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향수 만들러 간다”…외국인들이 서울에서 ‘손으로 만드는 체험’에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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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로 서울 거리가 젖는 날, 외국인 관광객들은 쇼핑몰 대신 향수를 조향하고 자신만의 립 컬러를 만드는 작은 공방으로 들어간다.

비가 오면 여행 계획도 달라진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여름 장마는 예상보다 큰 변수다.
경복궁과 북촌을 걷고, 한강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수동 골목을 구경하려던 일정이 비 때문에 갑자기 어려워질 수 있다. 우산을 쓰고 관광을 계속해도 신발과 옷이 젖고, 높은 습도까지 더해지면 금세 지친다. 이럴 때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실내 원데이 클래스다.
과거에는 비가 오면 박물관이나 대형 쇼핑몰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단순히 비를 피하는 것을 넘어, 여행 중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가져갈 수 있는 체험이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도자기와 반지, 향수, 화장품처럼 완성품이 손에 남는 활동이다. 서울시 관광 안내도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공방 체험으로 도자기·향수·반지·안경 만들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인기 체험은 ‘나만의 향수 만들기’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쉽게 도전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는 향수 만들기다.
향수는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비교적 참여하기 쉽다. 여러 향을 맡아보고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른 뒤, 정해진 비율에 따라 섞으면 된다. 달콤한 바닐라와 과일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강한 우디·머스크 계열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평소 향수를 구입할 때는 완성된 제품 중 하나를 골라야 하지만, 조향 체험에서는 서로 다른 향을 섞어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연남동의 한 향수 체험은 영어 진행이 가능하며, 참가자가 시트러스·플로럴·우디·스파이시·그린 등 36가지 향료를 시향한 뒤 약 60분 동안 50㎖ 오드퍼퓸을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성수동에서 운영되는 다른 체험은 50가지가 넘는 향료를 제공하고 영어·일본어·중국어·한국어 영상 안내를 지원한다. 초보자도 향을 고르고 섞어 완성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서울 공식 관광 안내에 소개된 을지로의 한 공방에서는 60가지가 넘는 전문 향료를 이용해 향수를 만들 수 있으며, 향수뿐 아니라 핸드크림과 캔들 등을 제작하는 클래스도 운영한다.

향기는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한다
향수 만들기가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완성품이 단순한 기념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구입한 열쇠고리나 엽서는 여행이 끝나면 서랍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만든 향수는 귀국한 뒤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향수를 뿌릴 때마다 비가 내리던 서울 골목과 공방의 분위기, 함께 향을 고르던 친구와의 대화가 다시 떠오른다.
기성품에는 브랜드의 이야기가 담기지만, 직접 만든 향수에는 여행자의 개인적인 기억이 들어간다. 이 과정은 작은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향료를 한 방울 더 넣었을 때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고, 너무 달아지면 상쾌한 향을 추가한다. 처음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향이 의외로 조화롭게 섞이기도 한다. 완벽한 조향 지식이 없어도 자신의 취향을 직접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외국인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화장품을 사는 대신 직접 만든다
두 번째로 주목받는 활동은 립스틱과 립글로스 같은 색조 화장품 만들기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K-뷰티 쇼핑은 이미 익숙한 관광 코스다. 그러나 올리브영이나 브랜드 매장에서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 최근에는 직접 색을 섞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만들어보려는 여행객도 늘고 있다. 공방형 클래스에서는 여러 색의 안료를 비교한 뒤 원하는 색을 조합한다. 핑크에 브라운을 조금 섞거나, 채도를 낮추기 위해 다른 색을 추가한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오렌지색을 넣으면 따뜻한 느낌이 나고, 보라색이나 푸른 계열을 더하면 차가운 느낌으로 바뀐다.
색을 고른 뒤에는 원하는 제형과 광택을 결정한다. 투명하고 촉촉한 립글로스를 만들 수도 있고, 발색이 선명한 립스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작은 컵과 스패출러, 안료를 앞에 두고 작업하다 보면 화장품을 만드는 연구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홍대에서 운영된 영어 립스틱 만들기 체험은 약 60분 동안 천연 원료를 이용해 원하는 색상의 립스틱 두 개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해당 체험에는 270건이 넘는 이용 후기가 쌓일 정도로 해외 여행객의 관심을 받았다.
‘내 피부색과 똑같은 파운데이션’도 만든다
직접 안료를 섞는 공방형 체험과 함께, 첨단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도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톤워크는 피부색을 측정하고 AI 조색 기술을 이용해 개인에게 맞는 파운데이션·쿠션·립 제품을 제작하는 서비스다.
얼굴용 제품은 150가지 색상, 립 제품은 366가지 색상 가운데 개인에게 맞는 컬러를 찾을 수 있다. 색상이 결정되면 양팔 로봇이 원료를 넣고 혼합해 용기에 담고, 맞춤 라벨까지 출력한다. 제조 과정은 10분 이내에 완료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현재 아모레성수에서는 전문 아티스트의 피부톤·스킨케어 상담을 거쳐 맞춤 파운데이션이나 쿠션을 만드는 60분 프로그램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체험은 전 과정을 손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공방과는 다르다. 참가자는 직접 자신의 피부색을 측정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선택하며, 기계가 실제 화장품을 제조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매장에서 가장 비슷한 색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피부를 기준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경험이 핵심이다.

외국인에게는 K-뷰티를 이해하는 수업이 된다
립스틱이나 파운데이션 만들기는 단순히 예쁜 기념품을 얻는 활동만은 아니다. 외국인은 이 과정을 통해 한국 화장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색과 질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왜 한국에서는 피부에 두껍게 올라가는 제형보다 얇고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베이스 제품이 인기인지, 립 제품에서 왜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핑크와 코럴 색상이 필요한지를 직접 비교해볼 수 있다.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K-뷰티 프로그램에서도 맞춤 파운데이션과 립 제품, 피부 분석 등을 한국 뷰티문화를 경험하는 핵심 콘텐츠로 소개한다. 프로그램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되며 메이크업 강의와 제품 체험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화장품을 단순히 구입할 때는 색상표와 광고만 본다. 하지만 직접 만들면 색이 어떤 비율로 조합되는지, 제형에 따라 발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게 된다. 관광과 쇼핑, 교육이 하나의 활동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미 K-뷰티에 관심을 가지고 입국한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제품을 구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만의 제품을 만드는 단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영어로 진행되거나 외국어 안내가 제공되는 체험은 한국어를 모르는 여행객도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완성품보다 중요한 것은 만드는 시간
향수와 화장품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은 공방에서 만든 제품보다 완성도가 높고, 이미 검증된 향과 색상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이 여행 중 직접 만드는 체험을 선택하는 이유는 완벽한 제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향과 색, 조금씩 달라지는 조합을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 여행에서 비가 내리면 계획했던 야외 일정이 취소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를 피해 들어간 공방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향수를 만들거나, 자신의 피부에 맞는 립 컬러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여행의 기억은 반드시 유명한 관광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은 테이블 앞에서 향료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색을 섞으며 집중했던 한 시간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