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문제도, 남편 문제도 아니다…60 넘긴 여성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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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바치고 남은 이들의 쓸쓸한 고백

대한민국에서 6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참으로 독특하고도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인 압축 성장기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세대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자신의 배움을 기꺼이 포기하고 공장이나 일터로 향했던 딸들이었다. 결혼 후에는 가정을 일구기 위해 청춘을 바쳤던 아내였고, 자녀 교육과 성공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다.

인생의 온갖 거친 파도를 넘기고 자식들을 제 짝 찾아 독립시켰으며 남편도 직장에서 은퇴하여 비로소 평온이 찾아올 것만 같은 예순 전후의 시기다. 하지만 수많은 이 시기의 여성들은 뜻밖에도 인생에서 가장 깊은 심리적 혼란과 공허함을 마주한다. 자식들이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밀려드는 쓸쓸함은 흔히 빈둥지 증후군이라는 말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선 뼈아픈 자책과 회한이 도사리고 있다.

통계 자료나 노년 심리 상담 사례에서 이들이 털어놓는 후회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라 짐작하지만, 실제 대답은 전혀 달랐다. 남편에게 더 순종적이지 못했다거나 자식을 더 엄하게 키우지 못했다는 식의 가족 중심적인 후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들의 고백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현실적이며,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한 절절한 반성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가부장적 배경 속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이 눈물로 고백하는 후회의 순위들을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1위부터 현실적인 아쉬움이 담긴 5위까지 차례대로 짚어보고자 한다.

5위.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타인의 이목과 체면에 묶여 허비한 시간과 비용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예순네 살 이 모 씨는 과거를 돌아보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보다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뒤처져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고백한다. 집안 형편에 맞지도 않는 비싼 옷을 기어이 입히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값비싼 사교육을 무리해서 시켰던 기억들이 이제 와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토록 눈치를 보며 살았던 이웃이나 친척들은 지금 내 인생에 아무런 책임도 져주지 않는데, 왜 그렇게 남의 이목에 전전긍긍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타인의 평판과 시선에 지독할 정도로 취약하다. 이른바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중산층의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려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평생을 긴장 상태 속에서 보낸 여성들이 많다. 예순을 넘기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무가치하게 사라져 버린 지출과 시간 낭비가 바로 이 쓸데없는 체면치레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러한 체면의 덫은 일상 곳곳에 뻗어 있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주변의 눈총이 두려워 무리하게 지출해야 했던 경조사비는 고스란히 부부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유지했던 학부모 모임이나 영양가 없는 동창회 같은 관계들은 마음의 평화 대신 갈등과 소모적인 스트레스만을 남겨주었다. 또한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멀쩡한 가구를 바꾸고 자동차나 옷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들인 막대한 비용은 결국 노년의 실속 있는 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이가 들어 관계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좁아지고 나서야 이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그토록 의식하고 두려워했던 타인의 눈길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그리 깊은 관심조차 없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말이다. 오직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편안하고 단순하게 누릴 수 있었던 진정한 삶을 외면했다는 후회는 이들의 가슴에 깊은 흉터로 남는다.

4위. 엄마는 원래 안 아픈 줄 알았단다…골병이 들 때까지 내 몸을 방치한 죄

한국의 어머니들은 몸이 아파도 쉽게 병원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웬만한 두통이나 관절통은 약국에서 산 진통제 몇 알로 버티는 것이 일상이었고, 엄마는 괜찮다거나 우리 엄마는 뼈가 무쇠처럼 튼튼하다는 가족들의 무심한 찬사 뒤에 숨어 스스로의 몸을 가혹하게 혹사해 왔다.

이러한 미련한 헌신은 과거의 척박한 가사 노동 환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세탁기나 청소기 같은 편리한 가전제품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손빨래를 하고 엎드려 걸레질을 하며 온몸의 관절을 갉아먹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가정이라는 일터 속에서 아픔을 꾹 참아내는 것만이 미덕이자 현모양처의 도리라고 굳게 믿고 살았다. 정작 남편이나 자식들의 몸보신을 위해서는 비싼 영양제와 보약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받아야 할 정기 건강검진이나 치료는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미련한 방치의 대가는 예순이 넘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혹한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척추관 협착증으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며, 만성적인 신경통과 오랫동안 가슴속에 쌓아둔 화병과 우울증이 동시다발적으로 신체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제야 비로소 자식들도 다 키우고 경제적으로도 조금 숨통이 트여 멋진 여행지를 찾아 떠나고 싶어도, 정작 무릎이 아파 비행기를 타거나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눈앞에 아무리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이 놓여 있어도 소화 기능이 망가져 제대로 넘기지 못할 때 밀려오는 서글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이 아무리 억만금이 있어도 내 육신이 무너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젊은 날에는 왜 외면했는지,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대접하지 않고 방치한 죄가 이토록 무겁게 돌아올 줄 몰랐다며 고개를 떨군다.

