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내 자녀 5명 모두 조선말 단 한마디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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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과 자주 왕래하거나 어울리는 일 없어"
"집안에 조선식 습관이나 물건들이 조금도 없다"

친일 의혹을 받는 안상호의 107년 전 인터뷰 내용이 인터넷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배우 하영 증조부인 안상호는 108년 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자녀들이 조선말을 조금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우 하영 / 뉴스1
배우 하영 / 뉴스1

안상호가 매일신보와 인터뷰한 것은 1918년 12월 10일. 일왕 연호로 다이쇼 7년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해당 기사는 '왕세자 전하 가례 전에 일선동체(日鮮同體)의 가정 방문기'라는 제목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이 하나가 된 모범 사례로 안상호 일가를 소개하고 있다.


안상호 인터뷰 내용이 실린 매일신보 기사.
안상호 인터뷰 내용이 실린 매일신보 기사.

기사가 나온 시점은 영친왕 이은과 일본 황족 마사코(이방자)의 결혼을 앞둔 때였다. 조선 왕세자와 일본 황족의 혼인을 '일선융화'의 상징으로 선전하던 총독부로서는 조선인 의사가 일본인 아내와 꾸린 완전한 일본식 가정이 더없이 좋은 홍보 소재였다.

기사는 안상호를 조선에서 가장 처음으로 서양 의학을 배워온 의사로 소개하며 "일본인과 조선인이 결합해 화합을 이루는 가정을 꾸리는 일에서도 가장 먼저 성공의 깃발을 치켜들었다"고 치켜세웠다. 안상호는 일본 도쿄 출신의 이소(磯)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뤘고, 세 살배기 어린아이부터 열두 살 딸까지 5남매를 두고 있었다고 기사는 전한다.

기자가 자택을 찾아가는 방문기 형식으로 쓰인 기사에서 기자는 집 안 풍경부터 상세히 그렸다. 대문을 두드리자 집안을 돌보는 늙은 하녀가 나와 문을 열었고 "조선 신사다운 매너를 지닌" 안상호가 직접 기자를 거실로 안내했다고 전했다. 기자는 거실이 "일본식 가옥처럼 참 화려하겠구나 하고 미리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깔끔하고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었다"며 안상호의 아내가 배치한 밝은 전등 조명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세련됐다고 적었다.

기자는 이 집을 "사방이 꽉 막힌 삭막한 세상 속에서 홀로 따뜻하고 평화로운 별세계로 쑥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안상호가 바깥 사회의 시끄러운 소음이나 잔소리 같은 것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라 손님을 아늑하고 조용한 온돌방으로 안내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상호는 자신의 생활이 조선인의 것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스스로 드러냈다. 그는 "나도 지금은 조선 옷은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음식도 조선식으로 매운 것은 조금도 먹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 사람과 똑같이 생활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안에 조선식 습관이나 물건들은 조금도 없다"고 덧붙였다.

가정 분위기를 두고 안상호는 "예쁜 아내와 함께 재미나게 잘 지내고 있다"며 "집안 식구들도 병원 일을 열심히 도우며 명랑하게 지내는데, 요사이에는 아이들도 잘 자라고 우리 장모님께서도 와서 함께 계셔주시니 가정이 아주 활기차고 든든하다"고 했다. 그는 "혹시 일본 도쿄에서 외가 식구들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기사는 안상호가 조선 사람들과 거의 왕래하지 않는 생활을 오히려 만족스럽게 여긴다고 전했다. 안상호는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아 집안이 단출하고 조용하다면서 "요즘 조선 사람들과 그리 자주 왕래하거나 어울리는 일이 없으므로, 쓸데없이 번잡하거나 번거로운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에는 안상호의 이력도 담겼다. 그는 대한제국 시절 궁내부에서 고종 황제와 의친왕을 가까이 모시며 어의로 재직했고, 그 무렵 일본인 부인 이소와 혼인했으며, 장모의 뜻에 따라 전적으로 일본식 가정을 꾸리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자녀 양육은 철저히 일본식이었다. 안상호는 "도쿄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이래 살아온 방식을 조금도 바꾸지 않아 아이들이 조선식 생활 틀이나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랐다"면서 “마치 일본 본토에 와서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적었다.

자녀들이 조선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대목이 두드러진다. 기사는 "집안이 온통 일본식이라 비록 조선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은 조선말을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며 이 때문에 바깥 조선 사회와 어울리지 못해 외출도 잘 하지 못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외식하러 나가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일본식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도 적었다.

집의 구조까지 바뀌어 있었다. 기사는 밥상과 잠자리에서 세 살배기부터 큰딸까지 철저히 일본식을 따랐다고 전하며 "조선인들의 문화나 생활 방식이 단 한 면도 문턱을 넘지 못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원래 조선식이던 가옥마저 완전히 뜯어고쳐 일본식 다다미를 깔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런 이유로 일제가 '내선일체'의 표본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안상호의 집을 대표적 본보기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가 다시 조명된 것은 증손녀인 하영이 방송에서 집안 내력을 자랑하면서다. 하영은 지난 7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께서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며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소개했다. 방송 직후 안상호가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내선일체를 앞장서 정당화한 인물이라는 사실과 함께 1916년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당초 하영 측은 친일 행적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이후 입장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저희가 앞서 '사실무근'이라고 말씀드렸던 부분에 대해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라며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 성급히 답변하여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