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재상고 이유] “노소영 관장이 9440억 현금으로 달란 입장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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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자정 몇 분 앞두고 상고장 제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에 재상고한 이유는 노 관장 측이 분할금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머니투데이가 15일 단독 보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뉴스1

매체에 따르면 최 회장은 당초 재상고 없이 9440억원을 마련해 지급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그러나 몇 주 사이에 이 정도 현금을 단기간에 마련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은 지난달 24일 나왔다.

최 회장 측은 먼저 SK㈜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주주인 최 회장이 지분을 대량 매각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해 노 관장 측에 "주식과 현금을 적절히 섞어 지급할 테니 협의를 부탁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안에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하락분 역시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머니투데이는 전했다. 하지만 노 관장 측은 이를 최종 거부하고 전액 현금 지급 입장을 고수했으며, 협의가 결렬되자 최 회장 측이 뒤늦게 재상고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 대리인단은 재상고 기한인 전날 자정을 몇 분 앞두고 상고장을 제출한 뒤 "최 회장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며 "주주들과 그룹 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재상고를 택한 배경으로 크게 두 갈래를 꼽는다. 하나는 9440억원이라는 분할 규모 자체가 지나치다는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거액의 현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적 사정이다.

우선 최 회장 측은 대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노 관장 측 기여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는데도 파기환송심의 분할 비율이 항소심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나온 데 대해 법리적으로 다퉈볼 만하다고 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종잣돈이 됐다고 본 2심 판단에 대해 "설령 지원됐더라도 불법 원인 급여"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노 관장 측 분할 비율이 대폭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 결과는 노 관장 몫이 33.3%로 정해져 항소심의 35%에서 2%포인트도 채 낮아지지 않았다.

이혼 확정 이후 SK㈜ 주가 상승분을 분할 비율에 참작한 판단, SK실트론 지분을 분할 대상에 포함한 결정에 대해서도 최 회장 측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기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으로 SK실트론(당시 LG실트론) 지분 29.4%를 인수한 것은 2017년으로,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된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 지분 가치를 7500억원으로 평가한 것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게 최 회장 측 주장으로 전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 / 뉴스1

현실적 사정도 무시하기 어렵다. SK㈜ 주식을 매각하려 해도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라 최소 거래일 30일 전에 계획을 공시해야 하는 등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SK실트론 주식을 팔더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배제하고 세금까지 내면 확보 가능한 자금이 크게 줄어든다. 1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마련하려면 그룹 지주사인 SK㈜ 지분 매각까지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그룹 경영권과 주식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안팎에서 나왔다.

재상고는 이자 부담을 미루는 효과도 있다. 최 회장은 15일 0시부로 9440억원을 지급하지 못하면 연 5%, 하루 약 1억3000만원의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재상고로 판결이 확정되지 않으면 일단 이자 지급을 미룰 수 있다.

재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SK㈜ 주식의 재산분할 대상 여부가 될 전망이다. 이 쟁점은 심급마다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졌거나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고유 재산으로,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에서 빠진다. 반면 환송 전 항소심은 SK㈜ 주식이 혼인 기간에 취득됐고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자금이 최종현 SK 선대회장에게 유입됐다고 보고 부부 공동재산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 지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며 항소심을 파기하면서도, 최 회장이 SK㈜ 주식을 증여 등으로 처분한 것은 혼인 파탄일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부부 공동재산의 유지·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SK㈜ 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주식 가치 증대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혼인 기간 중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보유 주식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여기에는 노 관장의 가사와 양육, SK그룹 대외 활동이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재상고심에서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과 혼인 파탄일 이전에 증여한 주식 등이 분할 대상에서 제외됐는데도 9440억원을 분할액으로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통상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사건 접수 4개월 이내에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마무리한다. 사건을 소부에서 판단할지,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이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했다.

이번 재상고로 심리 대상이 되는 것은 재산분할 부분뿐이다. 이혼과 위자료 20억원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단으로 이미 확정됐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결혼했다. 2015년 최 회장이 이혼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불발됐고, 2018년 정식 소송으로 이어졌다. 노 관장은 2019년 위자료 3억원과 SK 주식 648만여주의 분할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 1조3808억원으로 액수를 크게 늘렸다.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한 뒤 파기환송심은 지난달 24일 분할금을 9440억원으로 정했다. 공개된 국내 재산분할 판결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분할금 지급은 주식 자체를 나누는 현물분할이 아니라 최 회장이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노 관장 몫을 현금으로 정산하는 '대상분할' 방식으로 결정됐다. 주식 가액 산정 시점은 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로 정해졌다. 당시 16만원 수준이던 SK 주가가 파기환송심 변론종결 무렵인 지난 6월 80만원대까지 오른 터라 산정 시점을 둘러싼 판단에도 관심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