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연구 최고 전문가가 입장 밝혔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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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진 “친일파 맞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재 정도는 아냐”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안상호는 친일파가 맞지만 사전 등재 기준에는 미달한다"고 밝혔다.

배우 하영 / 뉴스1
배우 하영 / 뉴스1

방 사무처장은 13일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친일인명사전 수록 기준을 설명했다. 그는 광복절을 앞두고 불거진 하영을 향한 비판에 대해 "과하지 않다"면서도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진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방 사무처장은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검토를 거쳤으나 기준에 미달해 빠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이 개인 집필자의 주관이 담기는 평전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1차 사료만으로 등재하는 사전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안상호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것 외에도 여러 친일 행적을 밝혀냈지만 등재 기준에는 다소 미달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방 사무처장은 친일파 판단 기준이 문학인, 군인, 관료, 경찰 등 분야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관통하는 기준은 친일 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었는지라고 밝혔다. 하나를 하라고 했을 때 둘을 했는지, 한 번만 하면 될 일을 여러 번 반복했는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안상호는 이런 기준에서 적극성과 반복성이 다소 떨어져 등재하지 않았지만 친일 행적 자체는 사실로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안상호의 구체적인 행적도 언급됐다. 방 사무처장은 최근 대정실업친목회 활동이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으나 안상호의 최초 친일 행적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그해 경성에서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 추모대회를 열었는데, 그 추모준비위원회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후 안상호는 경성부협의회 의원을 지냈다. 방 사무처장은 이 자리가 지금의 서울시의원과 비슷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총독에게 자문하는 정도의 기구에 그쳤다고 부연했다. 또 안상호가 활동한 동민회에 대해서는 항일 운동을 방해하고 이른바 내선융화, 즉 일본인과 조선인이 하나의 가정을 이뤄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를 내건 단체라고 소개했다.

친일 행적이 있는데도 친일파는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방 사무처장은 "친일파라고 할 수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사전에 등재된 4389명이 당시 한반도에 살던 조선인 인구 2500만명에 비하면 매우 소수라는 점도 짚었다. 순사나 면장, 면서기까지 모두 포함하면 숫자가 훨씬 늘어나겠지만 역사적 책임을 묻는 사전인 만큼 기준이 더 엄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방 사무처장은 5·18 항쟁 당시 시민을 학살한 계엄군을 예로 들며 현장에서 방아쇠를 당긴 이등병보다 그 지시를 내린 지휘부에 더 큰 역사적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하영을 향한 비판을 두고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진행자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증조부의 일로 비판받는 것이 연좌제 아니냐는 시각, 그런 친일 행적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니 재산까지 환수해야 한다는 시각을 함께 전하자 방 사무처장은 연초의 이른바 탱크 데이와 배재고 사태를 언급하며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답했다. 하영의 태도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우리 스스로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있는지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방 사무처장은 그 사례로 최근 네덜란드에서 약 40만명의 나치 당원 명부가 공개되고, 독일에서는 1000만명에 이르는 나치 당원 명부가 언론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일을 들었다. 독일 인구의 약 6분의 1이 나치 당원이었던 셈인데, 이런 명부 공개의 취지는 특정 집안을 낙인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에서는 인자했던 조부가 역사적으로는 악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음을 스스로 성찰하자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태도로 이번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받는 비판이 과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과하지는 않다"면서도 하영 개인이나 배재고 야구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그런 환경이 왜 그렇게 됐는지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방 사무처장은 평생 친일 문제를 연구한 임종국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겠느냐는 질문에 그의 어록을 전했다. “일제 하의 친일 행위 자체보다 해방 이후 참회와 반성이 없었던 현실이 더 문제이며, 이를 철저히 바꾸지 않으면 민족사의 기강은 헛말이 되고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방 사무처장은 이 어록이 요즘 상황에 들어맞는다고 평가했다.

하영이 조언을 구한다면 무엇을 권하겠느냐는 물음에는 앞선 사례를 소개했다. 한 여배우가 처음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등재된 것이 억울하다고 했지만 이후 비공식적으로 연구소를 찾아와 함께 행적을 살펴봤고 지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상의 행적을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 사무처장은 연예인이 공인으로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런 공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면서 하영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숙한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