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칼럼]카이스트의 '공간 만화', 오래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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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세계로 들어간다, XR 기술이 현실로
이야기와 인간의 거리를 좁히는 확장현실 기술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어릴 적 만화를 읽을 때면 한 번쯤은 '내가 저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만 남았다. 이야기는 늘 작은 화면 안에 있었고, 우리는 그 세계를 바라볼 뿐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카이스트 연구팀이 공개한 확장현실(XR) 만화 플랫폼 '코믹스XR(ComiXR)'을 보며 문득 그런 오래된 상상이 현실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이야기와 인간의 거리'가 또 한 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캐릭터가 내 공간 안에 존재하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이야기가 이어지며, 등장인물의 긴장감까지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경험을 기술이 현실의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콘텐츠의 역사는 늘 이 방향으로 흘러왔다. 활자는 상상을 만들었고, 영화는 상상에 움직임을 더했다. 텔레비전은 거실로 이야기를 데려왔고, 스마트폰은 그것을 손안에 담았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더 선명한 화면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기술은 처음부터 화면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줄여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기술은 언제나 '더 빨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더 빠른 인터넷, 더 빠른 스마트폰, 더 짧고 강렬한 콘텐츠. 우리 세대는 콘텐츠를 가장 빠르게 소비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숏폼 영상은 몇 초 만에 넘기고, 웹툰도 다음 화를 보기 위해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음미하기보다 따라잡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 기술은 더 빨리 소비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이야기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만든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연구진이 이 기술을 기존 웹툰을 대체할 플랫폼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시와 교육, 문화 콘텐츠는 물론 저시력자와 시각장애인처럼 기존 콘텐츠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고, 플랫폼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누구나 창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을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접근성을 넓히는 기반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언젠가는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며 웹툰을 읽던 시간도 하나의 시대처럼 기억될지 모른다. 우리는 종이보다 웹툰이 익숙한 첫 세대였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의 세대는 웹툰보다 '공간 속 이야기'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변하고 있는 것은 만화라는 형식만이 아니다. 이야기를 현실에 더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오래된 바람이, 또 한 번 새로운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