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기자회견”…한국 축구 뒤편에서 조용히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작성일

58억이 반년간 새는 동안 아무도 몰랐다…한국 축구 행정의 민낯

한국 축구가 안팎으로 무너지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탈락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라운드 밖에서 초대형 비리가 터졌다. K리그2 김포FC에서 내부 직원이 58억 원이 넘는 공금을 빼돌린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시민 혈세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에서, 그것도 수개월에 걸쳐 수십억 원이 빠져나가는 동안 구단 내부의 그 누구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시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사상 초유의 '횡령 기자회견'

이기형 김포시장은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포시 출자·출연기관인 김포FC에서 내부 직원에 의해 58억 원 이상의 공금 횡령 사건이 확인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프로축구단 회계 비리를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시민 앞에서 사과하고 설명하는 초유의 장면이었다.

김포시에 따르면 김포FC는 내부 점검 과정에서 자금 이상 정황을 자체적으로 인지했고, 전날인 13일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동시에 김포시에 보고했다. 구단주가 김포시장인 시민구단 구조상, 사건은 구단 차원을 넘어 김포시 전체의 공직 기강 문제로 즉각 비화했다.

이 시장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범행 수법의 일단을 공개했다. 그는 "통장 출납 담당자가 법인 통장에 정상적으로 입금하지 않고 편취한 정황이 확인된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그 과정에서 상급자에게 허위 보고가 있었던 것으로 구단이 설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는 구단 자체 판단 단계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경찰 수사와 김포시 감사에서 확인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위조 서류에 속수무책… '사람의 양심'에만 기댄 회계 시스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 직원의 일탈이 아니다. 문제는 그 일탈이 반년 가까이 아무런 제지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구조다.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자금은 올해 초부터 수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그 기간 결재 라인에 있던 상급자들은 허위 보고와 위조된 서류를 단 한 차례도 걸러내지 못했다. 통장 잔액과 장부를 대조하는 가장 기초적인 교차 검증만 이뤄졌어도 조기에 적발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구단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사실상 '전면 마비' 상태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58억 원은 K리그2 시민구단 기준으로 사실상 한 시즌 살림 규모에 맞먹는 액수다. 선수단 연봉과 운영비, 유소년 육성 예산까지 시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구단에서 이 정도 자금이 증발했다는 것은 단순한 회계 사고가 아니라 구단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드는 사안이다. 자금 흐름을 매달 점검해야 할 이사회와 감사 기능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책임 규명도 불가피하다.

더 심각한 것은 권한의 독점 구조다. 회계와 통장 출납 권한이 특정 담당자 한 명에게 집중돼 있었고, 이를 견제할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아니라 담당자 개인의 양심에 조직 전체의 자금을 맡겨온 셈이다. 이는 김포FC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수 인력으로 살림을 꾸리는 K리그 시·도민 구단 상당수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이라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면서도 회계 전문 인력과 감시 체계는 일반 기업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민구단의 현실이 이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긴급기자회견 하는 이기형 김포시장. / 김포시 제공
긴급기자회견 하는 이기형 김포시장. / 김포시 제공

김포시 "전 공공기관 특별감사… 지위고하 막론 문책"

김포시는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우선 경찰 수사와 별도로 김포FC를 포함한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즉시 특별감사에 착수한다. 감사 범위는 회계와 자금 집행, 계약 업무, 보조금 운영, 법인카드 사용 내역, 내부통제 시스템 등 시민 세금이 흘러가는 모든 분야다. 본청의 기금과 특별회계 등 회계 취약 분야도 함께 들여다본다.

시는 감사 결과 비위 행위나 관리·감독 소홀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횡령된 공금은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고, 관련자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묻는다.

제도 개편안도 내놨다. 김포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 개선 △이중·삼중의 회계 검증 체계 구축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기 감사 확대 △내부 신고자 보호 제도 강화 △감사 결과의 투명한 공개 등 5대 혁신 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시장은 "민선 8기 기간에 발생한 비리가 민선 9기 출범 직후 드러난 사안이지만, 시민 신뢰를 회복하고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은 현 시정을 책임지는 저와 민선 9기 김포시의 책무"라며 "이번 사건을 특정 기관의 일탈이 아닌 김포시 공공기관 전반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규명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그라운드에서도 내리막… 3경기 1무 2패, 겹악재 만난 김포

행정 스캔들이 터진 시점에 팀 성적마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김포FC에 더욱 뼈아프다.

김포FC는 지난 12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2 2026 1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부산에 0-2로 패하며 1라운드 일정을 마감했다. 플레이오프권 도약을 노리며 3-4-3 전형을 꺼내 들었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파울리뇨가 선발 데뷔전을 치렀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경기 흐름도 꼬였다. 전반 10분 디자우마가 부상으로 교체되는 악재가 겹쳤고, 전반 추가시간 VAR 판독 끝에 부산의 선제골이 인정되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후반 들어 루이스를 중심으로 공세를 폈고 이학민, 이시헌을 투입하며 변화를 줬다. 부산의 추가골이 핸드볼 반칙으로 취소되고, 후반 26분 구단 최초 준프로 계약 선수 김준서가 성인 무대에 데뷔하는 소득도 있었다. 그러나 파울리뇨의 슈팅 등 동점 시도는 무위에 그쳤고,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내주며 0-2로 무너졌다.

고정운 감독은 경기 후 "최근 3경기에서 1무 2패를 기록해 아쉽다. 원정까지 응원 와준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자책했다. 김포FC는 오는 18일 오후 7시 30분 김포솔터축구장에서 대구FC와 18라운드 홈경기를 치른다. 횡령 사태의 후폭풍 속에 치러지는 첫 홈경기에서 선수단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국 축구 뒤편에서 터진 사건.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한국 축구 뒤편에서 터진 사건.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김포만의 문제인가… 연맹이 답해야 할 차례

축구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김포 한 구단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도민 구단은 지자체장의 성향과 내부 관리 역량에 따라 행정 수준의 편차가 극심하다. 어느 구단에서든 '제2의 김포 사태'가 터질 수 있는 토양이 이미 리그 전반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시민구단 다수는 재정의 절반 이상을 지자체 보조금과 지역 기업 후원에 기대고 있다. 돈줄은 공공에 두면서 감시는 사각지대에 놓인 기형적 구조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대표이사와 사무국 인사가 뒤바뀌고, 회계 담당자는 소수 인원이 수년째 같은 업무를 독점하는 관행도 반복돼 왔다. 견제 없는 자리에 오래 앉은 사람에게 사고의 유혹이 커지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확인되는 공식이다.

이 때문에 한국프로축구연맹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구단을 대상으로 한 재정 관리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정기 실사를 의무화하며, 그 결과를 구단 라이선스 평가에 반영하는 등 강제력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단 자율에 맡겨둔 재정 관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번 사태가 이미 증명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32강 탈락으로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행정 쇄신 요구가 빗발치는 시점에, 풀뿌리 축구의 근간인 시민구단마저 혈세 횡령으로 얼룩졌다. 한국 축구 위기가 대표팀 경기력 문제가 아니라 축구 행정 전반의 구조적 부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더는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팬과 시민이다. 주말마다 경기장을 찾고, 세금으로 구단을 떠받쳐 온 지역 팬들에게 이번 사태는 배신에 가깝다. 성적이 나빠도 응원할 수 있지만, 신뢰가 무너진 구단을 응원하기는 어렵다. 구단이 수사 결과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태 경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팬들에게 직접, 그리고 지속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