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록, 몸값 9.8조서 4.95조로 반토막…엔비디아는 인재 빼가고 투자자로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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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록, 3,500억 투자 유치…엔비디아도 참여, 몸값은 반년새 반토막
창업자 넘겨준 AI 반도체사, 네오클라우드로 방향 틀어 재기 나서

그록, 몸값 9.8조서 4.95조로 반토막…엔비디아는 인재 빼가고 투자자로 합류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그록, 몸값 9.8조서 4.95조로 반토막…엔비디아는 인재 빼가고 투자자로 합류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AI 추론(inference) 기업 그록(Groq)이 3억 5,000만 달러(약 4,953억원, 1달러 1,415원 기준)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고 8월 17일(현지시각) 밝혔다. 투자는 기술투자사 디스럽티브(Disruptive)가 주도했고, 엔비디아(Nvidia)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번 라운드로 그록의 기업가치는 35억 달러(약 4조 9,525억원)로 책정됐다. 지난해 9월 69억 달러(약 9조 7,635억원)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그록은 이 자금으로 엔비디아 가속 컴퓨팅을 활용한 중대형 클러스터 수요 고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6.9조에서 3.5조로, 몸값이 반토막 난 사정

그록은 원래 엔비디아와 경쟁할 자체 반도체 LPU(언어처리장치, language processing unit)를 개발해온 AI 반도체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지난해 엔비디아가 그록의 LPU 기술에 대해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계약 규모는 약 200억 달러(약 28조 3,000억원)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지 않는 대신 필요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조나단 로스(Jonathan Ross)를 비롯한 핵심 인력 다수를 데려갔다. 로스는 구글에서 텐서 칩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핵심 팀을 잃은 그록은 공동창업자 더그 와이트먼(Doug Wightman)이 최고경영자를 맡아 새 경영진을 꾸렸다. 회사 측은 이번 밸류에이션 하락을 다운라운드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엔비디아 라이선스 계약 이후 새로운 버전의 그록에 대한 새로운 밸류에이션을 설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 빼간 엔비디아, 이번엔 투자자로 합류 / AI 생성 이미지
인재 빼간 엔비디아, 이번엔 투자자로 합류 / AI 생성 이미지

인재 빼간 엔비디아, 이번엔 투자자로 합류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엔비디아의 참여다. 불과 몇 달 전 그록의 핵심 기술과 인력을 흡수해간 회사가 이번엔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디스럽티브 창업자이자 그록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n)을 맡고 있는 알렉스 데이비스(Alex Davis)는 “이토록 중요한 시점에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추론은 의심할 여지 없이 AI 인프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계층이 될 것”이라며 “우리 팀은 LPU를 대규모로 운영해온 독보적 경험을 갖고 있고, 차세대 AI가 요구하는 성능과 효율, 신뢰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스는 “그록을 세계 최고의 AI 추론 클라우드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우호적인 추론 공급사를 확보하는 동시에, 재건된 그록의 지분까지 챙기는 구조라는 해석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코어위브(CoreWeave), 람다(Lambda), 네비우스(Nebius) 등 여러 네오클라우드(neocloud, GPU 기반 AI 인프라를 임대 제공하는 클라우드 사업자) 업체에 GPU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지분 투자까지 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반도체 회사에서 네오클라우드로, 방향을 튼 그록

핵심 인력을 잃은 그록은 자체 칩 설계 대신 엔비디아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사업자로 방향을 바꿨다. 6월에 6억 5,000만 달러(약 9,198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이 전환의 첫 단계를 밟았고, 이번 3억 5,000만 달러가 두 번째 단계다. 그록은 현재 북미, 유럽, 중동, 아시아태평양에 걸쳐 데이터센터 13곳을 운영하며 개발자 600만 명 이상과 포춘 500대 기업, 수천 곳의 ‘AI 네이티브’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록의 추론 클라우드는 매주 수조 개 단위의 토큰을 처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록은 전력 용량을 54메가와트에서 2027년까지 200메가와트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늘어나는 추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PYMNTS는 학습(training)은 한 번 또는 간헐적으로만 이뤄지는 반면 추론은 사용자가 AI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때마다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모델이 매달 수백만 건의 추론 요청을 처리해야 하며 요청마다 계산 자원과 지연시간, 비용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뜨거운 추론 시장, 그록에 남은 숙제

AI 기업들이 하루에도 수백만 건씩 추론 요청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추론은 AI 인프라의 핵심 비용 요인으로 떠올랐다. 다만 네오클라우드 사업이 장기적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코어위브는 최근 2분기 매출이 크게 늘고 메타, 앤트로픽 등과 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투자자들은 높은 자본지출과 부채 의존도, 빠르게 감가상각되는 하드웨어에 대한 노출, 성장을 현금흐름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여전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쟁 구도도 만만치 않다. 추론용 반도체 스타트업 프랙타일(Fractile) 등은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유치했고, 런던의 한 경쟁사는 엔비디아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며 기업가치를 33억 달러(약 4조 6,700억원)로 세 배 끌어올렸다. 이런 흐름과 비교하면 그록의 밸류에이션 하락은 이례적이다. 창업자와 핵심 엔지니어를 잃은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록의 재무 상태는 아직 비공개다. 이번 전환은 그록을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생태계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록이 빠르고 저렴한 추론 서비스로 개발자들을 계속 끌어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엔비디아 주변을 도는 안정적인 공급업체 역할에 머물지는 앞으로 지켜볼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