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부실수사 의혹’ 형사과장 구속 영장 기각… “도주 우려 없다”
작성일
강간살인 아닌 일반살인 혐의 적용 과정서 부당한 영향력 행사 의혹
법원 “주거 일정하고 주요 증거 확보…도주·증거인멸 우려 없어”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의 초동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받는 당시 경찰 수사 책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 “구속 필요성 인정 어려워”
광주지법 최윤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 전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장 박 모 경정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장윤기 사건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은 박 경정을 입건해 조사한 뒤 지난 1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경정은 21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았다.
재판부는 박 경정의 주거가 일정하고 주요 증거가 이미 확보돼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부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금까지 소명된 자료만으로는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박 경정은 지난 5월 장윤기 사건 당시 광산경찰서 형사과장으로 근무하며 초동수사를 지휘했다. 특별수사단은 박 경정이 성범죄 목적의 범행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장윤기에게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다.
광산경찰서 수사팀은 지난 5월 14일 장윤기를 검찰에 구속 송치하면서 강간 목적 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특별수사단은 이 과정에서 박 경정이 수사팀의 혐의 적용과 사건 처리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강간 등 살인죄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다. 일반 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어떤 혐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최소 법정형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만큼 경찰이 성범죄 목적 여부를 충분히 확인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 경정은 장윤기의 별도 스토킹·성폭행 사건을 살인 사건과 함께 수사하지 않고 다른 부서로 넘기는 등 수사 책임자로서 직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특별수사단은 살인 사건과 성범죄 사건을 분리한 경위와 그 과정에서 국수본이나 경찰 지휘부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에서 발견된 케이블타이 등 주요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고 관리하지 못하도록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지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별수사단은 케이블타이 확보 장면이 담긴 현장감식 영상이 삭제된 과정과 관련 경찰관들의 지시·보고 체계도 들여다보고 있다.
“부당한 지시 없었다”…박 경정 혐의 부인

박 경정은 21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수사팀에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부실수사 논란이 일게 돼 유가족과 국민들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 경정 측은 장윤기의 범행이 성범죄를 목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려면 별도 성폭행 사건과 살인 사건을 병합해 수사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이튿날부터 세 차례에 걸쳐 병합 수사를 국수본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변호인은 당시 직접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고 경찰의 피의자 구속 기간이 10일로 제한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정황 증거만으로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며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남긴 채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박 경정은 현장감식 영상 삭제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경찰서로 전보된 뒤인 지난 5일에야 영상 삭제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삭제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특별수사단은 광산경찰서 강력팀원들의 진술과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박 경정이 혐의 적용과 사건 분리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박 경정은 경찰 조사에서도 관련 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수사단 수사 차질…윗선 조사에도 영향

박 경정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특별수사단의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수사단은 박 경정의 신병을 확보한 뒤 초동수사 과정에서 경찰 지휘부의 개입이나 외압이 있었는지를 규명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전 광산경찰서장 등 당시 지휘선에 대한 조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별수사단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한 전 광산경찰서장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사건 당시 국가수사본부가 수사 방향과 사건 분리에 직접 관여했다는 일선 경찰관들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수사단 역시 국수본이 구성한 수사 조직인 만큼 국수본의 지휘 책임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겠느냐는 공정성 논란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앞서 특별수사단은 케이블타이 확보를 누락하고 현장감식 채증 영상을 삭제한 혐의를 받는 당시 강력팀장 B 경감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B 경감에게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증거은닉 및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됐다.
특별수사단과 광주지검은 21일 국수본 관련 부서들을 동시에 압수수색하는 등 장윤기 사건 수사 비위 의혹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사건 수사에 참여한 일선 경찰관들은 당시 수사 결과가 국수본 지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자정 무렵 귀가하던 여고생을 살해하고 비명을 듣고 달려온 다른 고등학생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별도의 여성을 스토킹하고 성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증거를 인멸하려 했고 광산경찰서 수사팀 일부가 이를 돕거나 수사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경찰과 검찰은 초동수사와 증거 관리 과정에서 조직적인 축소·은폐가 있었는지를 각각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