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A 인가 못 받은 1,062곳, EU 철수냐 재편이냐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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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MiCA 인가 마감, 암호화폐 1,343곳 중 1,062곳 탈락
미인가 기업 위험등급 6배·제재송금 3배…ESMA 명단은 321곳으로 확대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규제법(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 전환 기간이 2026년 7월1일(현지시각) 끝난 뒤, 유럽경제지역(EEA) 내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 1,343곳 가운데 281곳만 인가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62곳은 인가를 받지 못한 채 마감을 넘겼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 랩스(TRM Labs)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이제 EU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재편하거나, 인가받은 업체로 고객을 이전해야 한다. TRM 랩스 조사에서는 미인가 기업의 위험도가 인가 기업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 규제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가별 등록제에서 EU 통합 인가로
MiCA 이전에는 각국이 독자적인 등록·인가 체계를 운영해 국가마다 요구 조건이 크게 달랐다. MiCA는 이런 국가별 시스템을 하나의 통합 인가 체계로 대체했다. 2024년 12월30일(현지시각) 이전부터 합법적으로 영업 중이던 기업은 MiCA 143조3항에 따라 인가 절차를 밟는 동안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2026년 7월1일이 EU 전역 공통의 최종 마감일로 설정됐다.
인가 실적은 마감 전부터 시장 축소를 예고했다. 2026년 5월 기준 유럽증권시장청(ESMA) 등록부에는 인가된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 204곳이 올라 있었고, 이 중 51곳은 그해 들어 5개월 동안 새로 승인됐다. 당시 독일이 55곳으로 가장 많았고 네덜란드 25곳, 프랑스 17곳이 뒤를 이었다. 별도의 6월 보도에 따르면 MiCA 도입 전 유럽 전역에 등록된 암호화폐 기업은 3,000곳을 넘었지만 5월까지 인가를 받은 곳은 194곳에 그쳤다. 호건 로벨스(Hogan Lovells)는 기존 국가별 시스템에 등록됐던 기업 중 약 75%가 자격을 잃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독일·프랑스는 웃고, 폴란드는 0곳
TRM 랩스의 7월1일 기준 데이터를 보면 국가 간 인가 격차가 뚜렷하다. 독일이 55곳으로 가장 많은 자국 인가를 내줬고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각각 29곳으로 뒤를 이었다. 몰타는 20곳, 키프로스는 19곳을 승인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145개 기업이 영업 중이었음에도 자국 인가는 9곳에 불과했다.
몰타·키프로스·아일랜드·룩셈부르크 4개국은 합쳐서 TRM이 확인한 272건의 자국 인가 중 63건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이전 등록부에서 확인된 영업 기업은 101곳에 그쳤다. 인가 건수가 실제 영업 기업 수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앞서 프랑스 금융시장청(AMF) 마리안 바르바라야니(Marie-Anne Barbat-Layani) 청장이 지목한 규제 유치 경쟁, 이른바 “바닥으로의 경쟁”과 맞물려 있다.
리투아니아는 대조적인 사례다. 이전 등록부에 400곳 넘는 기업이 있었지만 실제 인가를 받은 곳은 8곳뿐이었다. 폴란드는 이전 등록부가 1,800건을 넘었는데도 자국 인가를 단 한 건도 내주지 않았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역시 자국 인가 실적이 전혀 없었다.
