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평론가 박평식, 초기대작 나홍진 '호프'에 의미심장한 '9글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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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56분 대서사…'낚였다'의 정체를 풀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한국 장르 영화의 기준을 새로 쓴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 '호프'가 오는 15일 개봉을 확정한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인색한 평점으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의 한줄평이 공개되며 영화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호프' 주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프' 주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평론가가 씨네21을 통해 '호프'에 남긴 평은 단 9글자, "끌렸다, 즐겼다, 낚였다"다. 별점은 3개다.

'소금쟁이' 박평식의 별 3개가 갖는 무게

박 평론가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짠돌이 평론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세상에 완벽한 영화는 없다'는 철학 아래 10점 만점, 즉 별 5개를 절대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9점(별 4개 반)은 사실상 만점이나 다름없는 최고의 찬사다. 2012년 영화 '마스터'에 9점을 준 이후 무려 12년 만인 2024년에 이르러서야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다시 9점을 줬을 정도다.

통계적으로도 그의 평균 점수는 5~6점대로, 일반 관객 평점은 물론 함께 엄격하기로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 등 다른 전문가들과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업적인 대작이나 팝콘 무비에는 특히 엄격해 별 2개~2개 반을 쏟아내기 일쑤다. 화려한 CG나 억지 감동, 진부한 클리셰가 들어간 상업 영화에는 가차 없이 낮은 점수를 주는 반면, 사회적 메시지가 묵직하거나 실험적인 독립·예술 영화에는 상대적으로 후한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박평식에게 별 3개를 받았다면 최소한 돈 아깝지 않은 평작 이상이며, 별 3개 반 이상이면 웰메이드 수작'이라는 확실한 기준표가 통용된다. 이 기준에 대입하면 '호프'가 받은 별 3개는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니다. 여기에 "끌렸다, 즐겼다, 낚였다"라는 문장 자체가 영화의 몰입감과 반전, 관객이 느낄 당혹감까지 세 단어로 압축한 평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영화 '호프'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호프'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씨네21 평론가들의 별점 총정리

씨네21에 공개된 '호프'의 평론가 별점은 다음과 같다. 김소미 평론가는 별 4개와 함께 "쾌감의 짝인 공허까지도 납득시킨다"고 적었다. 오진우 평론가 역시 별 4개를 주며 "공백을 만들고, 응시하고, 추격한다 계속!"이라고 평했다. 이우빈 평론가도 별 4개와 "후진 없는 희망의 트럭"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용철 평론가는 별 3개와 함께 "Grosse Fatigue: 하루가 참 길다"고 썼고, 박 평론가가 별 3개로 뒤를 이었다. 다섯 명의 평론가 중 세 명이 별 4개를 준 셈으로, 평단의 전반적인 반응은 개봉 전 기대치를 뒷받침하는 수준이다.

박평식 '낚였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호프'는 1970~80년대 비무장지대와 맞닿은 외딴 마을 호포항을 배경으로 한다. 반공 구호가 일상이던 이 마을에서 도륙당한 황소 사체가 발견되고,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동네 청년 성기(조인성)가 미지의 존재를 추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반부는 숨 막히는 크리처 액션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다.

나 감독이 '곡성'에서 의심과 미혹을 다뤘다면, '호프'에서는 타자에 대한 무지와 증오를 현미경 밑에 올려놓는다. 영화 속 외계 존재는 공동체 밖의 외지인이자 타자를 은유한다. 알기도 전에 먼저 미워하고, 확인하기도 전에 우선 배척하는 인간의 맹목적 속성을 꼬집는다. 외계인의 시선에서 보면 오히려 인간이야말로 침략자다. 이 역지사지의 관점을 상실한 인류가 어떻게 자멸적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몰아붙인다.


'호프' 스틸컷.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프' 스틸컷.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낮의 서스펜스, CG 대신 발품…기술적 성취

'호프'는 할리우드식 대형 SF물이 그린 스크린과 CG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인위적인 세트와 CG를 최소화하고 압도적인 로케이션으로 거친 시각적 질감을 만들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어둠 속에 괴물을 숨기는 진부한 공포 공식에서 벗어나, 환한 대낮 시골길에서 펼쳐지는 추격전과 카체이싱을 극도의 밀도로 포착해 서스펜스의 가시성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조던 필 감독과 협업해 온 마이클 아벨스 음악감독이 합류해 이국적이면서도 신경을 긁는 사운드스케이프로 관객의 심리적 공포를 조율한다.

배우 라인업도 화제다. 황정민은 인류의 희망을 시험하는 잔혹한 무대에서 유일하게 연민의 흔적을 내비치는 범석을 연기하며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조인성은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을 뿜어내는 마을 청년 성기 역을, 정호연은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성애 역을 맡았다. 마이클 파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할리우드 배우들은 단순 카메오가 아닌 극의 핵심 축으로 작동한다.


'호프' 스틸컷. 조인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프' 스틸컷. 조인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칸 7분 기립박수, NEON 북미 배급…오스카 레이스까지

'호프'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상영 직후 약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할리우드 리포터 등 해외 매체로부터 "나홍진의 전작들은 이번 작품을 위한 몸풀기였다"는 극찬도 나왔다. 북미 배급은 과거 '기생충'의 배급을 맡아 아카데미 4관왕을 견인한 NEON이 담당하며, 북미 개봉일은 9월 9일이다. 이 조합은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및 주요 부문 레이스에서 '호프'가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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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연출작 국내 흥행 톱3 정리

'호프'가 네 번째 연출작이라는 점도 새삼 화제다. 데뷔 후 18년 동안 나 감독이 직접 연출한 장편은 개봉작 기준 단 3편이다. 국내 누적 관객수 기준 흥행 순위를 3위부터 역순으로 짚어본다.

3위는 2010년 개봉한 '황해'로 누적 관객수 약 226만 명이다. 하정우와 김윤석이 주연을 맡은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손익분기점 약 300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개봉 이후 재평가가 이어졌다. 하정우가 연기한 구남의 이른바 '먹방' 장면과 김윤석의 '족발 뼈 액션'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2위는 2008년 데뷔작 '추격자'로 약 507만 명을 동원했다. 잔혹한 묘사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도 500만 고지를 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성인 관객만으로 쌓아 올린 기록이다. 숨 돌릴 틈 없는 서스펜스로 한국 스릴러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한국 스릴러들이 '추격자'와 비교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호프' 나홍진 감독. / 뉴스1
'호프' 나홍진 감독. / 뉴스1
1위는 2016년 '곡성'으로 누적 관객수 약 687만 명이다.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가 출연했고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외지인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극 중 대사 "무엇이 중헌디"는 전 국민적 유행어가 됐다. 결말을 두고 "낚였다"는 관객이 속출하며 대규모 해설과 분석 열풍, 재관람으로 이어진 점이 흥행을 견인했다.

나 감독의 이름이 걸린 '랑종'(2021)은 그가 원안과 제작으로 참여했을 뿐 연출은 태국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맡았다. 국내 관객수는 약 83만 명으로, 연출 필모그래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세 연출작을 나란히 놓고 보면 '추격자'와 '황해'는 김윤석·하정우 조합, '곡성'은 곽도원·황정민·천우희 조합으로 완성됐고, 세 작품 모두 출연 배우들의 대표작으로 남았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