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광대들의 애환… 연극 '올드맨' 광주 무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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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두 노인의 삶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 투영… 희망문화컴퍼니 신작

[위키트리 전남광주특별시 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점점 가속화되는 초고령화 사회, 노인 소외와 빈곤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묵직한 과제다.

텅 빈 가슴을 부여잡고 홀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노인들의 서글픈 현실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연극 한 편이 이번 주말 광주 관객들을 찾아온다.

단순히 노인 문제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통해 삶의 진짜 의미를 되묻는 희망문화컴퍼니의 신작 연극 <올드맨(원제: 늙은 코미디언 이야기)>이 그 주인공이다.

◆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성, 연극으로 묻는 '아버지의 행복'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곳으로 내몰린 노인들의 민낯이 깔려 있다. 자식이 있어도 외롭게 살아야 하고, 치매나 배고픔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조차 무너져 내리는 작금의 뼈아픈 노인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극은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이제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가슴을 치며 아파하는 우리 시대의 늙은 아버지들은 과연 지금 행복할까?"라는 물음이다.

젊은 날의 치열했던 삶은 지나가고, 육체는 쇠락해 가며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그들의 남은 생이 결코 평온하거나 여유롭지 않음을 작가는 날카롭게 짚어낸다. 연극은 바로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느릿한 시간의 흐름, 비좁고 단절된 공간, 그리고 켜켜이 쌓인 회한과 짙은 외로움의 감정들을 관객들 앞에 날것 그대로 펼쳐 보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노년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대화를 시도한다.

◆ 고가도로 밑 짠한 동거, 두 코미디언의 엇갈린 삶

막이 오르면 화려한 조명을 받던 과거를 뒤로 한 채, 어둡고 퀴퀴한 고가도로 밑 허름한 처소에서 기묘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는 두 명의 늙은 코미디언 '허동팔'과 '천명태'가 등장한다.

동팔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아픔이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극 중 그가 겪는 만성 변비는 차마 속을 비워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아야만 하는 그의 지독한 '인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다시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무대를 향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매일같이 구겨진 무대복을 반듯하게 다림질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반면, 명태의 삶의 궤적은 동팔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 주색잡기에 푹 빠져 허송세월을 보낸 탓에, 정작 곁에 두어야 할 혈육인 딸과는 오래전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뒤늦은 후회 속에 딸의 흔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미친 듯이 떠돌아다니는 그는 깊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성향도, 살아온 방식도 다르지만 각자의 가슴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고뇌와 커다란 아픔을 품고 있는 두 노인은 한 지붕 아래서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날카롭게 헤집고 상처를 주면서도, 결국엔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위로받으며 위태로운 삶을 함께 버텨나간다.

◆ 무너진 무대와 철거 통지서… 벼랑 끝에 선 노년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두 사람의 팍팍한 삶에 걷잡을 수 없는 거센 풍파가 불어닥친다. 아직 밤무대에서 춤을 추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명태가 공연 도중 바닥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그 길로 업소에서 비참하게 해고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늙고 쇠약해진 육체 탓에 이젠 어떤 무대로도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진 절망적인 현실. 다행히 평소 안면이 있던 업소의 지배인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며 얄팍한 출연을 약속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고 짙은 절망감만이 그들의 좁은 방안을 무겁게 짓누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들이 세상의 비바람을 피하던 유일한 안식처인 고가도로 밑 집마저 무자비한 도시계획에 의해 강제 철거당할 위기에 처한다. 생존의 마지막 보루마저 위협받는 그야말로 벼랑 끝의 상황. 바로 그 위태로운 순간, '휘트니'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 가수가 우연히 그들의 삶에 불쑥 끼어든다.

명태는 젊고 생기 넘치는 휘트니를 바라보며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자신의 잃어버린 딸의 모습을 아프게 겹쳐 본다. 그녀를 향한 짙은 애정과 깊은 연민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명태는 자신이 처한 처참한 현실과 부성애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처절하게 고뇌한다. 죽고 싶을 만큼 지독한 소외감과 무력감이 밀려올 무렵, 기어이 야속한 철거 통지서가 날아들고, 결국 명태는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동팔을 홀로 남겨둔 채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돌리게 되며 극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 시니어 연극인들의 관록으로 빚어낸 깊은 울림

조수현 작가가 섬세한 필치로 써 내려간 대본 위에 박규상 연출가의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더해진 이번 무대는 지역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지역에서 묵묵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관록의 시니어 연극인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뿜어내는 깊이 있는 연기 내공이다. 한중곤, 윤희철, 정은희, 박지연 등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배우들이 찰떡같은 앙상블을 빚어내며 늙은 코미디언들의 구슬픈 애환과 헛헛한 삶을 생생하게 숨 쉬게 한다. 여기에 임준형 프로듀서의 든든한 뒷받침과 정관섭, 임홍석 기획자의 치밀한 기획력이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웃음 뒤에 가려진 눈물, 그리고 잊혀져 가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쓸쓸한 자화상을 돌아보게 할 연극 <올드맨>은 오는 7월 24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25일 토요일 오후 3시, 이틀에 걸쳐 광주 금남로 그린공원 옆 3가에 위치한 소극장 '공연일번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관람 요금은 일반 30,000원, 학생 20,000원이며, 작품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고등학생 이상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예매 및 공연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전화(010-3615-9480)로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길 늙은 광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