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도 부족하다… '7000만' 흥행 공약까지 나온 한국 영화

작성일

복수극 진부함 깬 기이한 도로 위 여정… 명품 배우 4인의 압도적 앙상블

기존 한국 영화계에서 소비돼 온 ‘복수’는 대개 차갑고 처절하거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언어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여기, 그 뻔한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비범하고도 기괴한 가족 이야기가 관객을 찾아올 준비를 마쳤다.

영화 '경주기행'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경주기행'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수학여행을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의 생일날, 남겨진 엄마와 세 자매가 봉고차 트렁크에 '그놈'을 싣고 도로 위로 나선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여본 적 없는 네 여자가 벌이는 유쾌하면서도 지독한 복수극, 영화 ‘경주기행’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경주기행’ 제작보고회 현장. 이날 행사에는 연출을 맡은 김미조 감독을 필두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진솔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도시, 이름, 기이한 행동”…제목 속 숨겨진 묵직함

‘경주기행’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천년고도 경주로 떠나는 아늑하고 유유자적한 여행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김 감독이 설계한 작품 속 제목의 의미는 훨씬 더 입체적이고 다층적이다.

영화 '경주기행' 예고 영상 중 일부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경주기행' 예고 영상 중 일부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김 감독은 제목에 담긴 중의적 메시지부터 차근차근 짚어냈다. 김 감독은 “영화의 제목인 ‘경주기행’은 우리가 익히 아는 도시 ‘경주’라는 공간적 배경이자 8년 전 떠나보낸 막내딸의 이름인 ‘경주’를 뜻한다. 여기에 여행을 의미하는 기행(紀行)과 기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뜻하는 기행(奇行)이라는 의미가 동시에 중첩돼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순박했던 한 가족이 비극적인 상실을 겪은 후 스스로 사적 제재에 나서는 파격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김 감독은 “벌레 한 마리조차 감히 죽이지 못하던 네 여자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직접 처벌을 집행하러 나선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면서 “사적 복수의 쾌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상실이라는 고통과 맞닥뜨린 남겨진 이들이 과연 그 아픔을 어떻게 버텨내고 서로의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보듬으며 이해해 나가는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결국 영화는 끝까지 서로를 내려놓지 않는 사랑, 지독하고도 강렬한 애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연출 의도를 털어놓았다.

스크립터와 배우로 만났던 특별한 인연… 화려한 캐스팅

이날 제작보고회에서는 감독과 배우들 사이의 남다른 인연과 캐스팅 비화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극의 중심축을 잡는 엄마 ‘옥실’ 역의 이정은과 김 감독의 인연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경주기행' 속 네 모녀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경주기행' 속 네 모녀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이정은은 “과거 내가 출연했던 한 영화 현장에서 김 감독님이 스크립터로 일하며 영화를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감독님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처음 전달받았다”며 “이후 딸 역할을 맡을 배우들의 캐스팅을 기다리느라 약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당초 감독님과 내가 함께 손꼽아 기다리고 꿈꿨던 배우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대로 캐스팅돼 현장에 모였을 때 그 감회가 정말 남달랐고 매우 뜻깊었다”고 회상했다.

첫째 딸 ‘장주’ 역으로 분한 공효진 역시 남다른 비하인드를 전했다. 그는 당초 일정 문제로 인해 두 차례나 출연 제안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공효진은 “시나리오 자체가 정말 몰입감 있고 재미있었지만 당시 내 일정 때문에 혹여나 작품에 민폐를 끼치게 될까 봐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었다”면서 “하지만 이후 촬영 일정이 조금 미뤄지면서 감사하게도 다시 제안이 돌아왔다. 무엇보다 엄마 역할로 이정은 선배님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실제로 공효진은 출연을 결심한 직후 이정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배님을 옆에서 든든하게 돕고 싶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이정은 역시 “효진 씨의 그 따뜻한 전화 한 통이 내가 이 작품을 확고하게 결정하고 이끌어가는 데 있어 엄청난 힘이 됐다”고 화답하며 훈훈한 선후배 간의 의리를 과시했다.

둘째 딸 ‘영주’ 역의 박소담은 대본이 가진 압도적인 디테일과 현실적인 관계성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박소담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엄마가 둘째와 셋째를 대하는 모성애의 방식과 온도 차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섬세해서 놀랐다.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이 매우 정교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님이 실제로 네 자매 중 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래서 대본 속 자매들의 관계와 대사가 이렇게까지 생생하고 디테일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유튜브 '롯데엔터테인먼트'

막내 ‘동주’ 역을 맡아 열연한 이연은 “대본 안에 비극과 희극, 블랙코미디가 너무나 절묘하고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라며 “무엇보다 존경하는 대선배님들과 한 화면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현장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로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낼 수 있겠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고 당찬 소감을 밝혔다.

