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아준다는 말은 페미니스트식 표현" vs "과거부터 쭉 써온 말인데 무슨 소리냐"

작성일

"아이를 주고받나" vs "감사 표현일 뿐"... 네티즌들 갑론을박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애 낳아준다.' 이 한마디를 두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며칠째 시끄럽다. 글쓴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취지가 아니라고 했지만 댓글창은 순식간에 의견 대결의 장이 됐다.

시작은 결혼·생활 게시판에 지난 14일 올라온 짧은 글이었다. 글쓴이는 "표현의 옳고 그름은 제쳐 두고 왜 애를 낳아준다는 말이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글쓴이의 짐작은 이랬다. "여성만 임신·출산할 수 있는데 아이에게 남자 성(姓)을 붙여 남자 집안에 편입시키기 때문에 나온 표현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어머니 성을 물려주는 문화로 바뀌면 이 말이 사라질까"라고 물었다. 최근 '애 낳아준다'는 표현을 둘러싼 글이 부쩍 많이 올라와 궁금해졌다고도 했다.

글쓴이는 애를 낳아준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했지만 댓글은 대부분 해당 표현을 써도 되느냐를 두고 두 편으로 갈렸다.

먼저 쓸 수 있는 표현이라는 쪽. 이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봤다. 한 이용자는 "'밥 해 줬다', '운전해줬다', '읽어줬다' 같은 말을 두고 밥을 지어서 넘겨줬느냐, 운전해서 건네줬느냐고 따지지는 않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랑 결혼해줘' 같은 말은 다들 쓰면서 왜 이 표현에만 예민하게 구느냐"고 되물었다.

출산을 겪은 부부의 경험담이 특히 힘을 실었다. 한 이용자는 "열 달 동안 조심하고 고생하고 아이를 낳을 때 아파하는 걸 다 지켜보고 나니 '낳아 줘서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보면 알게 된다"고 적었다. 다른 이용자도 "아빠들은 아내가 아홉 달 넘게 고생하는 걸 곁에서 보니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미혼 남성은 아직 자기 일이 아니라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옛날 아버지들은 '돈 벌어다 준다'는 말을 흔히 쓰면서 왜 '낳아준다'는 말에만 발끈하느냐"는 반응도 공감을 얻었다.

반대 쪽에선 "거부감이 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핵심은 "아이를 낳은 것이지 낳아서 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한 이용자는 "'낳아줬다'고 하면 아이를 주고받는 물건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낳기 싫었는데 억지로 낳았다는 뉘앙스로 들린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출산이 소중한 일이다. 스스로 '낳아 준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봤다. 이들은 "돈은 주고받을 수 있어도 아이는 주고받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논쟁이 남녀 갈등으로 번지면서 양쪽 모두 거친 말이 오갔다. 표현을 문제 삼는 사람을 두고 "결혼도 못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임신·출산을 깎아내린다"는 비아냥이 나오는가 하면, 반대쪽에서는 표현을 옹호하는 여성들을 겨냥한 조롱이 이어졌다. 다만 표현을 옹호하는 쪽에도 비판하는 쪽에도 아내나 남편이 있다고 밝힌 이용자가 뒤섞여 있어 단순한 남녀 구도로만 나뉘지는 않았다.

논쟁이 격해지자 작성자는 당황한 듯했다.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가 더 궁금한 것이 질문의 요지였다", "해당 표현이 나온 이유와 해결책이 궁금한 것이니 무작정 화내지 말아달라"라며 과열된 분위기를 눅이려고 시도했다.

그는 "낳아준다는 표현은 페미니즘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우리 부모님 세대 어머니들도 많이 쓰던 말인데 그분들이 페미니스트는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표현이 스스로를 도구로 취급하는 말이라는 비판에는 "왜 스스로를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자기 성을 물려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어 궁금하다"며 다시 성씨 문제로 논의를 돌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