3위. 다 주고 나니 빈털터리…자식의 성공이라는 덫에 걸려 내 노후 자금까지 털어준 것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예순여덟 살 박 모 씨는 아들이 대학에 가고 군대를 제대해 결혼할 때 서울에 전셋집이라도 한 칸 마련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의 퇴직금과 자신이 모아둔 쌈짓돈을 남김없이 털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 박 씨 부부는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얼마 되지 않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에 의지해 빠듯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결혼한 자식은 제 삶을 꾸려나가기 바빠 명절에 겨우 얼굴 한 번 비추는 것이 전부다. 박 씨는 자식을 원망하는 마음보다도,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내어준 미련한 선택에 밤잠을 설친다.

대한민국의 극심한 교육열과 결혼 문화는 부모 세대에게 끝없는 희생을 당연한 의무처럼 요구해 왔다.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자 가문의 영광이라 굳게 믿었던 이 세대 여성들은 자녀의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 결혼 비용과 주택 마련 자금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노후 대비를 위해 축적해 두어야 할 최후의 보루를 사정없이 허물었다.

이러한 희생의 기저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 나중에 늙어서 자식들이 나를 돌봐주고 공경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깔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맞닥뜨린 현실은 매정하리만큼 차갑다. 오늘날의 자녀 세대 역시 살인적인 물가와 양육비 속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유지하느라 부모를 부양할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력도 없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효도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부모가 늙어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인 시대가 되어버렸다.

자식에게 아낌없이 아파트를 주고 남은 인생을 빈털터리로 보내게 된 이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아무리 피를 나눈 내 자식이라 할지라도 내 노후 자금만큼은 손에 꼭 쥐고 내어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말이다. 돈이 없어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마다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비를 상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밀려드는 비참함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안았던 맹목적인 자식 지원은 노년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위. 나중에 애들 다 키워놓고… 하고 싶던 공부와 꿈을 끝없이 미뤄둔 것

이 세대 여성들의 어린 시절을 추적해 보면 가난하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슬픈 사연이 무척이나 많다. 남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자신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희생양들이 대다수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사와 육아, 그리고 남편의 직장 생활을 보좌하느라 자신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꿈이나 소망은 단 한 번도 인생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지 못했다.

언제나 이들의 입버릇은 나중에라는 단어로 시작되었다. 돈을 조금 더 모아서 나중에 대학에 가야지, 아이들이 초등학교만 무사히 졸업하면 나도 동네 문화센터에서 서예나 악기를 배워봐야지,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미뤄두었던 여행을 가거나 소소하게 내 이름으로 된 장사라도 시작해 봐야지 하며 자신의 꿈을 서랍 깊은 곳에 꽁꽁 싸매어 두었다.

그러나 예순이라는 나이는 결코 자비롭게 기다려주지 않고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다. 막상 세월이 흘러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을 때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에 이미 눈이 침침해 책을 읽기조차 벅차고,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감퇴하여 배움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젊은 날 마음속에 이글거리던 뜨거운 창의성과 열정의 불씨는 긴 세월 동안 반복된 고된 가사 노동과 가계 걱정 속에서 이미 사그라진 지 오래다.

남편 반대를 뚫고 방송통신대학이라도 입학해 볼 걸 그랬다거나, 아이들이 품 안에서 조금 보채며 울더라도 내 학업과 커리어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켜냈어야 했다는 뒤늦은 탄식은 평생의 가슴앓이가 된다. 나중이라는 달콤한 핑계 뒤로 자신의 성장과 배움을 끊임없이 미뤄둔 자리에 남은 것은, 나도 한때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지워지지 않는 씁쓸한 미련뿐이다.

1위. 평생을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며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것

주름진 거울 속의 여성을 마주하는 순간, 정작 그 모습이 진짜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기괴한 상실감이 찾아온다. 평생 남편의 입맛에 맞춰 국을 끓여 내고 자식들이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밥상을 차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무엇을 먹을 때 행복해하는 사람인지조차 잊어버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내 이름 석 자로 불려본 지가 도대체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한 이들은 평생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무대 뒤에서 조연으로 애쓰다가 정작 나의 연극은 막을 내리는 기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대한민국의 예순이 넘은 여성들이 털어놓는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후회 대망의 1위는 바로 나 자신의 상실이다. 자식이 속을 썩인 일도, 남편이 속을 썩인 일도 아닌, 내 인생의 유일한 주인공으로서 단 한 번도 주체적인 무대를 누려보지 못했다는 자각이 이들의 마음을 가장 잔인하게 후벼 판다.

한국 사회의 오랜 가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성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서는 순간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지워가야만 했다. 집안에서는 누구 엄마로 불렸고, 바깥에서는 누구 아빠의 안사람이나 며느리라는 관계 속의 직함으로 불리며 주연이 아닌 철저한 보조자의 역할극에 온 정신을 쏟았다. 내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살피기보다는 가족 구성원들이 기뻐할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들이 슬퍼하거나 낙담할 때 같이 가슴을 쥐어짜며 자신의 모든 감정적 안테나를 타인에게 고정해 둔 채 살아왔다.

젊은 날에는 꿈이 있었고 내 취향과 목소리가 있었지만, 가족이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나갔던 세월이었다. 가족을 향한 헌신과 희생은 분명 가치 있고 숭고한 행위였으나, 그 대가로 나라는 자아를 완전히 말살해 버린 노년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