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식은 원수에게나 권하라"...30년간 20억원 잃은 기자의 마지막 계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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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손실 4974만원·수익률 -36.96%...최학봉 기자 실제 계좌 공개
- 담보대출 이자까지 짊어진 개인투자자...손실 위에 또 손실
- "국장은 투자하는 곳이 아니라 탈출하는 곳"...30년 투자 끝에 남은 마지막 질문

위키트리 부산경남취재본부장.최학봉 선임기자. / 사진=위키트리 DB
위키트리 부산경남취재본부장.최학봉 선임기자. / 사진=위키트리 DB

이 사진은 남의 계좌가 아니다. 30년 넘게 대한민국 증시에 투자한 필자 최학봉의 실제 주식계좌다.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기자다. 기업 공시를 확인하고, 실적을 분석하며, 시장을 취재한다. 그럼에도 필자의 계좌에는 4974만원의 평가손실이 찍혀 있다. 정보가 곧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가금액 8483만원, 평가손실 4974만원, 총수익률 마이너스 36.96%.

숫자만 보면 단순한 투자 실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계좌에는 30년 넘게 한국 주식시장에 머물며 겪은 기대와 배신, 손절과 재매수, 그리고 끝내 회복하지 못한 개인투자자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30년간 국내 증시에 투자한 최학봉 기자의 실제 주식계좌. 평가손실 4973만9328원, 수익률 -36.96%를 기록하고 있다. 종목명 앞 'B'는 주식담보대출 종목을 뜻하며, 장기 투자와 담보대출이 겹치며 누적된 손실의 현실을 보여준다. / 사진=최학봉 기자
▲ 30년간 국내 증시에 투자한 최학봉 기자의 실제 주식계좌. 평가손실 4973만9328원, 수익률 -36.96%를 기록하고 있다. 종목명 앞 'B'는 주식담보대출 종목을 뜻하며, 장기 투자와 담보대출이 겹치며 누적된 손실의 현실을 보여준다. / 사진=최학봉 기자

계좌에는 삼성전자, LG전자, NAVER, 한화오션, 에코프로, 고려제강, 하림지주, 큐캐피탈 등 익숙한 종목들이 줄지어 있다. 이름만 보면 대한민국 산업과 증시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하지만 계좌에 찍힌 숫자는 화려한 기업 이름과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종목이 두 자릿수 손실이고, 일부는 절반 가까이 무너졌다.

개인투자자들은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매수하면 고등어 반 토막, 버티면 갈치 네 토막, 더 버티면 상장폐지."

필자는 이 말을 웃어넘길 수 없다. 실제로 한진해운과 알앤엘바이오를 비롯한 여러 상장폐지 종목에서 막대한 손실을 경험했고, 큐캐피탈과 희림도 한때 손실률이 80% 안팎까지 치솟아 결국 손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다시 매수한 종목들마저 또다시 반 토막을 향해 추락했다.

손절하면 그 자리가 바닥이고, 버티면 지하실이 열린다. 겨우 본전 근처에 오면 욕심이 생기고, 조금 더 기다리면 다시 급락한다. 개인투자자에게 '장기투자'라는 말은 투자 원칙이 아니라 손절하지 못한 사람을 위로하는 주문처럼 들릴 때가 많다.

사진 속 종목명 앞에 붙은 'B' 표시는 주식담보대출이다. 필자는 보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연 7.5% 수준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주가가 오르면 수익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하락장이 이어지면 상황은 잔혹해진다. 주식 가치는 떨어지고 이자는 계속 쌓인다. 평가손실 위에 금융비용까지 더해지면서 투자자는 이중고를 겪는다.

증권사는 담보를 확보하고 약정된 이자를 받는다. 투자 판단과 손실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는다. 무리한 담보대출을 받은 책임 역시 필자에게 있다. 그러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빚을 내고, 그 돈으로 추가 매수한 종목마저 또다시 하락하면서 손실과 이자의 늪에 빠지는 현실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증시는 끊임없이 개인에게 희망을 판다. 정부는 증시 활성화를 말하고, 기업은 주주가치를 약속하며, 증권사는 목표주가와 성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주가가 무너진 뒤 그 말을 믿고 투자한 개인의 손실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업 실적이 악화되거나 시장 환경이 바뀌면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주식투자에 원금 보장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일부 기업은 주가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기존 주주의 가치를 희석시켰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액주주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우량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뒤 자회사를 다시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도 반복됐다. 모회사 주주가 기대했던 성장의 과실은 자회사로 옮겨가고, 기존 주주는 기업가치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관행이 반복될수록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상장했고, 또 수많은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부도와 자본잠식, 횡령·배임, 회계감사 의견거절로 상장폐지된 기업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름은 바뀌고 대주주는 떠났지만, 손실은 언제나 개인투자자의 몫이었다.

국장 개미들은 기업의 성장보다 회계감사 의견이 '적정'으로 나올지, '의견거절' 공시가 뜰지부터 걱정한다. 실적보다 상장폐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장이라면 정상적인 자본시장이 맞는지 되묻게 된다.

개인투자자는 언제나 마지막에 소식을 듣는다. 호재가 알려질 때는 이미 주가가 오른 뒤이고, 악재가 공개될 때는 피할 틈도 없이 급락이 시작된다. 기관과 외국인은 조직과 자금, 정보 분석 능력으로 대응하지만 개인은 휴대전화 화면 하나를 붙잡고 공포와 탐욕 사이에서 홀로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가 지금 필자의 계좌다.

물론 이 계좌 하나가 대한민국 증시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돈을 번 투자자도 있고, 좋은 기업에 장기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종목 선택과 담보대출, 손절 원칙을 지키지 못한 책임 역시 분명하다.

그럼에도 실제 계좌를 공개하는 이유가 있다. 투자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왜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를 떠나 미국 시장으로 향하는지, 왜 "국장은 투자하는 곳이 아니라 탈출하는 곳"이라는 냉소가 퍼졌는지 시장 스스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시장으로 가려면 지수가 몇천 포인트를 돌파했다는 숫자보다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 불공정거래를 엄단하고, 대주주의 책임을 강화하며, 소액주주를 회사의 자금조달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공동 소유자로 존중하는 문화다.

개인투자자는 시장의 봉이 아니다. 기관과 외국인이 빠져나갈 때 물량을 받아주는 마지막 계산대도 아니고, 기업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호출하는 현금자동입출금기도 아니다. 평생 일해 모은 노후자금과 가족의 미래를 걸고 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필자는 오늘 손실 계좌를 공개했다.

손실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누구를 원망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늘 공개한 것은 단순한 손실 계좌가 아니다. 대한민국 개인투자자가 시장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계좌 공개를 끝으로 필자는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려 한다. 30년 동안 약 20억원의 손실을 겪으며 수없이 희망을 품었지만 돌아온 것은 실망이 더 많았다.

증권가에는 오래된 말이 있다.

"주식은 원수에게나 권하라."

30년 동안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러나 한진해운에서 약 3억원을 잃고, 알앤엘바이오를 비롯한 여러 상장폐지 종목에서 막대한 손실을 겪은 뒤에야 그 말의 무게를 절실히 깨달았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개인투자자의 신뢰 위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개인이 시장을 떠나기 시작하면 거래대금도, 유동성도, 시장의 미래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디 언젠가는 "주식은 원수에게나 권하라"는 자조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증시는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30년 동안 국장에서 울고 웃었던 한 개인투자자의 마지막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