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축구협회장으로 강력하게 거론 중인 40대 '재벌 3세'…나머지 후보 4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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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의 눈물, 아사리판 직전까지 몰린 한국 축구

한국 축구 역사상 이토록 무력하고 비참한 순간이 있었을까.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유럽 빅리그를 호령하는 역대급 황금 세대를 보유하고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32강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세계적인 스타들을 진부한 전술과 무능한 행정 속에 가둬버린 대가는 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 뉴스1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 뉴스1

결국 거센 비판의 중심에 섰던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6월 말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선임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불투명한 특혜 의혹, 팬들의 비판을 아집으로 맞받아쳤던 홍 감독의 사퇴는 예견된 참사의 마지막 조각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짜 책임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약 13년간 한국 축구를 무소불위로 지배해 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다. 월드컵 개막 직전 월드컵 폐막 이후 사퇴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던 정 회장은 32강 탈락으로 공분이 극에 달한 지금,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협회 정관에 따라 60일 안에 차기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월드컵 실패 원인을 규명하는 특별 감사와 이른바 체육관 선거 방식의 개선, 즉 직선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 축구계 전체가 불신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지금 축구팬들의 시선은 차기 축구협회장 후보들에게 쏠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장 사퇴 예고해 둔 상태인 정몽규 회장.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대한축구협회장 사퇴 예고해 둔 상태인 정몽규 회장.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왜 여론은 40대 '재벌 3세' 정기선에게 열광하는가

현재 축구팬들과 미디어 사이에서 차기 축구협회장 후보로 가장 뜨겁게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는 바로 정기선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회장이다. 1982년생, 올해 44세인 젊은 총수이자 현대가 3세 경영인인 그가 위기의 축구협회를 구할 인물로 꼽히는 배경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정몽규 잔혹사'가 불러온 '정몽준 향수'다. 현재 축구팬들은 정 회장 체제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반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했던 인물이 정기선 회장의 아버지인 정몽준 전 협회장이다. 팬들은 정몽규 체제의 끈적한 인맥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과거 강력한 축구 외교력으로 세계를 누볐던 정몽준 시대의 DNA를 아들인 정기선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의 이른바 '양궁 성공 방정식'을 이식할 수 있다는 기대다. 정의선 회장은 대한양궁협회를 이끌며 파벌을 배제하고 실력과 공정, 대기업식 과학적 지원 시스템만으로 한국 양궁을 세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축구팬들은 젊고 유능한 경영인으로 평가받는 정기선 회장이 취임한다면 축구계 내부 파벌을 정리하고 '축구판 정의선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셋째, 천안 축구종합센터 부채와 명장 선임 문제를 해결할 자금력이다. 현재 축구협회는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 등으로 수백억 원대의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당시에도 위약금 문제로 쩔쩔맸고, 세계적인 명장을 데려올 돈이 없어 행정적 악수를 거듭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HD현대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정기선 회장의 자금력과 비즈니스 감각이라면 협회의 재정 위기를 단숨에 타개하고 대표팀에 세계적인 클래스의 사령탑을 앉힐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각에서 나오는 출마 결심설이 아직은 수면 아래 루머에 가깝지만, 여론이 이 40대 젊은 총수에게 보내는 지지는 역대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평가다.


정기선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회장. / 뉴스1
정기선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회장. / 뉴스1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후보 5인 집중 해부

1. 신문선, 명지대 교수·전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 전 해설위원. / 뉴스1
신문선 전 해설위원. / 뉴스1

신문선 교수는 정 회장의 13년 임기 내내 가장 전면에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온 인물이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파동, 승부조작범 기습 사면 논란, 최근의 홍명보 감독 특혜 선임 의혹에 이르기까지 축구협회가 침묵하거나 궤변으로 일관할 때마다 매서운 직설로 목소리를 냈다. 정 회장의 중도 사퇴 선언 직후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이 먼저라며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과거 축구협회장 선거에 직접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는 그는, 역설적으로 정몽규 체제가 무너진 지금 대체 불가능한 개혁의 기수로 급부상했다. 성남일화, 현 성남FC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프로구단 행정 실무를 경험했고, 학계에서 스포츠 산업과 행정을 연구한 이론가이기도 하다. 강점은 현 수뇌부와 철저히 척을 지어왔기 때문에 인적 쇄신과 카르텔 척결을 요구하는 민심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약점도 물론 있다. 축구계 내부를 장악한 주류 인맥의 반발을 넘어야 하고, 선거 방식이 직선제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존 지방축구협회와 연맹체 중심의 대의원 투표 구조에서 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2. 이용수,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 뉴스1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 뉴스1

