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어려운 아이들 감싸주던 교사, 마지막 순간에도 '선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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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교단의 헌신, 마지막까지 5명의 생명을 살리다
두 번의 뇌혈관 질환을 이겨낸 교사, 결국 선택한 나눔

26년 동안 아이들을 진심으로 보살피며 교단을 지켜온 50대 초등학교 교사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은 평생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을 떠올려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양성우 씨는 마지막 순간 심장과 폐, 간, 양측 신장을 5명에게 나누며 또 한 번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6일 제주한라병원에서 양성우 씨(52)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과 폐, 간, 신장 양측을 기증해 5명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전했다고 20일 밝혔다. 양 씨는 장기뿐 아니라 인체조직인 피부도 함께 기증했다.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려 했던 교사

양 씨는 제주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2000년 서귀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뒤 26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단을 지켰다.

그가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은 단순히 수업을 가르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폈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직접 먹을 것을 챙겨줬다. 집을 나간 학생을 직접 찾아 나서는 일도 있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눈여겨보고 먼저 손을 내미는 교사였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의 사정을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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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마음은 양 씨 자신이 큰 병을 겪은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양 씨는 2024년 공모를 거쳐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결국 교장직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아이들을 다시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재활에 힘쓴 끝에 2025년 9월에는 다시 평교사로 교단에 복귀했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퇴근 후 치료를 받으면서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올해 6월 다시 병가를 내게 된 뒤에도 학생들과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은 이어졌다. 치료와 운동을 계속하며 몸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교단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아이들 곁을 비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의 뇌혈관 질환…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양 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2024년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치료를 받았고 이후 상태가 다소 호전됐다.

하지만 올해 4월 말 다시 뇌경색 초기 진단을 받았다. 재활을 이어가던 중 7월 31일 갑작스럽게 다시 쓰러졌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의료진은 수술과 치료를 이어갔지만 양 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뇌사 상태에 이르렀고, 가족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양 씨가 평소 보여준 삶의 모습이 있었다.

아내 강산주 씨는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며, 의식이 있었다면 장기기증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장기를 내어주어 생명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인 역시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게 가족의 생각이었다.

장기기증은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선택이다. 가족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이지만,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가치관과 뜻을 바탕으로 마지막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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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된 마지막 길

양 씨는 가족에게도 다정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빠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두 아들과 산과 바다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과 맺은 인연도 소중히 여겼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갔고, 학교에서도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됐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길에는 고인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제자와 동료 교사, 학부모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발인식에는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오랜 시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의 마지막 길을 제자와 교육계 동료들이 함께 배웅한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수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든 시기에 먼저 손을 내밀어준 어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던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흔적은 교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양 씨가 돌보고 가르쳤던 아이들은 이제 성장했지만, 마지막 길에 찾아온 제자들의 모습은 그가 교사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줬다.

아내 강 씨 역시 마지막 인사를 통해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강 씨는 남편에게 사랑해주고 예뻐해줘서 고맙다며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좋아하던 축구를 하고 마음껏 여행하며 웃으면서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아들 역시 다정했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가족은 고인이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생명을 나누고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기증자 양성우(왼쪽) 씨와 아내 강산주 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기증자 양성우(왼쪽) 씨와 아내 강산주 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교단에서 시작된 ‘나눔’, 마지막에는 생명으로

양 씨가 평생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은 거창한 가르침만은 아니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를 챙기고, 혼자 지내는 학생에게 먼저 다가가고, 집을 나간 아이를 직접 찾아가는 일처럼 눈앞의 한 사람을 살피는 행동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같은 방식의 나눔이 이어졌다. 이번 장기기증을 통해 5명의 환자가 심장과 폐, 간,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피부를 기증하면서 인체조직 기증에도 참여했다.

교사로서 26년간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줬던 양 씨의 마지막 선택은 생명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한 사람의 교직 생활이 수많은 제자의 기억에 남은 데 이어, 장기기증을 통해 이름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양 씨가 26년간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핀 데 이어 마지막 순간 5명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교단에서 나눈 따뜻한 마음이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의 삶 속에서도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