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고목 아래 '보랏빛 카펫' 장관… 여름에 꼭 가야 하는 국내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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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왕버들 거목이 지키는 고즈넉한 숲길

옛 성벽 밖, 마을 사람들이 재앙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자리가 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그 숲은 오래된 왕버들과 해마다 피어나는 맥문동으로 이곳이 지나온 세월을 보여준다.

성주 '성밖숲'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일대에 자리한 전통 마을숲이다. 이름 그대로 옛 읍성의 바깥에 조성된 숲으로, 고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생활이 오랜 시간 겹쳐 있는 장소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숲이 조성된 배경에는 조선 중기 성주읍성 서문 밖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이 일대에서 어린아이들이 이유 없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잦자, 주민들은 마을의 지세를 보완해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완하고 재액을 막기 위해 만든 숲은 수구막이 또는 비보림으로 불렸다.

성밖숲이 자리한 곳은 이천이 흐르는 길목이기도 하다. 숲은 마을의 기운을 보완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물길 주변의 토양 유실을 막고 홍수 때 물의 흐름을 완화하는 기능도 지녔다. 처음에는 밤나무 숲이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황폐해졌고 전쟁 이후 주민들이 왕버들을 심어 다시 숲을 일구었다고 전해진다. 성밖숲은 이처럼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바람과 지역이 겪어온 시간이 함께 쌓인 숲이다.

수령 300~500년의 왕버들 군락

성밖숲의 중심에는 수령 300년에서 500년에 이르는 왕버들 5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 수종의 노거수가 이처럼 무리 지어 숲을 이룬 모습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그 생태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왕버들은 물가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성밖숲의 왕버들 역시 이천 주변의 지형과 어우러져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 왔다. 나무의 높이는 10m~15m 안팎이며, 굵은 줄기와 깊게 갈라진 껍질에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다. 일부 나무는 줄기가 비틀리고 휘어진 채 자라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면 나무마다 다른 결이 드러나고, 숲 전체에서는 오래된 마을숲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숲 안에서는 나무의 크기보다 세월의 흔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줄기 곳곳에는 갈라진 껍질과 굽은 가지가 남아 있고, 나무 아래로는 사람들이 오가며 다져진 길이 이어진다. 왕버들은 독립된 기념수가 아니라, 서로 알맞은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이 때문에 성밖숲은 짧은 시간 머무르는 관람지보다 천천히 거닐며 전체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봄에는 왕버들 가지마다 연둣빛 새잎이 돋아난다. 잎이 퍼지기 시작하면 숲은 한결 밝아지고, 여름으로 접어들수록 녹음은 점점 짙어진다. 한낮의 볕이 강한 계절에도 왕버들 아래에는 비교적 선선한 공기가 감돈다. 성밖숲이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온 이유도 이 그늘과 평탄한 길에 있다.

맥문동이 피는 한여름의 성밖숲

성밖숲이 가장 많이 주목받는 시기는 한여름이다. 8월 무렵 왕버들 아래로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면 숲의 풍경은 또 다른 색으로 바뀐다. 맥문동은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성밖숲에서는 왕버들 아래 넓게 심겨 있다.

짙은 초록의 왕버들 잎과 보랏빛 맥문동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수백 년 된 고목의 굵은 줄기 사이로 낮은 꽃대가 이어지고, 숲길을 따라 걸으면 시선이 나무와 바닥을 오가게 된다. 성밖숲의 여름 풍경은 이 오랜 고목과 낮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며 수려한 경관을 완성한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성주 경산리 성밖숲. / 한국관광공사(촬영 : 박장용)
맥문동은 해마다 날씨에 따라 개화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7월에는 왕버들의 녹음과 숲 산책에 초점을 맞추기 좋고, 보랏빛 꽃 풍경을 기대한다면 8월 초·중순 무렵이 더 적절하다. 다만 개화 시기는 기온과 강수량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방문 전 성주군의 현장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한여름 성밖숲은 숲길을 따라 산책할 때 그 매력이 온전히 드러난다. 맥문동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보랏빛 꽃 군락이 왕버들 그늘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데,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거닐면 고목의 짙은 녹음과 맥문동의 화사한 색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가을에는 잎이 물들고 낙엽이 숲길에 쌓이며, 겨울에는 왕버들의 굵은 가지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숲길 전체가 평탄하여 어느 계절에 찾아도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다.

성밖숲 맥문동. / 뉴스1
성밖숲 맥문동. / 뉴스1

주민의 일상과 맞닿은 열린 숲

성밖숲은 문화유산으로 보호되는 숲이면서도 주민의 생활과 가까운 휴식처다. 별도의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연중무휴로 개방돼 있다. 성주읍 중심부와 가까워 차량 접근도 어렵지 않으며, 주변에는 공영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평소에는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는 일상의 터전이다. 아침과 저녁에는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오가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와 평상에서는 잠시 쉬어 가는 이들이 머문다. 숲 내부와 주변 광장에서는 지역 축제와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성주읍권에서 이어지는 역사 여행

성밖숲을 둘러본 뒤에는 성주읍의 역사 유적으로 동선을 이어가기 좋다. 성밖숲 이름의 배경이 된 성주읍성은 조선시대 성주 고을의 중심지였다. 옛 성곽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일부 구간과 문루가 복원돼 성주의 옛 도시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성주군 월항면의 한개마을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조선 세종 때부터 대를 이어온 마을에는 전통 한옥과 초가, 돌담길이 남아 있어 영남 지방 양반가의 주거 문화를 차분히 살필 수 있다. 고택과 담장 사이를 걸으며 성밖숲과는 또 다른 성주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성주에는 세종대왕자태실도 있다. 조선 왕실의 태실 문화를 간직한 유적으로, 성주가 지닌 역사의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밖숲에서 시작해 성주읍성, 한개마을, 세종대왕자태실 등으로 여정을 넓히면 숲 산책에 깊이 있는 역사 탐방이 더해진다.

참외와 등겨장으로 만나는 성주의 맛

성주 여행에서 지역의 맛을 빼놓기 어렵다. 성주는 전국적인 참외 주산지다. 가야산 자락에서 이어지는 물길과 낙동강 주변의 토양, 풍부한 일조량은 참외 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주 곳곳에는 참외 재배 하우스가 이어져 지역 특유의 농업 경관을 이룬다. 수확 철에는 현지에서 참외를 구입하거나 맛볼 수 있어 성주 여행의 계절감을 더한다.

성주의 전통 음식 가운데 등겨장도 빼놓을 수 없다. 등겨장은 보리 이삭을 찧고 남은 보리등겨를 반죽해 메주처럼 구운 뒤, 이를 가루로 만들어 양념과 함께 발효시킨 성주 지방의 전통 장이다. 일반 된장이나 고추장보다 염도가 낮고, 구수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밥과 제철 나물에 등겨장을 곁들여 비벼 먹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삽화]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성주 전통시장에서는 매월 끝자리가 2와 7인 날마다 오일장이 선다. 장날에는 신선한 농산물과 다채로운 먹거리가 가득하다. 등겨장 백반이나 국밥 같은 음식도 장터를 둘러보는 재미를 더한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오래된 왕버들만 바라보는 숲이 아니다. 조선시대 마을숲의 유래와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 한여름 맥문동 풍경, 주민들의 일상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주변의 역사 명소와 먹거리까지 더하면, 성밖숲은 성주 여행의 출발점이자 중심이 된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 구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