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하는 일이 편의점 알바와 뭔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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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가 왜 필요해?" 한 네티즌이 던진 의문... 약사 역할 두고 갑론을박
“약사가 왜 필요해? 자판기로 충분하지 않을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약국 약사의 존재 이유를 묻는 글이 올라와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처방전대로 약을 꺼내 봉투에 담는 일은 자판기나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현직 약사와 의료계 종사자들이 일제히 반박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글 작성자는 글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약사는 인정하지만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만 꺼내 봉투에 담는 일은 자판기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약사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묻는 것이라면서 “처방전 남용 방지가 이유라면 본인 인증이나 시스템으로 대체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글에는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작성자를 옹호하며 약국 약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 약사 역할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반박이 팽팽하게 맞섰다.
약사 무용론을 편 쪽은 주로 업무의 단순함과 대체 가능성을 근거로 들었다. 한 이용자는 “약사가 하는 일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복약지도나 오남용 방지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고급 인력을 손발 다 묶어놓고 낭비하는 느낌이라며 업무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인 한 이용자는 “거점형 약국을 제외한 나머지 약국에는 약 자판기를 두고 복약지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약을 살 수 있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동네 약국이 이권만 지킬 것이 아니라 대형 창고형 약국과 약 배달, 일반의약품 확대 같은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약사들과 의료계 종사자들은 처방 오류를 걸러내는 역할을 강조했다. 한 약사는 “하루 두 번 식후에 먹으라고 설명하고 적어 보내도 아침·점심·저녁으로 잘못 먹는 사람이 있고, 병용 금기 약을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해도 절반가량은 한두 시간 간격을 두고 그냥 복용한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의사가 다른 곳에서 처방받은 약을 중단시키지 않고 같은 약을 중복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약사가 집에 있는 약을 확인해 심각한 중복은 바로잡아 준다고 했다.
연세대학교의료원 소속인 이용자는 처방 오류를 바로잡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간질환자에게 특정 위장약이 처방되거나 위장약이 중복 처방된 사례 등을 들며 약을 많이 먹는 노인 환자나 허가 용량이 정해지지 않은 소아 처방에서 오류가 자주 나온다고 했다.
중앙대학교의료원 소속 이용자도 작은 약국에서도 처방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난다면서 특히 소아과 처방이 많이 틀린다고 거들었다.
간호사라고 밝힌 이용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칼륨이 포함된 수액이 여러 개 처방됐을 때 한꺼번에 투여해도 되는지, 특정 항생제를 얼마의 용매에 희석해야 하는지 등을 약국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필요 없는 직업이면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아직 많다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약사가 실제로 처방 오류를 잡아냈다는 경험담도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의사가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을 중복 처방한 것을 약사가 확인해 병원에 전화한 뒤 약을 조정했다며 고마웠다고 전했다. 한화비전 소속 이용자는 아이에게 특정 약이 5배 용량으로 처방된 것을 약사가 발견해 병원에 문의한 뒤 수정했다고 했다.
책임 소재를 근거로 든 의견도 나왔다. 한 이용자는 약을 잘못 먹어 문제가 생겼을 때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이 전문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약사를 없애자고 한다면 처방·조제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지고 피해자는 누구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약사 면허의 성격을 설명한 이용자도 있었다. 한 약사는 대단한 지식과 기술 때문에 약사 면허를 받는 게 아니라면서 “약을 공급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시장에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공급을 통제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 지리를 잘 알고 무사고 경력이 있어도 사람을 태우고 돈을 받으면 위법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논쟁 과정에서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한 약사는 현행 제도에서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조제에 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그렇다고 그게 약사가 필요 없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약값과 수익 구조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한 약사는 보험이 적용되는 전문의약품은 마진을 붙이면 불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건강보험이 약값을 낮게 눌러놓아 지금 수준이지 그렇지 않으면 국내 약값이 훨씬 비쌌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약사는 조제료 마진이 크지 않아 오히려 자판기로 대체하면 환자가 내는 돈이 더 비싸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약사 업무의 미래를 두고도 전망이 엇갈렸다. 녹십자 소속 이용자는 약사가 AI로 사라질 직업 순위에서 낮은 편이라면서 “약은 사람마다 반응이 달라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와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여러 이용자는 앞으로 창고형 약국과 약 배달이 확대되면서 동네 약국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