호복과 N95 마스크를 쓴 채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환자들을 돌봤던 숭고한 기억, 덥고 열악한 방글라데시 해외 의료봉사 현장에서 안타까운 기형을 가진 현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마주했을 때의 뭉클함 속에서도 그녀는 결코 긍정의 힘과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을 잃지 않았다.

감염병이라는 역사적인 위기 현장에서 직접 환자의 생명을 돌본다는 남다른 자부심은 육체적인 괴로움을 씻은 듯이 지워냈고, 오히려 두 발로 굳건히 서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의 건강한 몸과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주말인 토요일 한밤중, 다급한 응급 콜을 받고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가 피를 왈칵 쏟아내던 위급한 환자의 지혈술을 무사히 마친 후, 함께 사투를 벌였던 의사가 “이 환자는 온전히 선생님이 살리신 겁니다”라며 모든 공을 그녀에게 돌렸던 짜릿한 한마디는 2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사직은 맨 나중에"… 쉼 없는 도전이 빚어낸 따뜻하고 현실적인 멘토링

주말이나 휴일에도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쉼 없이 새로운 배움과 낯선 도전을 끈질기게 이어가는 타고난 기질 덕분에 책 출간은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이라는 이색적인 경험까지 섭렵한 그녀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사직이라는 험난한 갈림길에 서서 밤잠을 설치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사랑하는 후배 간호사들을 향해 정중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인생의 조언을 아낌없이 건넨다.

양 간호사는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은 푹신한 꽃길이 아니라 여기저기 찔리는 험난한 가시밭길에 가깝습니다. 당장 숨이 막혀 병원을 뛰쳐나간다고 해서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렇기에 사직을 모든 문제의 유일하고 완벽한 해결책으로 성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견디기 힘든 일과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픈 말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어떻게든 나 자신을 굳건히 지켜내는 내면의 노하우부터 차근차근 찾았으면 합니다.

부디 사직서는 맨 나중으로 미뤄두고, 거친 파도 속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부터 먼저 단단하게 만드세요”라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당부한다. 한편, 후배들에게 든든한 등대가 되어주고 있는 그녀는 향후 의료 현장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에피소드를 다룬 감동적인 차기작과 더불어, 병원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의료진과 환자 간의 의사소통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돕는 대학 교양서적 집필에 새롭게 도전할 계획을 밝히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