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내 임기 단축되는 것도 각오" 승부수 던진 이유는...
작성일
지지율 최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제시한 권력구조 개편
이재명 대통령이 개헌 구상을 직접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과제로 개헌을 내걸어온 그가 취임 이후 임기 단축 가능성을 자기 입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가 가능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개헌하자는 신중론을 유지해왔는데, 이번에는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가장 민감한 대목까지 스스로 정리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오전에 방향을 설명하고 이 대통령이 오후에 직접 글로 못을 박는 이례적 이중 대응의 이유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먼저 개헌의 당위성부터 짚었다. 그는 "40년이 지난 우리 헌법은 시대에 맞지 않아 개헌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라며 "실제 개헌을 한다면 그 구체적 내용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했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으니 각론은 국회가 합의로 매듭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운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자신이 구상하는 개헌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5·18 정신과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고, 제왕적이라고까지 평가되는 대통령 권한 중 일부, 즉 감사원 관할권이나 총리 추천권, 인사권 일부 등을 국회에 넘기는 등으로 대통령 권한과 의회 권한을 조정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덜어내 입법부로 넘기는 방식으로 권력 균형을 다시 짜겠다는 구상이다.
권력구조의 핵심인 대통령 임기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변경해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며, 지방자치와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자는 게 공약이자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5년 단임제로는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임기 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셈이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임기 단축 수용 의사였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의 개헌을 위해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2022년 대선 당시 저의 공식 입장이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개헌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임기까지 걸 수 있다는 결기를 재확인한 것이다. 야당발로 불거진 임기 단축 논란을 정면으로 받아 안으면서도 그 취지를 자신의 오랜 소신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분권형 지도체제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국민 여론에 비춰 가능하지도 않다"며 "대통령 권한을 국회 등으로 일부 분산하자는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라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자신이 올렸던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부패·무능·악성 정치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부 형태'라는 취지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이 같은 입장을 뒷받침한 바 있다. 개헌 논의가 통치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이 대통령으로선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 이후 정치권에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는 것' 등의 주장이 흘러나오며 논란이 계속되자 오해 불식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국민적 수용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가진 문제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중임제 대통령제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므로 내각제는 아니다"라며 "분권형 대통령제 등을 특정하거나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헌은 국회의 200석 이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헌은 합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발단은 이 대통령이 아니라 야당이었다.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에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안하자 이 대통령이 "내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야당발로 임기 단축과 분권형 개헌이라는 두 개의 인화성 높은 소재가 동시에 튀어나온 셈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같은 분권형 개헌을 밀고 있다는 해석이 흘러나왔고, 논란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개헌 메시지가 나온 것은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시기다. 여기에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은 상태다. 여론조사기관마다 수치 차이는 있으나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거나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조사가 잇따랐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증시 폭락과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파장, 부동산 세제, 연임 개헌 논란 등이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야권이 이번 개헌 언급을 두고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정국 돌파용"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이 지점을 겨냥한 것이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연임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면 이 대통령이 한 번 더 대선에 나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다. 이에 대한 방어선이 헌법 128조다.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그 개헌을 제안한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조항이다. 정청래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헌법 128조상 (이 대통령의 연임은) 불가능하다"며 "더 이상 얘기하면 자꾸 뭐가 있는 것처럼 되는데 뭐가 없다"고 논란에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야당은 이 대통령이 직접 "연임은 없다"고 공개 천명하지 않는 한 의심을 거두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개헌 자체가 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로 지목된다. 개헌안 의결에는 국회 재적 200석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민주당 단독으로는 정족수를 채울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야당 중진들과 비공개 골프 회동을 이어온 것을 두고 협치의 물꼬를 터보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이런 접촉 방식 자체가 야당 지도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은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실제 회동이 있었다면 개별 의원에게 집중했을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이 대통령이 재판 문제와 연임 개헌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권 내부에선 이 대통령의 구상에 힘을 싣는 기류가 감지된다. 김민석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청와대의 4년 중임제 방향에 대해 "이미 이 대통령이 대선 전에 제게 여러 번 얘기했다"며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임이든 중임이든 두 번은 할 수 있게 해서 안정성을 갖게 하자는 것"이라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로 이어진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주자들이 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에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반면 야당은 총공세를 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지금 쥔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분권형 개헌은 연임 불가를 피해 가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직접 나와 '연임은 없다' 다섯 자로 밝혀라"라고 촉구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느닷없이 권력구조 개헌을 들고 나오는 것은 본말전도이자 시선 돌리기"라며 "반도체를 방패 삼아 임기 연장을 정당화하려 하지 말라"고 몰아붙였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는 대통령 임기 4년 단축과 중임제 도입을, 2025년 대선에서는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 개헌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반영돼 있다.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꾸려지면 개헌 논의가 국회로 넘어가 여야 힘겨루기의 한복판에 놓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