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자, 6·25참전자이자, 5·18유공자…'역대급 가문' 출신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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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다시 조명되는 한 가수의 뿌리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한 스타의 집안 내력이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알고 보니 역대급 집안의 자손이라는 가수 청하. / 청하 인스타그램
알고 보니 역대급 집안의 자손이라는 가수 청하. / 청하 인스타그램

그룹 아이오아이 출신으로 데뷔해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여자 솔로 가수로 자리잡은 청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청하는 화려한 무대와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이자 6·25 참전용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한 사람의 생애 안에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한국전쟁 참전, 5·18민주화운동까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모두 겹쳐 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연예인 가족사를 넘어선다.

청하의 외조부는 석은 김용근 선생이다. 1917년 10월 28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 죽현마을에서 태어났다. 목포 영흥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학교에서 종교부장을 맡으며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참여했다가 평양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는 일을 겪었다. 당시 숭실학교에는 훗날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윤동주, 목사이자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한 문익환이 동문으로 재학 중이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옥고만 세 차례, 항일운동으로 다진 청년기

1937년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의 개량학당에서 교육활동을 이어가던 중 일제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첫 번째 옥고였다. 1939년에는 목포 유달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같은 해 조주일 여사와 결혼했다. 이듬해인 1940년에는 연희전문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석은 김용근 선생. /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석은 김용근 선생. /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하지만 1942년 다시 일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2년 실형을 선고받는다. 신사참배 거부에 이어 두 번째로 겪은 실형이었다. 국내 자료에서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일제 탄압으로 두 차례, 총 3년여의 옥고를 치른 것으로 정리돼 있다. 1945년 출옥한 뒤 만주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광복을 맞았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강진으로 귀향해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46년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다시 시작했고, 졸업 후 경복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안정적인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터로, 다시 교단으로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1951년 육군 제9사단에 입대해 참전했다. 군무를 마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 동창이자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던 박병권 소장의 소개로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맡았다. 1954년부터 1964년까지 육사 강의와 함께 전주고등학교에서도 재직했는데, 이 시기 시인 신석정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1965년부터 1976년까지는 광주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를 거치며 역사교사로 재직했다. 이 기간 농구부 육성에도 관여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시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교육자로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 이력이다.

1978년 다시 고향 강진으로 귀향해 작천 노인대학 운영과 향토문화연구, 강연활동을 이어갔다. 은퇴 후에도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용근 선생 흉상. /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김용근 선생 흉상. / 석은 김용근 선생 기념사업회

제자들을 숨겨준 죄, 그리고 5·18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용근 선생의 삶은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는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를 받던 제자 윤한봉, 정용화, 김남표, 은우근이 강진으로 그를 찾아왔고, 선생은 이들을 숨겨줬다. 이 일로 같은 해 6월 구속됐고, 집행유예 형을 받고서야 풀려났다.

이 수감 생활이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계엄사령부 영창에 수감돼 있던 중 얻은 심근경색증이 이후 지병으로 이어졌고, 결국 1985년 5월 21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 선산에 안장됐던 유해는 1997년 가족들과 제자들의 뜻에 따라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됐다.

사후에 이어진 서훈, 100주년 흉상까지

김용근 선생은 타계 이후에도 그 공적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서훈을 받았다. 1987년에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공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후 2002년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공적을 인정받아 민주유공자로 추서됐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그리고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세 가지 타이틀을 모두 갖춘 이력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1983년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작천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신앙과 교육, 항일, 민주화운동을 아우르는 삶을 살았다. 2017년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광주교육문화회관 정원에 그의 흉상이 건립됐다. 교육자로서, 그리고 항일·민주화운동가로서의 발자취가 지역사회에서 공식적으로 기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수 청하. / 뉴스1
가수 청하. / 뉴스1

청하가 직접 밝힌 외할아버지 이야기

청하는 과거 유튜브 콘텐츠와 잡지 인터뷰를 통해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직접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다. 청하는 당시 학습 과정에 대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모르니 두렵더라"고 밝혔다. 이어 "말실수를 하거나 알아듣지 못할까 입을 다물게 되기 일쑤였다"며 역사 공부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특히 "외할아버지가 5·18민주화운동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셔서 언젠가 그 기록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고 말해, 자격증 취득의 동기가 외조부의 이력과 직접 맞닿아 있음을 드러냈다. 청하는 시험 준비 기간 2개월 동안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돌 출신 가수라는 대중적 이미지와는 다른, 자신의 뿌리를 진지하게 파고든 모습이다.

한 인물의 생애로 본 근현대사 압축판

김용근 선생의 생애를 시기순으로 살펴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국면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1930년대 신사참배 거부 운동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인한 옥고, 1940년대 일제 말기 만주 피신과 광복, 1950년대 한국전쟁 참전과 육사 강의, 1960~70년대 유신체제 하 교육자로서의 저항, 그리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진다. 한 세대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격변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이다.

강진 출신으로 목포, 평양, 서울을 오가며 학업을 이어갔고, 전주와 광주 일대에서 오랜 기간 교편을 잡았다는 점에서 그의 활동 반경은 전국 단위였다. 특히 평양 숭실학교 시절 윤동주, 문익환과 동문수학했다는 사실은 그가 몸담았던 시대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요약.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대한민국 근현대사 요약.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다음은 석은(碩隱) 김용근 선생 약력이다.

1917.10.28 -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현산리 죽현마을 출생

1932 - 목포 영흥보통학교 졸업, 평양 숭실학교 입학, 종교부장으로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와 동문)

1937 - 평양 숭실학교 졸업 후,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 소재 개량학당에서 교육활동 중, 일제 치안유지법 위반죄 6월 실형

1939 - 목포 유달초등학교 교사 부임(조주일 여사와 결혼)

1940 - 연희전문학교 사학과 입학

1942 - 일제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2년 실형

1945 - 출옥 후, 만주 피신 중, 해방을 맞음

1945.10 - 강진 귀향, 농촌계몽운동 투신

1946 - 연세대학교 사학과 입학

1950 - 경복고 교사 부임

1951 - 군입대(육군 제9사단)

1954-1964 - 육사 강의 , 전주고 재직(시인 신석정과 교분)

1965-1976 - 광주고·광주일고·전남고 재직(유신반대 학생시위 책임으로 사임)

1978 - 강진 귀향(작천 노인대학, 향토문화연구 및 강연활동)

1980.6 - 5·18민주화운동 관련 구속

1983 - 한국기독교장로회 작천교회 장로 임직

1985.5.21 - 소천(향년 69세)

1987 - 독립유공자 추서(애족장)

1997 - 국립 5·18민주묘역 이장

2002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추서

2017 - 탄생 100년 흉상건립 (광주교육문화회관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