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결혼, 2014년 이혼, 2019년 재혼... 김민석 가정사에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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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낙선·피선거권 제한 넘은 김민석
18년 광야생활 딛고 여권 잠룡 거듭나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86운동권 그룹의 대표 주자가 여권의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떠올랐다. 20대에 정계에 입문해 최연소 국회의원에 오른 뒤 탈당과 낙선, 피선거권 제한으로 이어진 오랜 부침을 딛고 국정 2인자에 이어 집권 여당 대표 자리까지 거머쥔 그의 인생 역정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냈다. 199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민주연합당 통합에 참여하며 '민주 통합의 첫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 나이로 최연소 의원에 당선됐고,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김 전 대통령의 총재 비서실장으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38세에 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등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했다. 다만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김 대표는 2002년 10월 노무현·정몽준 대선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단일화를 주장하며 당을 떠난 바 있다. 이 탈당이 두고 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도 경쟁자의 공세 소재로 소환됐을 정도다. 그와 경쟁한 정청래 후보는 TV 토론회 등에서 이른바 '후단협 사태'를 고리로 김 대표를 압박했다. 김 대표는 "후보 단일화와 탈당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8년 봉하마을에서 공식 화해가 이뤄졌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탈당 이후 김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와 중국 칭화대에서 유학하며 야인 생활을 했다. 2008년 당 최고위원에 뽑히며 재기했지만, 정치자금법 사건으로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시련을 다시 겪었다. 2014년 원외 정당인 '민주당'을 창당해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2년 뒤 추미애 당시 대표 시절 통합 작업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재입성한 뒤 22대 총선에서 4선 고지를 밟았다.
김 대표는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며 친명계로 부각됐다. 이재명 지도부 1기에서 정책위의장을, 2기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며 친명계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이 시기 윤석열 정부의 계엄 시도를 예고해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 승리 뒤 이재명 정부 첫 국무총리에 발탁된 김 대표는 '새벽 총리'를 자처하며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방미 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을 만났고, 올해 3월부터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대응한 정부 비상경제본부장을 맡았다. 이 대통령은 김 대표의 총리 임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정말로 크게 국정에 도움이 됐다"고 치하했다.
김 대표의 개인사도 오랜 부침과 맞닿아 있다. 그는 1993년 김자영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두 사람은 화려한 학력으로 한때 '스펙 종결 부부'로 화제를 모았다. 김 대표는 서울대와 컬럼비아대, 하버드 케네디스쿨 등에서 공부했고, 김 전 아나운서는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김자영 전 아나운서는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가족오락관' 등을 진행했으며, 방송사를 떠난 뒤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20여 년의 결혼 생활 끝에 갈라섰다. 김 전 아나운서가 2014년 10월 이혼 소송을 냈고, 2개월 뒤 김 대표가 이혼에 합의하면서 그해 12월 법원 조정으로 이혼이 성립됐다. 이혼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후 2019년 12월 12일 이태린 여사와 재혼했다. 두 사람은 같은 교회에 다니며 새벽 기도를 함께한 사이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재혼 소식을 알리며 "알고 지낸 지 몇 해 됐는데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의 제 모습을 지켜보고 붙잡아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 엄마와는 좋은 친구로 남았고, 아이들도 아빠의 새 출발을 축하해줄 만큼 늠름하게 커줬다"고 전했다. 대중 노출을 자제하는 내조형으로 알려진 이 여사는 이번 당 대표 경선 기간에 전남 진도군을 찾아 전통시장 상인들을 만나고 지역 당원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남편을 지원했다.
전날 대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는 선호투표를 반영한 최종 득표율 54.08%로, 45.92%를 얻은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3위 송영길 후보를 1순위로 찍은 유권자의 2순위 표를 상위 후보에게 배분하는 선호투표제가 적용됐다. 김 대표는 순회경선 권리당원 투표에서 누적 49.91%로 1위를 달렸고, 이날 대의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까지 합산해 승부를 마무리했다. 함께 지도부를 꾸릴 최고위원에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후보가 선출됐다. 당선 가능성이 거론되던 친명계 김용 후보는 득표율 15.26%로 6위에 그쳐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김 대표의 임기는 2028년 8월까지 2년이다.
김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18년 광야 생활을 지켜봐 준 벗들 앞이라 울컥하다"며 탈당 이후의 세월을 광야에 빗댔다. 이어 민생 정치(Affordability)와 확장 정치(Broadening), 유능한 정치(Competence)를 내건 이른바 'ABC 플랜'을 제시하며 중도·보수층까지 아우르는 구조적 다수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김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전임 정청래 지도부의 '악수 거부'로 상징되던 국민의힘과의 대치 국면에 변화가 생길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취임 하루 뒤인 18일 국회에서 이 대통령의 축하 난을 들고 찾아온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상견례를 하고 긴밀한 당청 관계를 강조했다. 김 대표는 "벽이 없는 원팀으로 소통이 이뤄지겠다는 기대와 책임감을 갖는다"고 말했고, 강 실장은 "이제 모두 하나가 돼 민주당을 잘 이끌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김 대표는 이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