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을 능가하는 악질 중의 악질…역사상 최악의 친일파는 사실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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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보다 더한 매국노'…일본으로부터 400억 은사금을 받은 진짜 빌런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이자 한국 최초의 양의원 개원가로 알려진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의혹이 불거지며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하영의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친일 단체 활동 기록과 내선일체 옹호 발언이 재조명되고, 소속사의 성급한 해명 번복까지 더해지면서 대중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해당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가십을 넘어, 잊혀가던 친일파 명단과 미완의 친일 청산·처단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다시금 사회적 화두로 끌어올렸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 유튜브 ‘국뽕주의부’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 유튜브 ‘국뽕주의부’

역사의 법정에서 제대로 단죄받지 못한 친일파들의 행적이 다시금 조명을 받으면서, 대중의 관심은 매국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이완용을 넘어 더욱 치밀하고 악랄했던 친일 인사들에게로 확장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재조명되는 인물이 바로 '윤덕영'이다.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순종 압박에 앞장서며 실질적인 매국 행위를 주도했던 윤덕영은 역사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이완용보다 더한 친일파’로 평가받을 만큼 일제 권력의 핵심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인물로 불린다.

문화통치가 만든 또 다른 적, 친일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눌러버리는 무단통치를 택했다. 헌병과 순사가 거리를 장악했고 학교 교사조차 제복을 입고 칼을 찼다. 일본은 이런 강경한 통치가 독립 의지 자체를 꺾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그 계산은 틀렸다는 게 드러났다. 이듬해부터 일본은 통치 방식을 문화통치로 바꿨다. 조선인에게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고 회유책을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조선총독부 3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이 시기 친일 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부터 조선 내부에서 독립운동보다 현실 순응을 택하는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이후 친일파로 분류됐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매국노 '을사오적'. / 유튜브 '디글 :Diggle'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매국노 '을사오적'. / 유튜브 '디글 :Diggle'

순종의 옥새를 빼앗은 윤덕영의 '손'

친일파 하면 대부분 이완용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 현장에서 벌어진 결정적 장면의 주인공은 이완용이 아니었다. 역사 스토리텔러 썬킴 등에 따르면 당시 회의 탁자 위에는 대한제국을 일본에 통째로 넘긴다는 병합 조약 문서가 놓여 있었다. 순종은 옥새를 든 채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서명 한 번으로 나라가 사라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순종의 부인인 순정효황후가 달려와 남편의 옥새를 빼앗아 자신의 치마폭 속에 감췄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무리 친일 대신들이라도 황후의 치마폭에 손을 넣어 옥새를 빼낼 수는 없었다. 이 옥새를 결국 되찾아 순종에게 다시 쥐여준 인물이 윤덕영이다. 윤덕영은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였다. 조카며느리인 황후를 설득해 옥새를 빼앗고 병합 조약에 도장이 찍히도록 만든 실질적 조력자였던 것.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 유튜브 '  디글 :Diggle'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 유튜브 ' 디글 :Diggle'

이완용의 4배, 은사금이 말해주는 것

병합 이후 일본은 협조한 조선 귀족들에게 은사금을 지급했다. 이완용은 약 20억원 상당의 은사금을 받았는데 윤덕영은 그보다 훨씬 많은 400억원 상당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도 이완용은 윤덕영의 배후에 서 있던 얼굴마담에 가까웠고 윤덕영은 은사금으로 이완용 소유 땅의 약 4배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게 됐다고 소개된 적 있다. 그런데도 대중에게 윤덕영이라는 이름은 이완용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이완용은 스스로 나서서 조약에 서명하고 언론 앞에 자신을 드러내길 즐긴 인물이었던 반면 윤덕영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배후에서 실무를 조율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덕영은 경술국치에 찬성한 인물 명단인 경술국적에 이름이 올라 있고 장충단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행사를 주도했으며 고종을 협박해 순종을 일왕에게 알현시키도록 만든 인물로도 거론된다.

경복궁을 내려다본 벽수산장

윤덕영이 은사금으로 사들인 땅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 통인시장과 서촌 먹자골목이 있는 바로 그 자리다. 그는 이곳 인왕산 자락에 건평 800평 규모의 프랑스식 저택을 지었다. 이름은 자신의 호를 딴 벽수산장이었다. 당시 조선 언론은 이 저택을 조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으로 소개했다. 국내 최초로 양변기가 설치됐고 200평 규모의 인공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었으며 천장을 아쿠아리움처럼 꾸며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부분은 위치다. 인왕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벽수산장 터에서는 경복궁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조선 왕실의 정궁을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술자리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다. 전현무는 방송에서 당시 윤덕영을 묘사한 기록에 집요함과 대담함, 거칠 것 없는 태도, 옛 신하로서의 정이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종로구 서촌 일대, 통인시장과 서촌 먹자골목 등이 있는 일대를 다 사들였던 윤덕영.
종로구 서촌 일대, 통인시장과 서촌 먹자골목 등이 있는 일대를 다 사들였던 윤덕영.
벽수산장은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이 서울특별시종로구 옥인동 일대에 조성한 대규모 저택 단지이다. 이 단지는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복합 주거 공간으로, 당대 상류층 주거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 유튜브 '디글 :Diggle'
벽수산장은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이 서울특별시종로구 옥인동 일대에 조성한 대규모 저택 단지이다. 이 단지는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복합 주거 공간으로, 당대 상류층 주거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 유튜브 '디글 :Diggle'

동생 윤택영은 채무왕

윤덕영의 동생 윤택영도 만만치 않은 친일 행적을 남겼다. 순종의 왕비인 순정효황후의 친아버지가 바로 윤택영이다.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로 별명이 채무왕일 정도로 막대한 빚을 졌다고 전해진다. 은사금으로 이완용이 30억원 정도, 윤택영이 100억원 정도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모두 탕진했다고 전했다. 사위인 순종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일본 정부에까지 손을 벌렸다. 일본 의회는 자국에 충성한 귀족이 빚 독촉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으로 특별 예산을 편성해 빚을 갚아줬는데 윤택영은 이후에도 다시 빚을 졌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중국으로 도피했다고 알려졌다.

처단된 친일파는 0명!?

윤덕영은 큰 탈 없이 천수를 누리다 생을 마쳤다. 반면 친일파 처단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광복 이후에도 친일파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미군정은 행정 공백을 이유로 친일 관료들을 다시 등용했고 이후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이른바 반민특위도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 해체됐다. 이 과정을 통해 실제로 처단된 친일파는 0명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악의 매국노로 불리는 윤덕영. 그는 일제 협력 대가와 부정 축재로 서울 종로구 명당 한가운데를 독식했다. / 서울역사박물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리는 윤덕영. 그는 일제 협력 대가와 부정 축재로 서울 종로구 명당 한가운데를 독식했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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