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왜 세계를 사로잡았나… 수출 상반기만 1兆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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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열풍에 올라탄 한국 라면, 수출 사상 최대 기록
한국 라면의 해외 수출이 올 들어 뚜렷한 호조를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라면 수출액은 9억3540만달러(약 1조3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9% 늘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지난해 9월에 넘어섰던 연간 10억달러 고지도 올해는 한 달 이상 앞당겨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K-푸드 전체 수출 증가세를 라면이 사실상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라면 수출은 2014년 2억1000만달러에서 2017년 3억8000만달러, 2020년 6억달러, 2023년 9억5000만달러로 뛰었다. 2014년 이후 11년 연속 성장했고, 최근 5년(2021~2025년)만 놓고 보면 연평균 증가율이 23%에 달한다. 2023년 기준 수출 대상국은 132개국으로, 당시 수출액은 중형 휘발유 승용차 약 5만3000대를 파는 것과 맞먹는 규모였다. 올해 상반기(9억3540만달러)만으로 이미 2023년 연간 실적에 근접한 셈이다.
K-콘텐츠 타고 퍼진 '라면 노출'
라면 수출 호조의 배경에는 K-팝과 K-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국내 라면 업체들은 잇따라 협업 제품을 내놓았다. 농심은 신라면 글로벌 앰배서더로 걸그룹 에스파를 발탁했고, 해외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직접 라면을 조리해 먹는 체험형 소비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최근 한국어 발음 그대로인 '라면(ramyeon)'이 새 표제어로 등재되기도 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라면 수입액은 5억4384만달러로 전년보다 28.6% 늘었는데, 이 가운데 한국산이 2억3843만달러로 점유율 44.1%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전년 대비 50.8% 증가한 수치다. 2위 이탈리아(12.4%), 3위 중국(8.6%)과 격차가 크다. 미국은 2014년 이후 줄곧 한국을 라면 수입 1위국으로 두고 있다. 미국 래퍼 카디비(Cardi B)가 SNS에 한국 라면을 어렵게 구했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농심재팬 매출은 2022년 873억원에서 지난해 1349억원으로 3년 새 54% 늘었다. 지난해 일본 경제지 닛케이가 선정한 '밥과 잘 어울리는 아시아 즉석면 톱10'에 농심 오징어짬뽕이 이름을 올렸고, 신제품 신라면 툼바는 편의점 채널을 중심으로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700만봉이 팔렸다.
고물가에 뜬 '한 끼 대용식'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고물가 흐름도 한몫했다고 본다. 외식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즉석면으로 눈을 돌렸고, 마침 K-콘텐츠로 인지도가 오른 한국 라면이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 2023년 국내 라면 생산액은 전년 대비 17.2% 늘어난 2조921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내수 침체 속에서도 수출이 산업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가 굳어졌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미국 월마트·코스트코 등 주류 유통 채널에 입점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며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회사 측은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커리불닭·마라불닭·하바네로불닭 등 현지 입맛에 맞춘 제품군을 늘려왔다. 이 결과 삼양식품의 올해 1분기 해외 매출은 5850억원으로 전년보다 38% 늘었고, 전체 매출의 82%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농심도 무슬림 문화권을 겨냥해 소고기 대신 새우를 넣은 할랄 인증 신라면을 선보이는 등 국가별 맞춤 전략을 펴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웃돌자 기업들은 앞다퉈 설비 투자에 나섰다. 농심은 부산 녹산에 수출 전용 공장을 짓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완공되면 수출용 라면 생산량이 연 7억개에서 12억개로 늘어난다. 삼양식품은 밀양 2공장에 이어 중국 자싱시에 첫 해외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오뚜기도 구미에 2000억원을 투자해 수출 전용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현재 7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해외 매출 1조1000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통상 정책도 뒷받침됐다. 농식품부는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와 검역 여건 개선, 현지 유통망 확보 지원이 수출 증가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K-푸드플러스 수출액은 70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라면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물류 차질 등 악재 속에서도 기업들이 우회 항로를 확보하며 대응력을 키운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한류 효과를 넘어 제품 경쟁력과 생산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성장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