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안판석 감독 빈소서 눈물 쏟은 여배우…“아직 안 믿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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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계 거장 안판석, 65세 일기로 별세

배우 정려원이 안판석 감독의 빈소를 찾아 눈물을 쏟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정려원뿐 아니라 김혜은, 김명민, 차승원, 백지연 등 오랜 시간 안 감독과 인연을 맺어온 동료들의 추모도 잇따르며 연예계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에 잠겼다.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안판석 감독 빈소 / 뉴스1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안판석 감독 빈소 / 뉴스1

"감독님과의 인연, 눈물로 되새긴 정려원"

정려원은 14일 자신의 SNS에 안판석 감독과 함께한 현장 사진을 올리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사진 속에는 강의실을 배경으로 한 촬영 현장에서 안 감독과 나란히 서서 대본을 살피는 정려원의 모습이 담겼다. 안 감독은 손짓을 섞어가며 설명을 이어가고, 정려원은 고개를 숙인 채 종이에 시선을 두고 있어 두 사람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던 순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드라마 '졸업' 촬영 당시 정려원과 안판석 감독 / 정려원 인스타그램
드라마 '졸업' 촬영 당시 정려원과 안판석 감독 / 정려원 인스타그램

정려원은 글에서 "감독님..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아직도 어떤 기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많은 배우들의 마음속에 스파크를 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으며 안 감독이 배우들에게 남긴 영향을 언급했다.

정려원은 또 "감독님이 해주시는 그 '1등' 도장이 너무 받고 싶어서 배우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르시죠"라며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촬영 내내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라고 덧붙이며 함께한 시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연기에 대한 가르침도 언급했다. 정려원은 "글을 가까이하며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더하는 것보다 덜하는 것에 더 집착해주신 덕분에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라고 썼다. 이어 "doing보다는 being에 더 집중해주신 이유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어떤 것들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준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끝으로 정려원은 빈소에서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던 순간을 전했다. 그는 "아… 정말 잘 참고 있었는데. 빈소에서 들린 비틀즈 노래에 그만 많이 울었네요. 감독님. 평안하세요"라고 적으며 글을 마무리했다.

정려원과 안판석 감독은 2024년 방송된 tvN 드라마 '졸업'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정려원은 대치동 스타강사 서혜진 역을 맡아 14년 차 강사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그려내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고, 여러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정려원은 이 작품을 스스로 인생작이자 분기점으로 꼽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졸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안판석 PD(왼쪽부터)와 배우 정려원, 위하준 / 뉴스1
드라마 '졸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안판석 PD(왼쪽부터)와 배우 정려원, 위하준 / 뉴스1

"삶의 스승이었다"…김명민·차승원·김혜은·백지연도 애도

정려원 외에도 안 감독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배우와 방송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밀회'에서 서영우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혜은은 SNS에 "'밀회'라는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영광을 누리게 해주신 감독님. 감독님께 부끄럽지 않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작품 같이 못해 한스럽기만 합니다. 너무나 아까워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제 마음의 키를 키워주신 안판석 감독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천국에서 편히 영면하소서"라며 애도했다.

'하얀거탑'을 인생작으로 꼽아온 배우 김명민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제게는 위대한 연출가이기 전에 삶의 스승이셨다"고 운을 뗐다. 그는 "연출가 이전에 철학가, 인물의 내면과 삶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연구하고 탐구하셨던 감독님의 별세 소식에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다"며 "배우의 말을 경청해주시고 배우의 표현을 존중해주시고 너무나 존경스러울 정도로 인정을 많이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안 감독의 유일한 영화 연출작 '국경의 남쪽'에서 주연을 맡았고 '수줍은 연인' '장미와 콩나물'까지 세 작품을 함께한 배우 차승원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감독님은 배우들을 들여다보는 어떤 시선이 양식적이지 않으셨다. 배우를 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게 했던 연출가"라며 "사람을 아주 면밀하게 들여다보시고 정말 끊임없이 안주하지 않고 장르를 불문하고 도전하셨다"고 기억했다.

1987년 MBC 입사 동기인 방송인 백지연도 SNS에 안 감독의 사진을 올리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세요. 멋진 감독이었고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밖에도 안 감독과 작품으로 인연을 맺었던 여러 배우와 방송인들의 추모 글이 온라인을 통해 이어지며, 연예계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슬픔에 잠긴 분위기다.

안판석 감독 빈소 / 뉴스1
안판석 감독 빈소 / 뉴스1

'하얀거탑'부터 '졸업'까지, 한국 드라마를 대표해온 연출가

1961년생인 안판석 감독은 1987년 MBC 공채 프로듀서로 입사해 조연출을 거쳐 1994년 '베스트극장-사랑의 인사'로 연출 데뷔했다. 이후 '짝'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졸업' '협상의 기술'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63부작에 달하는 김혜수 주연작 '짝'으로 입지를 다진 안 감독은 최진실 주연의 '장미와 콩나물'로 주목받았고, 정성주 작가와 처음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을 시작으로 오랜 파트너십을 이어갔다. 시청률 30%를 넘긴 '아줌마'는 안판석-정성주 조합이 풍자적 블랙코미디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2005년 21세기 여성미디어네트워크 평등미디어상 으뜸상을 받기도 했다.

안판석 감독 / 뉴스1
안판석 감독 / 뉴스1

2007년 방송한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은 탄탄한 줄거리와 김명민, 이정길, 김창완 등의 호연이 어우러져 '웰메이드'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2010년대 초중반에는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를 연속으로 선보이며 정성주 작가와의 조합으로 호평받았고, 2010년대 후반에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졸업'까지 로맨스·멜로 장르에 집중하며 여성 캐릭터에 힘을 실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현장에서는 배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연출자로 꼽혔다. 손예진은 과거 인터뷰에서 "같이 작업했던 분들은 다 엄지손가락 치켜드는 분이라서 결국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출연했던 주민경도 "고성, 욕설 한번 없었고 찡그린 표정 하는 분도 하나 없었다"며 안정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유작 '연애박사'는 예정대로 방송

안판석 감독은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오던 중 지난달 뇌출혈이 발병해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후 지난 12일 뇌출혈 합병증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유작은 오는 10월 5일 ENA에서 첫 방송 예정인 '연애박사'다. 고등학교 때 수영선수였지만 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박사과정생 민재와, 진로를 잃고 방황하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석사과정생 유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추영우와 김소현이 주연을 맡았다. 촬영과 편집을 모두 마친 상태로 방송 일정에는 차질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애박사' 제작진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밝히며 "다시 한번 고인의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5일 오전 9시 30분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안판석 감독 빈소에 놓인 근조화한 / 뉴스1
안판석 감독 빈소에 놓인 근조화한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