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테마기행’ 여덟 살에 오른 강제이주 열차…97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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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이어진 화물열차 이동…고려인 1세대 생생한 증언
토굴 생활서 벼농사 개척까지, 카자흐스탄에 남은 삶의 기록

1937년 가을,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고려인들은 화물열차에 올라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강제이주의 기억부터 낯선 황무지를 농토로 바꾼 개척의 역사까지, EBS1 ‘세계테마기행’이 카자흐스탄에 남은 고려인들의 삶을 따라간다.

EBS1 ‘세계테마기행-그날이 오면 카자흐스탄 & 미국’ 2부 ‘1937의 기억’ 예고편 속 장면. / EBS 제공
EBS1 ‘세계테마기행-그날이 오면 카자흐스탄 & 미국’ 2부 ‘1937의 기억’ 예고편 속 장면. / EBS 제공

8월 18일 방송되는 EBS1 ‘세계테마기행-그날이 오면 카자흐스탄 & 미국’ 2부 ‘1937의 기억’에서는 역사 작가 김재완이 고려인 강제이주의 흔적이 남은 알마티와 우슈토베, 크즐오르다를 찾는다.

97세 황마이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열차

1937년 가을 약 17만 명의 고려인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사람들이 몸을 실은 곳은 제대로 된 여객열차가 아닌 화물열차였고, 이동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알마티에서는 고려인 1세대 황마이 할아버지를 만난다. 97세인 황 할아버지는 카자흐스탄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로, 독립운동가 황운정 지사의 막내아들이기도 하다.

황 할아버지가 강제이주 열차에 오른 것은 여덟 살 때였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의 기억은 9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열차 안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숨진 사람을 묻을 삽조차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기약 없이 이어지는 이동 속에서 사람들이 견딜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는 함께 부르던 노래였다.

김재완은 황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1937년 당시의 상황을 듣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강제이주 열차 안에서 경험한 장면과 감정은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첫 도착지 우슈토베, 토굴에서 시작된 삶

여정은 고려인 강제이주 열차의 첫 번째 도착지 가운데 하나인 우슈토베로 이어진다. 낯선 땅에 내려진 고려인들에게 제대로 된 집은 없었다. 혹독한 추위를 피해 땅을 파고 토굴을 만들어 첫겨울을 견뎠고, 봄이 오자 맨손으로 수로를 만들며 농사를 시작했다.

고려인 3세 빠샤 씨와 함께 카라탈 댐을 둘러보며 당시 고려인들이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간 과정을 살펴본다. 물길을 만들고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벼농사 가능 지역도 점차 북쪽으로 넓혀갔다.

당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남긴 공간도 있다. 헬렌 박 할머니는 땅을 파고 갈대로 지붕을 얹은 옛 고려인들의 집을 재현했다. 내부에는 아궁이와 구들까지 당시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졌다.

헬렌 박 할머니가 이 공간을 만든 이유는 1937년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곳이 우슈토베 고려인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인 식탁에는 잡채와 당근 김치, 옥수수죽 등이 오른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으면서 가족에게 전해 들은 강제이주의 기억과 중앙아시아 정착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황무지를 최대 벼 생산지로 바꾼 고려인들

고려인들의 개척 역사는 크즐오르다에서도 이어진다. 현재 이 지역은 카자흐스탄 최대 벼 생산지로 꼽힌다.

그 중심에는 고려인 농업지도자 채정학이 있었다. 제작진은 부유한 농촌으로 알려진 제3인터내셔널 마을을 찾아 그의 흔적을 살펴본다.

채정학은 농사법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도 힘을 쏟았다. 고려인들이 낯선 환경에서 쌓은 농업 기술과 경험은 다른 이주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튀르키예 이주민 2세 바키르 씨는 채정학과 고려인들을 기억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방송은 바키르 씨의 이야기를 통해 고려인들의 개척사가 한 민족만의 역사를 넘어 지역 공동체 전체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들여다본다.

강제이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황무지에 집을 짓고 물길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며 다시 삶을 시작했다. 처음 도착했던 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를 직접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EBS1 ‘세계테마기행-그날이 오면 카자흐스탄 & 미국’ 2부 ‘1937의 기억’에서는 97세 고려인 1세대가 전하는 강제이주 열차의 기억부터 우슈토베의 토굴 생활, 크즐오르다에서 이어진 농업 개척의 역사를 차례로 따라간다.

EBS1 ‘세계테마기행-그날이 오면 카자흐스탄 & 미국’ 2부 ‘1937의 기억’은 8월 18일 오후 8시 4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