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만 유지 vs 한글 함께 표기…광화문 현판,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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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200명 참여한 첫 ‘모두의 토론회’서 찬반 팽팽
원형 유지 의견 우세…정부, 추가 설문 거쳐 정책 방향 검토
광화문에 기존 한자 현판과 함께 한글 현판을 추가로 달지를 놓고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섰다. 전문가와 국민 200명이 하루 동안 공개 토론을 벌였지만 문화유산의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한글로 드러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면서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는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첫 번째 ‘모두의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윤호중 행안부 장관을 비롯해 문화유산·역사·한글·도시경관 분야 전문가와 사전 모집으로 선정된 국민 200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으며 전문가 발제와 패널 토론, 국민 소그룹 토론 순으로 이어졌다.
찬성 측은 광화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간인 만큼 한글의 상징성과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함께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은 광화문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외국인이 가장 먼저 만나는 대한민국의 얼굴로 규정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에 오늘날의 가치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글 현판 병기가 기존 문화유산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이어갈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반대 측은 이미 복원이 완료된 문화유산에 새로운 현판을 더하는 것은 기존 형상을 바꾸는 중첩적 개입이라고 맞섰다. 김현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과거 광화문 현판이 바뀔 때마다 하나의 현판을 선택했지만 지금 논의되는 방안은 이미 복원된 건축물에 새로운 상징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판을 바꾸거나 더하는 대신 전시와 해설, 교육 등을 통해 한글의 의미를 확장하는 편이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패널 토론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배웅규 중앙대 교수는 한글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한글의 상징성을 인위적으로 충돌시킬 수 있다며, 광화문 현판 대신 과거 집현전을 되살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반면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는 한때 문화 파괴라는 비판을 받았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현재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다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교수는 유리 피라미드 건설 과정에서 루브르궁 자체의 형상은 바뀌지 않았다며 광화문 현판 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원형 유지 의견 우세…‘한자·한글 쌍현판’은 104 대 101

국민 참여자들은 21개 조로 나뉘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소규모 토론을 진행했다. 일부 조는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역사도 만들어야 한다며 한글 현판 추가에 찬성했다. 반면 한자 현판을 유지한다고 해서 사대주의가 생기거나 한글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다수 조는 한쪽 결론을 내리기보다 드론쇼와 LED, 미디어파사드, 전시 등을 활용해 한글을 알리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토론 전후 진행된 설문에서는 광화문을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우세했다. ‘문화유산은 고증을 거쳐 복원된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07명이었고, ‘그렇다’는 응답은 토론 후 63명으로 집계됐다. 두 응답을 합하면 170명이다.
한글 현판을 달지 않더라도 전시·행사·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한글의 가치를 충분히 알릴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해당 문항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토론 후 104명, ‘그렇다’는 응답은 51명이었다. 반면 기존 한자 현판을 유지하면서 한글 현판을 함께 다는 방안에는 찬성과 반대가 팽팽했다. 찬성 취지의 응답은 104명, 반대 취지의 응답은 101명으로 불과 3명 차이에 그쳤다.

광화문 현판은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이 걸렸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훼손됐고, 196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 현판이 설치됐다. 2010년 경복궁 복원 사업을 계기로 한자 현판으로 교체됐으며 현재는 고증을 거쳐 2023년 새로 제작된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의 한자 현판이 걸려 있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 결과만으로 한글 현판 병기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추가 의견 수렴을 이어갈 방침이다. 문체부는 누리집에 의견 게시판을 열고 전문가 조사와 대국민 설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장과 온라인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향후 정책 방향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행안부는 오는 다음달 29일 ‘에스컬레이터 안전 이용’을 주제로 두 번째 ‘모두의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 한 줄 타기와 두 줄 타기 문제를 놓고 국민 의견을 듣는다. 국민 참석자 200명을 공개 모집하며, 참여 희망자는 다음달 3일부터 10일까지 행안부 누리집이나 대국민 온라인 소통 플랫폼 ‘소통혁신24’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