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안상호)가 친일파? 위험한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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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심용환 “친일 부역 행위 명확히 안 밝혀져”
“특정 단체 가입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해선 안 돼”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흐름을 두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배우 하영 / 뉴스1
배우 하영 / 뉴스1

심 소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갑자기 어떤 여배우의 증조부 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며 "더불어 역사학계가 그의 증조부가 '친일 맞음'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까지 떴다"고 적었다. 그는 "이 논쟁은 그 어떤 합리적인 중재를 통해 해결되지는 않을 듯하고 결국 시간이 해결할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할 말은 해야겠다"고 했다.

심 소장이 먼저 짚은 것은 고종 독살설이다. 그는 "고종 독살설은 '암살설'이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풍문에 불과했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간주된다"며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심지어 '그것이 알고 싶다' 스핀오프 프로그램에서는 법의학자까지 동원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제를 하고 방송을 만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냉정히 말해 10년간 일본에 아무런 저항을 않던 고종을 갑자기 일본이 독살할 이유 자체가 없다"며 "따라서 당시 주치의라고 해서 그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안상호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부정적 평가를 인정했다. 심 소장은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파들이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된 것, 그리고 일본이 시정 홍보를 할 때 그의 집안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만년의 그가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고 했다.

다만 심 소장은 "'친일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관련 연구에 대해서는 "이정은 선생의 논문이 하나 있고 그 논문은 친일파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며 "안상호는 1872년생이고 일제강점기는 그의 만년의 생인데 논문은 개화기 때 그의 인생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하영 / 뉴스1
배우 하영 / 뉴스1

그는 "그런데 상황이 엉뚱하게 커졌다"며 "고종 독살설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대중이 많기 때문에 이미 증조부는 독살의 주체가 됐고 어떤 학자의 발언 하나를 두고 언론이 '역사학계'라고 단정지음으로 이제 그녀는 친일파의 후손이 돼 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논란의 실체에 대해서는 "'그냥 방송 나왔다가 의사 집안 자랑해서 괘씸죄로 걸린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며 "문제는 일단 논란이 시작되면 갈등은 너무나 빨리 극단으로 치닫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고 했다.

심 소장은 안상호에 대해 "여배우의 증조부는 젊은 날 의친왕의 총애를 받았던 뛰어난 의학 엘리트였다"며 "또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좌시하지도 않았다고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의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진다면 그는 친일파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은 밝혀진 다음에나 할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심 소장은 안상호에 대해 "박서양처럼 군의관이 돼 독립군을 치료한 적도 없고 구마모토 농장에서 헌신하며 전라도 농민들을 위한 의료행위를 펼친 이영춘 같은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더구나 기사를 보면 그는 총독부의 정책에 충실했고 적절한 관계를 잘 유지하며 개인적인 성공을 구가했다"고 했다.

심 소장은 "여배우의 잘못이라면 그러한 가족사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라며 "'밖에 알려진 것과는 달라요', '저는 제 힘으로 성공했어요', '물려받은 거 별거 없어요' 뭐 이런 식의 친일파 후손들의 역사 인식에서 멀지 않으니 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조상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자랑을 일삼은 우리의 일상과도 별다를 바 없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심 소장은 무분별한 친일파 규정이 가져올 결과를 경고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쉽게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단정해버리며 과거사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라며 "결국 친일 부역의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심 소장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역사학계 자체에 있다"며 "우리는 오랫동안 뉴라이트에 시달려 왔고 그들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너무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라는 학문과 진실 모두를 오롯이 이 싸움에 바치면서 스스로 선과 악의 단순한 판별자가 돼 버리면 그 결과는 역사학 자체의 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밝혔다.

심 소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까지를 '후손'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 보다 명쾌한 기준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며 "연좌가 잘못됐듯 조상의 공이 자신의 공은 아닐 터"라고 했다. 그는 "어디까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그로 인해 어떤 권리와 책무를 누려야 되는지에 대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심 소장은 "이대로 가면 임진왜란 의병장 후손도 보훈의 대상이 되겠어요"라는 말을 소개하며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과거사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배우고 존경하는 것, 그래서 보훈이 아닌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돼야 한다"며 "역사학계의 역할 또한 그것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