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가 싹 바꿔 버렸다...'한국 주식 부자' 1위는?
작성일
1년 만에 64조 증가한 기업도 있어...플랫폼·게임은 반대로 밀려나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열풍이 국내 주식 부호 순위를 다시 바꾸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플랫폼, 게임, 바이오 기업 창업자들이 이름을 올렸던 상위권 자리가 최근 1년 사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관련 기업 오너들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주식부호 순위는 단순히 현금으로 가진 재산을 비교한 것이 아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현재 시장 가격을 계산한 ‘지분가치’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지분가치란 기업 오너나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현재 주가를 곱해 계산한 금액으로, 주가가 오르면 같은 지분을 갖고 있어도 재산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국내 개인 주식부호 상위권은 삼성가 인사들이 사실상 장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보유 주식 가치가 46조2465억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지켰다.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은 지난해 3위에서 2위로 올라섰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4위에서 3위로,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5위에서 4위로 각각 한 계단씩 상승했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AI와 반도체 기대감으로 크게 오르면서 보유 지분 가치도 함께 증가한 결과다.
특히 삼성가 4명의 지분가치 증가 폭은 눈에 띈다. 지난해 7월 31일 기준 35조9243억원이었던 이들의 보유 주식 가치는 올해 7월 31일 기준 100조4212억원으로 늘었다. 1년 만에 약 64조5000억원이 증가한 셈이다.
이는 단순히 삼성전자 주가 상승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도 함께 오르면서 오너 일가가 보유한 여러 계열사 지분 가치가 동시에 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돈의 흐름 바꿨다”…SK·장비기업 오너들도 급부상
삼성뿐 아니라 SK그룹 오너 일가 역시 반도체 열풍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었다.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핵심 기업으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관련 지분을 보유한 인물들의 재산 순위도 크게 뛰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지분가치는 지난해 2조6352억원에서 올해 7조2349억원으로 증가했다. 증가율은 174.54%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개인 주식부호 순위도 지난해 13위에서 올해 7위로 여섯 계단 상승했다.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역시 지난해 34위에서 올해 14위로 뛰어올랐다. SK그룹 지주회사와 주요 계열사의 주가 상승이 오너 일가의 보유 주식 평가액을 끌어올린 것이다.
반도체 장비 기업 오너들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반도체 장비 기업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 장비 수요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반도체 밸류체인’의 중요한 한 축으로 평가받는다.
밸류체인은 특정 산업에서 제품이 만들어지고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이어지는 전체 공급 구조를 의미한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설계 기업, 소재 기업, 장비 기업, 제조 기업 등이 모두 연결돼 있어 어느 한 분야가 성장하면 관련 기업 전체가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개인 주식부호 순위가 지난해 12위에서 올해 9위로 상승했다. 한미반도체는 AI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주가 상승의 수혜를 입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상승 폭은 더욱 컸다. 그의 지분가치는 지난해 3280억원에서 올해 1조5006억원으로 357.43% 증가했다. 순위 역시 110위에서 28위로 82계단 뛰어올랐다.
성규동 이오테크닉스 회장도 44위에서 36위로 상승했고, 엄평용 유진테크 회장은 104위에서 41위로 올라서며 처음으로 개인 주식부호 상위 50명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히 몇몇 기업 주가가 오른 현상이 아니다. AI 산업 확대와 함께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AI 시대에 밀려난 플랫폼·바이오…“시장의 관심이 이동했다”
반도체 기업 오너들의 약진과 반대로 플랫폼, 콘텐츠, 게임, 바이오 기업 대주주들은 순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과거 국내 증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성장 산업들이 최근 1년 동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으면서 오너들의 지분가치도 줄어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다. 김 창업자는 지난해 개인 주식부호 순위 10위에서 올해 17위로 내려갔다. 하이브 방시혁 의장도 9위에서 18위로 떨어졌고,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은 14위에서 23위로 밀렸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역시 24위에서 29위로 순위가 하락했다. 넷마블 창업자인 방준혁 의장은 30위에서 49위까지 내려가며 상위권에서 크게 밀려났다.
이들의 순위 하락은 반드시 기업 가치가 크게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 주식부호 순위는 상대 평가이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다른 기업 주가가 더 많이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순위가 내려갈 수 있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AI와 반도체 관련 기업으로 투자금이 집중됐다.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을 찾는 과정에서 AI 인프라, 반도체, 전력 설비 등 분야에 높은 평가를 준 반면 플랫폼과 게임 등 일부 성장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바이오 업종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바이오 기업은 신약 개발 성공 여부, 임상 결과, 기술 수출 가능성 등에 따라 기업 가치가 크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높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는 분야지만, 개발 과정의 불확실성과 투자 심리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는 지난해 개인 주식부호 7위에서 올해 13위로 내려갔다. 파마리서치 정상수 회장은 19위에서 32위로,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는 36위에서 45위로 하락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 형인우 대표 역시 29위에서 48위로 밀렸다.

숫자로 확인된 AI·반도체 쏠림…주가가 만든 부의 이동
개인 주식부호 순위 변화는 실제 주식시장 흐름과 연결돼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부터 올해 7월 말까지 반도체 관련 지수는 국내 증시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KRX SK하이닉스 지수는 551.99% 상승했고, KRX 삼성전자 지수도 261.57% 올랐다. KRX 정보기술 지수와 KRX 반도체 지수 역시 각각 237.33%, 220.34% 상승하며 시장 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AI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상승세는 더욱 강했다. KRX K-AI 반도체TOP2+ 지수는 같은 기간 324.50% 급등했고, KRX 반도체 Top15 지수와 KRX AI 반도체 지수도 각각 232.01%, 210.51%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KRX 인터넷 TOP10 지수는 18.76% 하락했고, KRX 바이오 TOP10 지수와 KRX 게임 TOP10 지수도 각각 17.61%, 14.10%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