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부터 국가대표 감독까지…한국을 '우승'까지 이끈 야구계 큰 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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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첫 세계선수권 우승 이끈 ‘야구 원로’

한국 야구의 원로 어우홍 전 감독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선수와 지도자로 오랜 세월 한국 야구 발전에 힘을 보탠 고인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한국 야구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날 어우홍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 선수로 활동한 뒤 아마추어와 실업야구 지도자로 후배들을 길러냈고, 프로야구 감독과 야구계 원로로도 활동하며 한국 야구의 성장 과정에 함께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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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로 시작해 야구 지도자로

어우홍 전 감독은 동래중학교에서 투수로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동래고등학교와 성균관대를 거쳤으며 조선전업, 남선전기 등 실업야구단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지도자로 변신해 아마추어와 실업야구 현장에서 후배 양성에 힘썼다. 당시 한국 야구는 지금처럼 프로야구가 자리 잡기 전이었고, 실업야구와 국가대표팀이 한국 야구의 중심 역할을 하던 시기였다.

어우홍 전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통해 여러 후배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김응용, 강병철, 허구연, 김용희 등 이후 한국 야구계에서 이름을 알린 인물들도 그의 지도 아래 성장한 제자들로 꼽힌다.

특히 그의 이름을 한국 야구사에 뚜렷하게 남긴 순간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거둔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

10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한국 야구를 위해 헌신해온 어우홍 야구원로의 시구와 함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우승 주역이었던 KBO 김재박 경기운영위원이 포구에 나서고 있다. 1931년 부산 출신의 어우홍 감독은 조선전업과 한국운수 등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이후 부산상고, 경남고, 동아대 감독을 거치며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또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 국가로는 첫 우승을 일궈냈으며, 그 결과 체육훈장 기린장(1982), 제23회 눌원문화상 체육상(1982),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1983)을 잇달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4.11.10/뉴스1
10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한국 야구를 위해 헌신해온 어우홍 야구원로의 시구와 함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우승 주역이었던 KBO 김재박 경기운영위원이 포구에 나서고 있다. 1931년 부산 출신의 어우홍 감독은 조선전업과 한국운수 등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이후 부산상고, 경남고, 동아대 감독을 거치며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또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 국가로는 첫 우승을 일궈냈으며, 그 결과 체육훈장 기린장(1982), 제23회 눌원문화상 체육상(1982),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1983)을 잇달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4.11.10/뉴스1

1982년 서울에서 만든 ‘세계 정상’

어우홍 전 감독은 1981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

당시 대표팀에는 김재박, 최동원, 한대화, 선동열 등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포진했다. 한국은 대회에서 강한 전력을 앞세워 정상에 도전했고, 결승에서는 일본과 맞붙었다.

결승전은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은 명승부였다. 한국 대표팀은 일본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고,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어우홍 전 감독에게도 이 우승은 지도자 경력의 정점이었다. 그는 당시 대표팀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으며,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했다.

한국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는 점과 한일전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면서 당시 우승은 한국 야구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사건으로 평가됐다. 지금처럼 국제대회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국가대표팀의 세계선수권 우승은 야구계뿐 아니라 체육계 전체에서도 큰 의미를 가졌다.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신한은행 마이카 KBO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에 나선 야구원로 어우홍 감독이 그라운드에 들어서고 있다. 어우홍 감독은 1982년 국가대표 감독 시절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8.11.4/뉴스1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신한은행 마이카 KBO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에 나선 야구원로 어우홍 감독이 그라운드에 들어서고 있다. 어우홍 감독은 1982년 국가대표 감독 시절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8.11.4/뉴스1

MBC 청룡·롯데 자이언츠 감독도 역임

국가대표팀에서 성과를 거둔 어우홍 전 감독은 이후 프로야구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 MBC 청룡 감독을 맡았고, 1988년부터 1989년까지는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여러 팀을 이끌며 프로 지도자로 활동한 것이다.

KBO리그 통산 감독 성적은 177승이다.

프로야구 감독으로 활동한 기간은 국가대표팀과 아마추어 지도자 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한국 야구가 아마추어 중심에서 프로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던 과정에서 지도자로서 현장을 경험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후 현역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야구계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어우홍 전 감독은 1991년 초대 일구회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KBO 총재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KBO 규칙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KBO 원로 자문단에서도 오랜 기간 활동하며 야구계의 주요 현안에 의견을 내고 후배 지도자와 선수들을 지원했다. 그의 KBO 원로 자문단 활동 기간은 1991년부터 2026년까지로 기록됐다.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18 제6회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날 행사'에서 최고의 선수상을 수상한 두산 김재환(가운데)이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구원로 어우홍 감독, 김재환, 이순철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 2018.12.6/뉴스1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18 제6회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날 행사'에서 최고의 선수상을 수상한 두산 김재환(가운데)이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구원로 어우홍 감독, 김재환, 이순철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회장. 2018.12.6/뉴스1

95세까지 이어진 한국 야구와의 인연

어우홍 전 감독의 야구 인생은 선수에서 지도자로, 다시 야구 행정과 원로 역할로 이어졌다.

선수 시절에는 투수로 그라운드를 누볐고, 은퇴 후에는 후배를 키우는 지도자가 됐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뒤에는 프로야구 감독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야구계의 원로로서 한국 야구의 발전 과정을 지켜봤다.

특히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 야구가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실업야구가 중심이던 시절부터 국가대표팀의 국제대회 도전,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프로야구의 성장까지 한국 야구의 주요한 변화를 현장에서 함께했다.

후배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쳤고, 훗날 한국 야구를 이끌게 된 여러 인물을 배출했다는 점도 그의 경력을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10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한국 야구를 위해 헌신해온 어우홍 야구원로가 시구하고 있다. 1931년 부산 출신의 어우홍 감독은 조선전업과 한국운수 등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이후 부산상고, 경남고, 동아대 감독을 거치며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또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 국가로는 첫 우승을 일궈냈으며, 그 결과 체육훈장 기린장(1982), 제23회 눌원문화상 체육상(1982),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1983)을 잇달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4.11.10/뉴스1
10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한국 야구를 위해 헌신해온 어우홍 야구원로가 시구하고 있다. 1931년 부산 출신의 어우홍 감독은 조선전업과 한국운수 등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이후 부산상고, 경남고, 동아대 감독을 거치며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또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 국가로는 첫 우승을 일궈냈으며, 그 결과 체육훈장 기린장(1982), 제23회 눌원문화상 체육상(1982),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1983)을 잇달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4.11.10/뉴스1

어우홍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 야구의 초창기와 성장기를 현장에서 경험한 원로 지도자 가운데 한 명도 역사 속으로 남게 됐다.

KBO는 어우홍 전 감독의 한국 야구 발전에 대한 공로를 기려 KBO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KBO장이 결정된 것은 지난해 9월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 올해 8월 15일 별세한 백인천 전 감독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백인천 전 감독은 지난 14일 천안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심폐소생술을 통해 혈압과 맥박이 돌아왔지만 상태가 위중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15일 오전 끝내 별세했다.

어우홍 전 감독의 빈소는 분당 제생병원 영안실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오전 5시30분이며 장지는 용인평온의숲이다.

한국 야구가 세계 무대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던 1982년. 그 역사적인 순간의 지휘봉을 잡았던 어우홍 전 감독은 95년의 삶을 마치고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한국 야구의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