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 뒤편의 질문들…잠실 광장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나

작성일

[잠실, 깃발 없는 광장] ⑤ 같은 구호 아래 다른 고민
분노 넘어 정체성 고민… 진영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광장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정당의 깃발도, 무대 위에서 군중을 지휘하는 뚜렷한 지도부도 없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수만 명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위키트리는 이 광장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고 여섯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어느 진영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이유로 모였는지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참가자들이 남긴 게시물과 안내문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참가자들이 남긴 게시물과 안내문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광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 다른 말들이 들렸다. 사람들을 현장으로 불러낸 것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관위 문제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주말 집결과 평일 농성이 반복되면서 현장의 관심은 조금씩 넓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질문 옆에 "이 문제를 어떻게 더 알릴 것인가", "정치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밖에서는 이 광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고민이 따라붙었다.

광장이 더 커져야 한다는 말은 여러 곳에서 나왔다. 더 많은 시민이 현장에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국회와 정당이 이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반대로 중엉선거관리위원회 문제와 참정권 침해 논란이 특정 진영의 주장처럼 보이면 중간 지대 시민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현장 안에서는 "더 알려야 한다"는 말과 "오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함께 오갔다.

스스로 만든 데이터가 비춘 광장의 자화상

밖의 시선을 의식하던 광장은 자기 자신부터 헤아려 보려 했다. 시민이 만들어 공유하던 정보 화면에는 지금 이 광장에 누가 모여 있는지 가늠하려는 숫자가 떴다. 어느 평일 오전 11시 20분 기준 실시간 생활인구는 9500명에서 1만 명 사이. 성별은 남성 48%, 여성 52%, 연령은 30대와 40대가 각각 19% 안팎으로 가장 높게 잡혔다. 하루 누적 인원은 약 2만 8000명으로 추정된다는 계산도 붙었다. 다만 이 수치는 특정 시민이 자체적으로 집계·연산한 값이다. 검증된 통계가 아니라 광장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드러낸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화면 속 무게중심이 고령층이 아니라 3040에 쏠려 있고 여성이 남성을 근소하게 웃돈다는 점은 '특정 세대만의 집회'라는 통념과 어긋나는 그림이었다.

광장의 크기는 시민도 국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로는 어느 주말 공원 일대 체류 인구가 5만 명 안팎까지 잡혔지만, 이 공식 수치조차 '시위 인원'만 따로 떼어내지 못했다. 인근에서 열린 음악 축제 관람객과 공연장 관객, 일반 나들이객이 한 데 섞여 잡혔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와 공연 굿즈를 든 관람객이 같은 길목을 오가는 상황에서 광장이 얼마나 큰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세어 보려 한 것도 남이 셀 수 없다면 우리라도 세어 보자는 마음에 가까웠다.

밖에서 이 광장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그만큼 예민한 문제였다. 광장이 길어지면서 현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듣는 사이사이 밥을 먹고, 쉬고,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했다. 며칠씩 같은 공간에 머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도 생겼다. 온라인에는 "애국하러 갔다가 남자친구를 만났다", "현장에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식의 글도 올라왔다. 장기화한 현장에서 사람들이 반복해 마주치다 관계가 생기는 일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일부 참가자는 그런 장면만 따로 떼어 소비될 가능성을 걱정했다. 참정권 문제와 선관위 논란을 말하기 위해 모인 광장이 '젊은 층의 유행'이나 '만남의 장소'처럼 비치면 광장에 나온 이유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세어 보고 규모를 가늠하던 광장이 정작 밖의 시선 앞에서는 가볍게 소비될까 조바심을 냈다.

"생수는 30분만에 오는데"… 국가를 향한 불신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세워진 차량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다. 시민들이 차량 앞에 모여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세워진 차량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다. 시민들이 차량 앞에 모여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 위키트리

광장의 답답함이 가장 크게 향한 곳은 국가였다. 광장의 시민은 스스로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꼈다. 어느 곳에 무엇이 부족한지가 실시간으로 오가고 곧바로 채워지는 사이 정작 사태를 수습해야 할 국가 기관의 해명은 더디고 모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내가 보낸 생수는 30분이면 도착하는데 국가는 왜 그 며칠을 못 움직이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투표가 한때 멈춰 선 사태를 이들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내 한 표를 제때 지켜주지 못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찰력 배치를 둘러싼 인식도 이런 정서를 부추겼다. 한 참가자는 규모가 작은 다른 투표소에 오히려 다수의 경찰이 투입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정작 문제를 풀어야 할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힘이 쏠린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런 인식이 사실관계와 정확히 부합하는지는 별도로 검증돼야 할 문제다. 다만 적어도 광장의 청년들은 국가의 우선순위가 자신들의 그것과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빠르다는 것이 곧 옳다는 뜻은 아니었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도 같은 속도로 퍼졌고, 한번 퍼진 이야기는 정정되기 전에 이미 광장의 상식이 돼 있곤 했다.