MiCA의 여권 제도(패스포팅)는 어디서 영업하는지와 어느 규제 당국이 감독하는지를 분리시킨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은 독일에서 영업하는 인가 업체 57곳 중 55곳에 자국 인가를 내줬다. 반면 이탈리아는 37개 인가 업체가 영업 중이었지만 자국 인가는 9건에 그쳤고, 스페인은 34개 업체가 영업하는 가운데 12건을 인가했다. 룩셈부르크에서 5월 인가를 받은 유동성 공급업체 B2C2는 이 여권 제도를 활용해 EU 27개 회원국과 EEA 3개국에서 규제된 장외 현물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코인베이스(Coinbase), 비트판다(Bitpanda), 크라켄(Kraken) 등도 서로 다른 인가 기반에서 여러 유럽 시장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
미인가 기업, 위험도와 제재 노출 모두 높아
TRM 랩스는 인가 여부에 따라 위험 프로파일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미인가 기업의 12%가 “높음” 또는 “심각” 등급의 위험도를 받았는데, 이는 인가 기업의 2%보다 6배 높은 비율이다. “심각” 등급을 받은 기업은 모두 미인가 그룹에서만 나왔다.
불법 자금과의 직접적인 연결성도 차이가 컸다. 미인가 기업들은 제재 대상 거래상대방에게 총 50억 달러를 직접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가 기업의 17억 달러보다 약 3배 많은 규모다. 대다수 기업은 불법 자금과 직접적인 접촉이 적었지만, TRM은 일부 미인가 기업이 거래량의 1~12%를 불법 주소로 직접 보낸 사례를 확인했다. 인가받은 업체 중에서는 불법 자금 노출 비율이 1%를 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인가 명단은 계속 늘지만 공백은 여전
7월3일(현지시각) 기준 ESMA의 임시 등록부는 300개 CASP로 확대됐다. 7월1일 마감 전후로 57개 기업이 새로 추가된 결과다.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와 팔콘X(FalconX) 등도 이때 포함됐다. 이후 7월31일(현지시각)에는 ESMA가 네 번째 등록부 갱신을 통해 전체 인가 CASP 수를 321곳으로 늘렸다. 새로 추가된 곳은 독일 협동조합은행인 폭스방크 라이파이젠방크 오버바이에른 쥐트오스트(Volksbank Raiffeisenbank Oberbayern Suedost), VR방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미테(VR Bank Schleswig-Holstein Mitte), VR방크 란다우멩코펜(VR-Bank Landau-Mengkofen)과 스페인의 바스크 페이(Basque Pay), 핀테크 페이먼츠(Fintech Payments), 프랑스의 피나리(Finary), 우르통(Woorton), 블록체인 프로세스 시큐리티(Blockchain Process Security), 셰어스 파이낸셜 애셋(Shares Financial Assets) 등이다. 같은 날 ESMA는 이탈리아 소재 세 곳, 세르보 렌디스코(Servo Lendisco), 플란덴조(Flandenzo), 코로나 폰덴자(Corona Fondenza)를 미인가 명단에 새로 올렸다.
자산참조토큰(ART) 발행사 등록은 여전히 0곳, 전자화폐토큰(EMT) 발행사는 41곳으로 이번 갱신에서는 변동이 없었다. 앞선 세 차례 갱신에서도 각각 9곳, 16곳, 7곳이 추가됐다. 그 명단에는 세계 최대 수탁은행 중 하나인 BNY(BNY), 암호화폐 결제 선도업체 비트페이(BitPay B.V.), 아시아권 주요 기관용 디지털자산 업체 OSL EU, 글로벌 보안업체 계열의 기관용 암호화폐 수탁 플랫폼 프로세구르 크립토(PROSEGUR CRYPTO) 등이 포함됐다.
MiCA 체계에서 실제 인가·감독 권한은 각국 관할당국(NCA)이 쥐고 있고 ESMA는 기술표준 마련과 등록부 관리, 감독 조율을 담당한다. 다만 몰타·룩셈부르크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가 인가 유치 경쟁의 거점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유럽집행위원회는 디지털자산 감독권을 ESMA로 재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2025년 12월4일(현지시각) “시장통합·감독” 패키지를 채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4월9일(현지시각) 낸 의견서에서 CASP에 대한 인가·모니터링·집행 권한을 각국 당국에서 ESMA로 옮기는 방안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인가 명단은 계속 늘고 있지만, 1,000곳이 넘는 기업이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남아 있는 현실이 이런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