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상처, 이제 국가가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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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10·19 트라우마치유센터 순천 개소… 찾아가는 치유서비스로 고령 피해자·유족 심리 회복 지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여순10·19트라우마치유센터'가 지난 23일 순천에서 공식 개소해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번 센터 개소는 광주 5·18을 위한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제주 4·3을 위한 국립제주트라우마치유센터에 이어 여순 10·19사건 피해자를 위한 전담 치유기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오랜 세월 침묵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국가가 공식적으로 치유의 손을 내민 것이다.
개소식에는 장헌범 행정안전부 지방행정국장, 장은영 중앙위원회여순사건지원단장, 성재수 여순10·19항쟁유족총연합 상임대표, 손훈모 순천시장, 장길선 구례군수 등이 참석해 센터 출범을 축하하고 치유 사업의 성공적인 운영을 다짐했다.
◆ 국가폭력 피해자 전담 치유기관… 법적 근거 갖춘 공식 출범
여순10·19트라우마치유센터는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전문 치유기관이다.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고 건강한 삶의 회복을 지원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한다.
센터에는 센터장과 전문 치유 인력을 포함해 총 16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상담실과 사무공간, 휴게공간, 프로그램실, 물리치료실 등이 갖춰졌다. 단순한 상담 공간을 넘어 몸과 마음의 종합적인 회복을 지원하는 복합 치유 공간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운영 중인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광주 5·18)와 국립제주트라우마치유센터(제주 4·3)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유족이 체감하는 치유 성과를 축적해 향후 국가 차원의 정식 센터 건립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미술·음악·원예·여행 치유 프로그램… 몸과 마음 종합 회복 지원
여순10·19트라우마치유센터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심리 상담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 상담과 심리교육을 기본으로, 미술·음악·원예·여행 등 다채로운 치유 프로그램과 물리치료·신체 재활 프로그램까지 아우르는 종합 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이번 센터 운영의 핵심 사업으로 '찾아가는 방문 치유'가 주목된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동부권 각지에 분산 거주하고 있고 대부분 고령인 점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교통 접근성이 낮은 고령 피해자와 유족들이 센터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치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다.
치유센터가 단순한 개인 상담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에 치유와 연대의 가치를 확산하는 '공동체 회복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해자 개인의 심리 회복을 넘어 지역 공동체 전체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센터 측의 구상이다.
◆ 내년 국비 확보·실태조사 연구… 치유 정책 기반 다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치유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후속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국비 확보를 위해 '여순사건 지역회복(Local Recovery) 지표 체계 개발 연구'와 '여수·순천 10·19사건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오는 10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두 연구용역은 치유 정책의 객관적 근거와 실행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해 실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치유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함으로써, 향후 국가 차원의 정식 센터 건립과 지속적인 예산 지원의 근거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주순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경제실장은 "생존희생자와 유족이 오랜 세월 홀로 감당한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도록 따뜻한 치유 공간을 만들겠다"며 "치유센터가 상처의 기억을 넘어 서로를 위로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희망의 출발점이 되도록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 심용환 강사 특별강연… 300여 명과 '기억·배상·소통' 나눠
개소식에 이어 동부청사 이순신강당에서는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심용환 강사의 특별강연이 진행됐다. 시민과 단체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폭력의 역사를 치유하다'를 주제로 기억, 배상, 소통의 의미를 짚어보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됐다.
강연은 여순 10·19사건이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치유해야 할 공동의 과제임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강연을 통해 국가폭력의 역사적 의미와 치유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깊이 공감하며, 여순10·19트라우마치유센터의 출범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함께 나눴다.
7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침묵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여순 10·19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이번 치유센터 개소는 단순한 기관 출범을 넘어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다는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치유센터가 상처의 기억을 넘어 화해와 회복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