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열쇠를 안 가지고 다닌다고?” 루마니아인이 한국에 살며 잊어버린 외출 전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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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는 집을 나서기 전 “휴대폰, 지갑, 열쇠”를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목록에서 ‘열쇠’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의 아파트 현관에서 외국인 여성이 열쇠 대신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입력해 집에 들어가는 모습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국의 아파트 현관에서 외국인 여성이 열쇠 대신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입력해 집에 들어가는 모습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국에 처음 와서 집에 들어갈 때 의외로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현관문이었다. 열쇠를 꺼내는 사람이 없다. 대신 현관문 앞에 서서 숫자 몇 개를 누른다. “삐빅.” 그리고 문이 열린다.

한국인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장면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열쇠를 사용하는 집에 익숙한 외국인에게는 꽤 신기할 수 있다.

루마니아에도 스마트록과 디지털 잠금장치는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와 연동하거나 비밀번호로 문을 여는 제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디지털 도어록 자체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너무 일상적이라는 점이다.

서울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원룸을 돌아다니다 보면 숫자 키패드가 달린 현관문을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디지털 도어록을 “많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비밀번호뿐 아니라 카드키와 지문, 스마트폰 등으로 열 수 있는 제품도 보편적인 소비재가 됐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많은 생활 습관을 바꾼다.

“열쇠 챙겼어?”라는 질문이 사라진다

열쇠를 사용하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나서기 전 확인하는 것이다. 휴대폰. 지갑. 그리고 열쇠. 특히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집이라면 열쇠를 안에 두고 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여분 열쇠를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고, 아무도 없다면 열쇠공을 불러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열쇠를 사용하는 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문을 닫는 순간 이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열쇠 가지고 있지?”** 그런데 한국에서 비밀번호 도어록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 습관이 조금씩 사라진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열쇠가 필요 없다. 편의점에 잠깐 갈 때도 필요 없다. 운동하러 나갈 때 주머니 속에 열쇠 꾸러미를 넣을 이유도 없다. 휴대폰조차 집에 두고 나왔더라도 비밀번호만 기억한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작은 편리함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나라에 가서 열쇠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그것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한국 생활이 사람을 ‘열쇠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여자 열쇠 나무 문을 열고 실내, 폐쇄 / 셔터스톡
여자 열쇠 나무 문을 열고 실내, 폐쇄 / 셔터스톡

더 재미있는 차이는 누군가 집에 올 때 나타난다. 물리적인 열쇠를 사용하는 집이라면 친구나 가족에게 집을 맡길 때 여분 열쇠가 필요하다. “이거 잃어버리면 안 돼.” 열쇠를 건네고, 다시 돌려받고, 잃어버렸다면 복제하거나 자물쇠를 바꾸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가까운 가족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끝이다.

부모님이 먼저 집에 들어가 있어야 할 때도, 친구가 짐을 가져다줘야 할 때도 열쇠를 직접 전달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잠깐 집에 들어와야 하는 상황에서 ‘물건’을 건네는 대신 ‘정보’를 공유한다. 이것은 아주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인간관계의 행동까지 바꾼다. 현관문을 여는 권한이 금속 열쇠에서 머릿속 숫자로 바뀌는 것이다.

한국인이 번호를 누를 때 손으로 가리는 이유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면 또 하나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 몸을 문 쪽으로 가까이 붙인다. 혹은 다른 손으로 키패드를 살짝 가린다. 누군가 뒤에 서 있다면 괜히 한 번 주변을 확인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열쇠는 모양을 한 번 봤다고 바로 복제하기 어렵지만, 비밀번호는 다르다.

숫자 몇 개만 기억하면 된다. 그래서 열쇠를 잃어버릴 걱정은 줄어드는 대신 번호가 보일까 걱정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긴다. 편리함이 걱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걱정의 형태를 바꾸는 셈이다.

열쇠 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 또 하나 익숙한 행동이 있다. 집을 나온 뒤 몇 발자국 걷다가 다시 돌아간다. 문고리를 잡아본다. “잠갔나?” 가끔은 엘리베이터까지 탔다가 다시 올라온다. 한국의 디지털 도어록은 이런 불안도 줄여준다.

문을 닫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잠기는 기능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제품 시험에서도 자동 잠금 기능과 잠금 대기시간이 디지털 도어록의 주요 기능으로 평가됐다. 일부 제품은 문이 닫힌 뒤 자동 잠금까지 걸리는 시간을 사용자가 조절할 수도 있었다.

한국에 오래 살다 보면 그래서 문을 닫으면서 의식적으로 ‘잠그는’ 행동 자체를 잊어버릴 수 있다.

스마트 홈 시스템으로 집을 열고 닫는 여자의 손. NFC 기술, 키카드, PIN 번호, 지문 인식, 스마트폰, 전기 및 비접촉 개념. / 셔터스톡
스마트 홈 시스템으로 집을 열고 닫는 여자의 손. NFC 기술, 키카드, PIN 번호, 지문 인식, 스마트폰, 전기 및 비접촉 개념. / 셔터스톡

대신 새로운 공포가 생긴다

물론 디지털 도어록 생활에도 단점은 있다. 바로 배터리다. 열쇠라면 금속 조각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지는 않는다. 디지털 도어록은 전자제품이다. 배터리가 부족하면 경고음이 나고 교체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디지털 도어록 제품을 비교하면서 배터리 효율을 별도의 주요 평가 항목으로 조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험 제품에 따라 한 번의 배터리 교체로 작동 가능한 횟수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 도어록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질 즈음에는 새로운 걱정을 배우게 된다.

“배터리 없으면 어떡하지?” 열쇠를 잃어버리는 공포 대신 배터리 경고음을 무시했다가 집 밖에 남겨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긴다.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에게는 항상 걱정할 것이 하나씩 남는 모양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집을 나가며 반드시 챙겨야 했던 작은 금속 조각이 어느 날부터 필요 없어졌다. 가족에게 열쇠를 건네는 대신 숫자를 알려준다. 문을 잠그는 대신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를 기다린다. 열쇠를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대신 비밀번호가 보일까 손으로 키패드를 가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행을 가서 열쇠가 있는 숙소에 묵게 되면 현관문을 나선 뒤 갑자기 멈추게 된다. “아, 여기서는 열쇠를 챙겨야 하지.”

한국인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할 것 없는 도어록 하나. 하지만 열쇠와 함께 자란 외국인에게는 그것이 생활방식 하나를 조용히 없애버리는 작은 문화 충격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살면서 잊어버리는 한국어 단어는 많아도, 예상하지 못하게 잊어버리는 물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