그 답답함은 그대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시민은 밤낮으로 광장에 남아 있는데 제도권 정치는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불만이 컸다. 일부 참가자는 정치권이 현장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지치고 참여 인원이 줄고 관심이 흩어지면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렇다고 정치권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선거 제도와 선관위 문제는 결국 국회와 수사기관, 법원과 행정기관 안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정치권을 믿기 어렵다는 말과 정치권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나란히 나왔다. 믿지는 못하지만 움직이게는 해야 한다는 감정이었다.

성조기와 시스템... 밤 깊도록 평행선 달린 대화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차량 앞에 서서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지켜보고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차량 앞에 서서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지켜보고 있다. / 위키트리

이런 고민은 광장 한편의 대화에서도 드러났다. 기자가 30대 청년 자원봉사자에게 현장 분위기와 집회에 나온 이유를 묻던 중이었다. 곁에 있던 50대 남성이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며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기자는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힌 뒤 자리를 지키며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처음 질문은 단순했다. 왜 이 집회에 나오게 됐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 참가 계기를 넘어섰다. 선관위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정치권은 어디까지 나서야 하는지, 보수 진영은 왜 하나로 움직이기 어려운지, 이 집회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로 번져 갔다.

경기 고양시에서 왔다는 50대 남성은 이날 처음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자신을 군 출신이라고 소개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보수 성향 집회와 오프라인 활동을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반면 30대 청년은 현장에서 자주 봉사에 참여해 온 참가자였다.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마주쳤고 세대도 현장을 경험한 시간도 달랐다. 그런데도 같은 광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왜 여기까지 나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청년은 참정권 문제를 먼저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단순한 행정 실수로 넘기기 어렵다고 봤고 선거 과정에 의문이 생겼다면 시민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현장에 머물수록 질문은 더 많아졌다고 했다. 선관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정치권을 어떻게 압박해야 하는지,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쌓였다는 것이다.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게이트 앞에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이 서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게이트 앞에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이 서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성조기를 들고 게이트 앞을 지나고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성조기를 들고 게이트 앞을 지나고 있다. / 위키트리

50대 남성은 청년의 말을 들은 뒤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그가 본 보수 진영은 쉽게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성조기를 드는 문제, 구호를 어디까지 가져갈지, 정치권과 어떻게 연결할지 등을 두고 내부에서도 이견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올림픽공원 안에서 벌어지는 고민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봤다. 실제로 광장 한쪽에서는 성조기가 오갔고, 그 모습을 불편해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무엇을 들고 무엇을 외칠지를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갈렸다.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두 사람은 달랐다. 청년은 현실적으로 제도권 안에서 이 문제를 꺼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정 정치인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라기보다 시민들의 요구가 국회와 정당 안에서 다뤄질 통로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50대 남성은 정치권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장에 와서 발언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보다 실제로 이 문제를 의제로 만들고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도 정치인의 말에만 기대지 말고 누가 움직였고 누가 침묵했는지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는 근현대사와 안보 문제로도 이어졌다. 50대 남성은 탄핵 국면과 보수 진영 내부 갈등, 안보 문제를 자신의 경험에 비춰 설명했다. 청년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과 군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질문했다.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상대의 말을 끊거나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한쪽이 설명하면 다른 쪽은 듣고 다시 물었다.

광장 앞쪽에서는 구호와 함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한편에서는 처음 만난 30대와 50대가 이 집회의 성격과 방향을 두고 긴 대화를 이어갔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더라도 세대와 경험, 정치권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랐다. 잠실 광장 안에서는 구호만이 아니라 이런 토론도 오가고 있었다.

지도부 없는 유연함... 조율되지 않는 이견들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한 청년 참가자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위키트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한 청년 참가자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위키트리

30대 청년과 50대 남성의 대화는 광장 안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압축해 보여준다. 두 사람은 같은 문제를 두고 말을 이어갔지만 출발점은 달랐다. 30대 청년은 참정권과 절차, 제도권 안에서 문제를 다룰 통로를 말했다. 50대 남성은 탄핵 국면 이후 보수 진영 내부에서 반복된 갈등과 정치권에 대한 경계심을 꺼냈다. 같은 광장에 서 있어도 각자가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같지 않았다.

이런 균열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화면 속 숫자로는 20대부터 50대까지, 남성과 여성이 한 덩어리로 잡혔지만 그 안에서 각자가 품은 요구는 재선거와 선관위 개혁, 제도 개선과 진영 경계로 제각각 갈라졌다. 한 화면에 잡힌 인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뜻하지는 않았다. 잠실 광장의 무조직성도 이런 고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였고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그래서 현장은 빠르고 유연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누구도 전체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구호가 달라질 때, 외부 프레임이 붙을 때, 정치권의 계산이 끼어들 때 광장이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 선을 그을지는 간단히 정리되지 않았다. 지도부가 없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조율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밤 12시가 가까워질 무렵, 기자는 광장 한편에서 두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오후 8시쯤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30대 청년과 50대 남성이었다. 집회에 나온 이유를 묻는 짧은 질문에서 시작됐지만 그 사이 두 사람은 선관위 문제와 정치권, 보수 진영의 갈등과 시민의 역할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다음에는 현장이 아닌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했다. / 김지현·정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