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인문학] 미국 대사관도 틀리게 번역한 독립선언문… 그 한 단어가 남북전쟁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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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미국에는 노예제가 있었다.
이 모순을 풀지 못한 대가로 미국은 80년 뒤 약 60만 명이 죽는 전쟁을 치렀다.

A4 한 장짜리 문서가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그 문서 안에 건국과 동시에 분열의 씨앗이 심겨 있었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품고 있던 거대한 모순,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기까지 80년의 이야기다.

■ 미국 대사관도 틀리게 번역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들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과거 주한 미국 대사관 번역을 보면 "창조되었다"가 "태어났다"로 바뀌어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태어나 보니 평등하더라"는 말과 "신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말은 인간의 권리가 어디서 오는지부터가 다르다. 독립선언문이 하고 있는 말은 후자였다. 권리는 국가가 주는 것도, 스스로 쟁취하는 것도 아니라 신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했다는 선포였다.

미국 독립선언문 원문.
미국 독립선언문 원문.

■ 선언문을 쓴 사람이 노예를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선언문에는 처음부터 거대한 모순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그 순간, 미국에는 노예제가 존재했다.

독립전쟁을 이끈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 농장에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직접 쓴 토마스 제퍼슨도 마찬가지였다. 노예를 소유한 사람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 모순을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노예제가 존재하는 한 미국의 건국은 미완성이다"라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미완성을 완성하는 데 8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어쩌다인문학/독립선언문 일부 발췌.
어쩌다인문학/독립선언문 일부 발췌.

■ 면화 산업이 해방을 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예 해방은 오히려 요원해졌다. 남부에서 면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는 전 세계 면화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했다. 그리고 그 산업은 노예 노동 없이는 유지될 수 없었다.

여기에 불을 더 지핀 사건이 있었다. 1803년 제퍼슨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땅을 매입하면서 미국의 영토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광활한 새 땅이 생기자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이 새 땅에서 노예제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

■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1820년, 미국은 지도 위에 선을 하나 그었다. 북위 36도 30분. 이 선 위쪽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하고, 아래쪽에서는 허용한다는 미주리 타협안이었다. 분열을 봉합하는 방법으로 지도에 금을 긋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였다. 새로운 땅이 편입될 때마다 같은 싸움이 반복됐고, 봉합선은 점점 더 깊이 벌어졌다.

어쩌다인문학/미주리 타협안.
어쩌다인문학/미주리 타협안.

■ 다수결로 건국 정신을 뒤집으려 했다

1854년,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안이 통과됐다. 새로 편입되는 캔자스와 네브라스카 주에서 노예제를 허용할지 말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내용이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보였지만 본질은 달랐다. 다수결로 건국 정신을 뒤집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이에 반발해 새로 생겨난 당이 있다. 공화당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찬성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노예제는 다수결로 허용될 수 없다.

이 법안에 반대하며 링컨이 연설했다. "스스로 분열한 집안은 보존될 수 없다. 절반은 노예이고 절반은 자유인인 나라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어쩌다인문학/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
어쩌다인문학/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

■ 선거 결과가 나오자 남부는 전쟁을 선언했다

캔자스에서는 노예제 찬반 양측이 충돌해 수많은 사람이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블러디 캔자스였다. 남북전쟁의 예고편이었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이 당선됐다. 남부는 이미 예고한 대로 움직였다. 링컨 당선 즉시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이었다.

■ 최악의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

링컨의 임기 전후 사진을 보면 4년 사이에 40년이 지난 것처럼 늙어 있다. 임기 내내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당시 여론은 그를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나라를 둘로 쪼갰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로 건국 정신을 되살렸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남부의 모든 노예를 해방시켰다. 16대 대통령이지만 '건국의 대통령(Founding President)'이라는 반열에 오른 이유다. 독립선언문이 약속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것을 링컨이 80년 만에 이루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한 문장이 진짜가 되는 데 남북전쟁이 필요했다.

다음 편에선 전쟁에서 이기고도 권력을 내려놓은 남자,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