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광주제일고와 배재고가 보여준 '진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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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고 학생들,국립5·18민주묘지 찾아 민주영령 앞에 고개 숙여

그 침묵을 깬 것은 배재고 야구부 주장이었다.
"광주제일고 선수들과 학부모, 그리고 광주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짧았지만 무게감 있는 한마디였다. 변명도 없었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직접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기자는 '사과는 결국 발걸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응원가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광주에서는 5·18은 현재진행형의 역사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시민들의 아픔과 기억이 살아 있는 도시다. 그런 역사 앞에서 특정 응원 구호가 조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배재고 학생들은 사과만 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광주제일고 교정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을 찾아 묵념했고, 이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민주영령 앞에 고개를 숙였다.누군가는 "굳이 거기까지 해야 했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은 바로 그런 과정이다.
교실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보다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민주주의가 훨씬 오래 기억된다. 책으로 읽는 역사보다 묘역 앞에서 느끼는 침묵이 훨씬 큰 울림을 준다.
이번 하루가 배재고 학생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더 인상 깊었던 장면은 광주제일고 학생들의 태도였다.사과를 받는 입장이었지만 분노를 앞세우지 않았다.
"우리도 경기 중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이 말은 단순한 화답이 아니었다.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광주제일고 학생들은 행동으로 증명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아량.그 두 가지가 함께 있었기에 이날의 만남은 단순한 사과 행사가 아니라 화해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함께한 것도 상징성이 컸다.
두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의 가치를 말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함께 현장을 걸으며 교육은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요즘 학교는 성적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번 광주에서의 만남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교육은 잘못하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잘못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 사과할 줄 아는 사람, 상대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이번 일을 계기로 두 학교 학생들은 승패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을지 모른다.
스포츠맨십은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사실이다.
야구는 언젠가 끝난다.우승도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하지만 이날 광주에서 맞잡은 두 학교 학생들의 손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5·18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작됐던 이야기는 결국 '사과와 용서', '이해와 화해'라는 교육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졌다.
그것이야말로 승패를 넘어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값진 수업이 아닐까.
이번 만남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광주와 서울, 두 학교의 인연이 역사와 민주주의를 함께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는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상처는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광주제일고와 배재고 학생들은 그 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