김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명품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게 된 소회를 밝히며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김 감독은 “여기 계신 네 분은 대한민국 연기 판을 주름잡다 못해,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작품을 그냥 찢어버리는 최고의 배우들”이라며 “영화 구상 초기 내 메모장 가장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적어뒀던 꿈의 캐스팅이었다.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조합이었고 실제로 이분들과 촬영장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어 매 순간이 행복했다”고 극찬했다.

이어 영화 제작 과정의 고충과 배우들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김 감독은 “영화 한 편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때로는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나’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 때도 많지만 촬영장에서 배우분들이 펼쳐내는 놀라운 연기를 모니터로 관찰하고 있으면 그런 고통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유난히 지치고 무더웠던 여름날이었지만 배우들과 스태프 전원이 폭발적인 열정으로 현장을 가득 채워줬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작품을 향한 배우들의 자신감도 하늘을 찔렀다. 공효진은 “배우들은 작품에 임할 때 늘 관객분들이 어떤 그림과 전개를 상상하며 극장에 오실지 고민한다”고 전제한 뒤 “단언컨대 여러분이 머릿속으로 어떤 영화를 상상하시든 ‘경주기행’은 그 상상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논리나 선입견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극장에 오셔서 이 기이하고 유쾌한 여정을 마음껏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흥행 공약과 관객 수 목표를 둘러싼 유쾌한 입담이 터져 나와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목표 관객 수를 묻는 질문에 막내 이연이 “당초 300만 명을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꿔 '천만 관객'으로 가겠다”고 포문을 열자 김 감독은 “사실 저희 아버지가 명절 때마다 봉고 용돈 봉투에 ‘경주기행 7000만 대박’이라는 문구를 적어주신다. 그래서 나 역시 아버지의 염원을 담아 7000만 관객 정도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져 현장을 웃음으로 물들였다.

또한 이정은은 극 중 선보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에 대한 비하인드를 전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정은은 “이번 작품에서 선보인 머리 모양 때문에 주변에서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 선배님 같다는 이야기도 듣고 가수 이상순 씨를 너무 닮았다는 소리도 정말 많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상순 씨가 이 소식을 듣고 영화 시사회에 꼭 걸음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자리를 빌려 정식으로 초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여 객석의 환호를 끌어냈다.

국내 개봉 전 세계 영화제가 먼저 알아보다

영화 ‘경주기행’이 가진 독창적인 아우라와 압도적인 작품성은 이미 국내 정식 개봉에 앞서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영화 '경주기행' 속 살인범을 납치한 가족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경주기행' 속 살인범을 납치한 가족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작품은 제45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세계 최초 공개되며 해외 평단과 관객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상영 직후 현지 주요 매체와 평단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씁쓸한 다크 유머와 깊고 짙은 감정선으로 절묘하게 결합해낸 극상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어 개최된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는 한층 더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복수라는 진부하고 고전적인 클리셰를 기분 좋게 뒤집어버리는 예측 불허의 전개 방식으로 현지 관객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결과 평단과 대중의 뜨거운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영예의 ‘관객상’을 안았다.

해외 영화제들의 뜨거운 초청 러브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6일 개막한 제30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당시 니콜라스 아르샹보 아시아 프로그래밍 디렉터는 찬사 가득한 호평을 남겼다.

영화 '경주기행' 출연 배우 박소담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경주기행' 출연 배우 박소담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튜브

니콜라스 디렉터는 “‘경주기행’은 단연 올해 영화제 라인업 중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단언하며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팽팽한 긴장감, 마침내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통해 관객을 눈물짓게 만든다.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감정선, 주연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 내공, 이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연출력과 완벽한 각본까지 영화가 갖춰야 할 모든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열기는 유럽 대륙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9월 2일 개막하는 제6회 바르셀로나한국영화제 역시 ‘경주기행’을 공식 초청 작품으로 선정했다. 영화제의 글로리아 페르난데스 프로그래머는 “사랑과 상실, 복수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뜨거운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이라며 “타협 없이 과감하게 치달아가는 전개와 그 속에서 빛나는 예측 불가능한 다크 유머가 일품”이라고 평가하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슬픔과 웃음, 긴장감과 가슴 먹먹한 감동이 봉고차라는 한정된 공간과 경주라는 특별한 여정 위에서 격렬하게 교차하는 영화. 해외 관객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독창적 복수극 ‘경주기행’은 오는 26일 전국 극장에서 정식 개봉해 한국 관객들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