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하나에 20만원이었던 브랜드가 갑자기 '홈쇼핑 저가상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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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니클라우스는 어쩌다 백화점서 홈쇼핑으로 밀려났나

프리미엄 골프웨어 '잭니클라우스'가 반팔 티셔츠 세 장을 묶어서 5만원대에 파는 브랜드로 주저앉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코오롱FnC)이 전개한 잭니클라우스는 티셔츠와 바지가 10만원대 중반에서 20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싼 프리미엄 골프웨어 브랜드였다. 겨울 아우터는 100만원에 육박할 만큼 값이 나갔다.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꼽히는 잭 니클라우스의 이름을 따 1985년 국내에 선을 보인 뒤 니클라우스 별명인 '골든베어'를 상징으로 내걸고 백화점 중심으로 유통하며 고가 정책을 지켜 온 코오롱FnC의 대표 골프 브랜드였다.
지금은 값이 딴판이다. 잭니클라우스 반팔 카라티셔츠 3종은 5만원대 초반, 남성 바지 3종은 4만9900원에 팔리고 있다. 티셔츠와 바지 모두 2만원도 안 하는 셈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백화점 매대를 지키던 브랜드가 홈쇼핑의 '묶음 특가' 상품으로 바뀐 결과다.
잭니클라우스 브랜드의 과거 위상은 지금도 일부 온라인몰에 남아 있는 구형 상품에서 확인된다. 코오롱FnC 시절 전개된 남성 레터링 하프 집업 아노락이 정가 19만9000원, 남성 스트레치 조거 바지가 정가 16만6800원에 책정돼 있다. 단품 하나가 10만~20만원대였던 브랜드가 지금은 세 벌 묶음을 그 절반 이하 값에 파는 브랜드로 바뀐 셈이다.
기류가 뒤바뀐 건 코오롱FnC가 지난해 1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다. 회사는 기존 7개 본부를 5개 본부 체제로 통합하며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잭니클라우스를 직접 전개하는 대신 서브 라이선스 구조로 돌렸다. 라이선스 전문 업체에 상표 사용권을 재허용해 상품을 생산·판매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앞서 2024년 말 코오롱FnC는 잭니클라우스와 헤드, 엘로드 등 주요 브랜드의 사업 방향을 바꾸면서 관련 부서 직원 50여명에게 직무 변경 또는 권고사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브 라이선스 사업권을 가져간 곳은 폰드그룹이다. 폰드그룹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웨어를 지난해 9월 중순부터 TV홈쇼핑, 온라인몰을 통해 팔기 시작했다.
폰드그룹의 정체성이 브랜드 성격 변화의 핵심이다. 폰드그룹은 코웰패션의 패션사업 부문이 인적분할해 설립된 회사다. 퓨마와 아디다스, 캘빈클라인 등 유명 상표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의류를 생산·판매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 TV홈쇼핑 등을 통한 대량 유통이 이 회사의 주력 무대다. 백화점 프리미엄으로 관리되던 브랜드가 홈쇼핑 물량 판매에 특화된 회사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판매 방식도 홈쇼핑 문법으로 바뀌었다. 잭니클라우스 신상품은 대부분 '3종' 묶음으로 판매된다. 남성 바지 3종이나 카라티셔츠 3종을 10만원 안팎에 파는 식이다. 여러 벌을 한 번에 묶어 개당 단가를 낮추고 무료배송과 무이자 할부, 즉시 쿠폰을 얹는 구조로 제품을 판다. 필드에서 입는 프리미엄 골프웨어라기보다 일상복에 가까운 이지웨어 상품군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브랜드 가치가 급락한 근본 원인은 유통 채널의 성격 변화에 있다. 프리미엄은 상품 자체의 품질뿐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자주 노출되며 팔리느냐에 좌우된다. 백화점이라는 제한된 통로로 관리되던 상품이 방송 편성과 자사몰 특가로 상시 노출되면 소비자가 인식하는 브랜드의 격도 함께 내려가기 마련이다. 희소성과 유통 통제가 무너진 자리에 '자주 보이는 싼 옷'이라는 이미지가 들어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코오롱FnC가 서브 라이선스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그동안 비싼 값을 치르고 잭니클라우스를 사 온 소비자들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리미엄 비용을 얹어서 산 옷과 같은 상표를 단 제품이 홈쇼핑 상품으로 싸게 풀린다면 기존 구매자의 배신감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당하게도 코오롱FnC는 잭니클라우스와 뿌리가 겹치는 골프 브랜드를 자기 손으로 따로 키우고 있다. 온라인 전용으로 론칭한 골프웨어 '골든베어'다. 골든베어는 다름 아닌 잭 니클라우스의 별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코오롱FnC 스스로도 이 브랜드가 전설적 골퍼 잭 니클라우스의 별명에서 유래했다고 소개한다. 잭니클라우스 브랜드가 헤리티지로 내세워 온 바로 그 '황금곰'을 상표 이름으로 떼어내 별도 브랜드로 앉힌 것이다. 코오롱FnC는 골든베어를 스트리트 무드를 앞세운 2030 영골퍼용 브랜드로 규정하고, 배트맨과 벨리곰, 위글위글 등과의 협업으로 캐릭터·스트리트 색채를 키워 왔다. 잭 니클라우스라는 인물의 상징 자산 가운데 알맹이에 해당하는 골든베어는 자사 브랜드로 붙들어 MZ세대 시장을 겨냥해 직접 키우면서 그 이름값의 원조인 잭니클라우스는 서브 라이선스로 넘겨 홈쇼핑 저가 상품으로 흘러가도록 한 셈이다.
배경에는 골프웨어 시장 자체의 침체가 깔려 있다. 패션비즈와 엠피아이(MPI) 추산에 따르면 국내 골프웨어 시장은 2022년 4조2500억원을 정점으로 2023년 3조7500억원, 2024년 3조4500억원, 2025년 3조1400억원으로 3년 연속 줄었다. 코로나19 국면의 과잉 공급이 걷히며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국면이다. 코오롱FnC는 2023년 사상 최대 매출인 1조1274억원을 찍은 뒤 실적이 뒷걸음질 치자 부실 브랜드 정리와 사업 효율화에 속도를 냈다. 잭니클라우스의 서브 라이선스 전환은 그 연장선에 있다.
상표만 남기고 운영 주체와 유통을 바꾸는 라이선스 방식이 브랜드의 격을 빠르게 흔들고 있다. 데상트코리아의 르꼬끄스포르티브골프가 백화점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골프웨어 업계에서는 비슷한 구조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