이용수 부회장은 한국 축구 행정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으로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4강 신화를 일궈낸 주역이며, 이후 기술위원장과 부회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협회 내부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고, FIFA나 AFC 등 국제 네트워크와의 소통 능력도 갖췄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은 지금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정몽규 체제 핵심 브레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 선임과 경질 과정, 이후 이어진 기술위원회 붕괴, 클린스만·홍명보로 이어진 기술 행정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치다. 강점은 정 회장 사퇴 이후 몰아칠 행정 공백을 가장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실무적 안정성이다. 내년 1월로 다가온 2027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을 대비해 차기 감독 체제를 신속히 안착시킬 능력도 있다. 약점은 결국 정몽규 밑에 있던 사람이 또 회장을 하느냐는 팬들의 반발이다. 당선될 경우 혁신이 아닌 인맥 축구의 연장선으로 비칠 위험이 크다.

3. 정기선,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회장
정기선 회장. / 뉴스1
정기선 회장. / 뉴스1

최근 재계와 축구계에서 가장 뜨겁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HD현대그룹의 키를 잡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의 아들이며, K리그1 명문 구단 울산 HD FC의 실질적 구단주 역할을 하며 축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비교된다.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투명한 기업식 시스템을 축구협회에 이식한다면 낡은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축구계가 정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범현대가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축구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후보론에 무게를 더한다. 강점은 대기업 총수로서 갖는 자금력과 정무적 영향력이다. 취임할 경우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 부채 등 고질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적인 명장을 데려올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약점은 범현대가 독점에 대한 피로감이다. 정몽규 체제의 실패가 결국 현대가 장기 집권에 따른 고인 물 현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또다시 현대가 인물이 바통을 이어받는 데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본업인 대기업 경영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는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4. 김병지,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강원FC 대표이사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강원FC 대표이사. / 뉴스1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강원FC 대표이사. / 뉴스1

꽁지머리 골키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병지 부회장은 은퇴 후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스포츠 행정가 중 한 명이다. 도민구단 강원FC 대표이사를 맡아 제한된 예산 속에서도 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재계와 축구계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며 팬들과의 소통에도 거침이 없다.

그는 현장 목소리를 행정에 녹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출신 행정가로 꼽힌다. K리그 발전 없이는 국가대표팀의 미래도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 축구 저변 확대와 유소년 시스템 개혁에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강점은 축구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데 능숙하고 K리그와 유소년 축구의 생리를 잘 안다는 점이다. 강원FC를 통해 행정력을 이미 검증받았다. 약점은 그 역시 정 회장 체제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2023년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승부조작범 기습 사면 시도 당시 이사회 멤버였다는 사실은 개혁의 선두 주자로 나서기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된다.

5. 구자은, LS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 뉴스1
구자은 LS그룹 회장. / 뉴스1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축구협회장 도전설은 현재로서는 루머에 가깝다. 그동안 스포츠 운영이나 체육 행정과는 거리가 먼 순수 경영인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정부가 추진 중인 축구협회장 직선제 도입 기류와 맞물려 있다.

문체부 방침대로 기존의 폐쇄적인 선거 방식이 무너지고 다수의 축구인이 참여하는 직선제가 도입된다면, 축구계 내부 지연·학연 카르텔과 무관한 거물급 기업인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점은 학연, 지연, 축구계 내부 파벌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다. 실적과 시스템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할 수 있는 투명성을 지니고 있다. 약점은 축구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네트워크의 부재다. 축구협회장은 국내 행정뿐 아니라 FIFA, AFC 등 국제 무대에서의 스포츠 외교력도 필수적인데, 경험이 전무한 기업인이 연착륙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 따른다.

60일의 선거 정국, 한국 축구는 진짜 리더를 찾을 수 있을까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실패와 홍 감독의 퇴진, 정 회장의 사퇴 약속까지. 한국 축구는 지금 13년 만에 찾아온 권력 공백 상태를 마주하고 있다. 협회 정관상 정 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60일 안에 차기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문체부가 추진 중인 직선제 도입 여부에 따라 선거판의 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 대의원 투표 방식이 유지된다면 신문선이나 김병지처럼 축구계 내부 네트워크가 필요한 후보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직선제로 전환된다면 정기선이나 구자은처럼 외부에서 지지를 끌어오는 후보들의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무너진 대표팀의 지휘봉을 넘겨받을 새 감독 선임이다. 내년 1월 2027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 일정을 고려하면 차기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감독 선임이라는 시간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 여기에 천안 축구종합센터 부채 문제, 승부조작범 사면 시도 논란으로 흔들린 협회 신뢰 회복까지, 차기 회장이 짊어질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최고 에이스인 손흥민과 이강인. / 뉴스1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최고 에이스인 손흥민과 이강인.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