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117년 한옥과 1945년 해방둥이 한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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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수로가 흐르는 민가 한옥·강화도 개성식 한옥
원형을 지키면서 오늘의 삶을 더한 두 집의 시간
집 안으로 수로가 흐르는 117년 된 한옥과 광복의 해에 지어진 개성식 한옥이 소개된다. 두 집의 주인들은 오래된 집을 새것처럼 바꾸기보다 세월이 남긴 흔적과 원형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EBS1 ‘건축탐구 집’이 과거의 시간을 품은 채 오늘의 삶을 이어가는 두 한옥을 찾아간다.

21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두 한옥 이야기’ 편이 전파를 탄다. 방송은 전남 화순에서 117년의 세월을 견딘 민가 한옥과 인천 강화도에 자리한 1945년 건축 개성식 한옥을 소개한다.
두 집은 지역도, 지어진 시기도 다르다. 그러나 오래된 집의 원형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현재의 생활 방식에 맞춰 천천히 되살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수로가 흐르는 117년 된 한옥

첫 번째 집은 전남 화순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다. 동복천을 따라 이어지는 숲정이 길을 지나면 집 안으로 작은 수로가 흐르는 한옥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집은 지어진 지 117년 된 민가 한옥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선과 면의 구성이 잘 보존돼 있고, 양반가 한옥과는 다른 소박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집을 만난 부부는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며 전원생활을 꿈꿨다. 마음에 맞는 터를 찾기 위해 7년 동안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고,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지금의 한옥과 마주했다.
부부는 오래된 집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했다. 가격을 흥정할 생각보다 이 집이 지닌 원형과 시간을 후대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이후 부부는 한옥을 고치는 과정에서도 원형을 지키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뒀다. 단열 성능을 높이기 위해 현대식 자재를 덧붙이는 대신 전통 갑창을 활용했다. 갑창은 문이나 창 안쪽에 덧대는 구조로, 오늘날의 포켓 도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한옥 옆에 별도의 양옥을 지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추운 겨울 한옥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점을 보완하되 기존 한옥의 구조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양옥을 지을 때도 부부는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새로 지은 집이 한옥보다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복층 구조를 포기하고 외관도 최대한 소박하게 만들어 한옥이 집의 중심으로 남도록 했다.
부부는 계절에 따라 한옥과 양옥을 오가며 생활한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한옥에서 지내고 추운 계절에는 양옥으로 옮긴다. 필요한 짐만 옮기며 서로 다른 두 집에서 계절을 보내는 방식이다.

두 사람은 한옥을 약 6개월 동안 직접 수리했다. 황토 핸디코트 작업부터 벽과 천장, 서까래와 구들까지 집 안 곳곳에 부부의 손길이 닿았다.
처음에는 천장 일부만 손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자 낡은 벽과 서까래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고, 보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진행하는 서까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얼굴과 온몸에 기름과 흙이 묻기 일쑤였지만 집이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을 때마다 부부가 느끼는 보람도 커졌다.
오래된 구들장은 남편 오철 씨가 직접 손봤다. 한쪽이 무너지면서 방바닥 전체에 온기가 고르게 퍼지지 않았지만 책과 영상을 보며 공부한 끝에 보수에 성공했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었다. 한옥의 구조를 이해하고 과거 사람들이 집을 사용한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 명자 씨는 고등학생 시절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을 본 뒤 한옥에서 사는 삶을 꿈꿨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꿈을 이루게 된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당에서 꽃을 가꾸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부부의 목표는 집을 새롭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100년 넘게 이어진 한옥의 원형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생활을 더해가는 일이다.
정부지원금도 포기한 1945년 개성식 한옥

두 번째 집은 인천 강화도 마니산 아래에 자리한다. 1945년에 지어진 이 한옥은 광복의 해에 태어난 집이라는 의미에서 해방둥이 한옥으로 불린다.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처마다. 강화도는 지리적으로 개성과 가까워 과거 개성 한옥의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서울 북촌 등 남한의 일반적인 한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가 남아 있다.
건축주 임선영 씨는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오랫동안 집을 찾아다니다 단군 신화가 서린 마니산 아래에서 작은 한옥을 발견했다.
마니산은 영산이라는 강한 이미지와 달리 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줬다. 선영 씨는 산 아래 자리한 집과 독특한 처마에 마음을 빼앗겼다.
집을 수리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원형 보존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집으로 바꾸기보다 기존 한옥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생활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지원금까지 포기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집을 조선시대 양반 한옥 기준에 맞춰 수선해야 했지만, 그렇게 할 경우 1945년 당시 집이 지닌 특징이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집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한 셈이다.
선영 씨는 뜻을 함께할 대목수를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을 들였다. 50명이 넘는 대목수를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대목수를 만났고, 오랜 대화를 통해 집을 어떻게 되살릴지 의견을 나눴다.
창문과 문 하나도 임의로 결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변 한옥을 직접 찾아가 당시의 문과 창호 형태를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집에 어울리는 창호와 문을 새로 제작했다.
공사 과정에서는 낡은 벽지 조각도 발견됐다. 선영 씨는 이를 버리지 않고 당시 무늬를 복원했다.
복원된 벽지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패턴과 한국 전통 문양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근대기에 외국 문화와 전통 양식이 뒤섞이던 시대의 흔적이 작은 벽지 한 장에 남아 있던 셈이다.
생활 방식도 집에 맞췄다. 침대를 들이는 대신 목화솜 이불을 제작해 바닥 생활을 이어간다. 집을 현대 생활에 완전히 맞추기보다 자신이 집의 방식에 적응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한옥

선영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주방이다. 과거 안방과 다락, 반지하 주방으로 나뉘어 있던 공간을 철거해 부엌과 다이닝 공간으로 만들었다.
기존 안방의 기억을 남기기 위한 장치도 더했다. 벽에 붙어 있던 벽지 무늬를 프린팅해 주방 하부장 커튼으로 제작했다. 상황에 따라 주방용품을 가릴 수 있으면서도 집의 옛 흔적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음식 작가로 활동하는 선영 씨에게 이 주방은 단순히 요리하는 장소가 아니다. 작업에 집중하는 공간이자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장소다.
지금까지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만 80명이 넘는다. 선영 씨는 한옥을 혼자 소유하고 즐기는 공간보다 과거의 사랑방처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옥은 그에게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 오래된 집을 지킨다는 것은 옛 모습을 박제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억을 쌓는 일이라는 의미다.
현재 집은 한옥의 원형을 복원한 단계다. 마당을 비롯해 손봐야 할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선영 씨는 완성을 서두르지 않는다. 오래된 집이 지나온 시간만큼 자신도 천천히 손길을 더하며 집의 다음 시간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건축탐구 집’은 두 한옥을 통해 오래된 집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다. 편리함을 위해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는 대신 불편함 일부를 감수하면서도 집의 정체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화순의 부부는 양옥을 따로 지어 한옥을 보존했고, 강화도의 건축주는 지원금까지 포기하며 개성식 한옥의 원형을 살렸다.
두 집 모두 과거의 모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옥과 양옥을 오가며 계절을 보내고, 오래된 주방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꾸면서 오늘의 삶을 더하고 있다.
117년 된 민가 한옥과 1945년 해방둥이 한옥이 앞으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EBS1 ‘건축탐구 집’ ‘두 한옥 이야기’ 편은 21일 오후 9시 55분 방송된다.
※ 해당 글은 아무 대가 없이 작성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