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남아공에 0-1 충격패... 어쩌다 이런 대참사 벌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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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이 돼 돌아온 홍명보의 도박 같은 승부수

비겨도 충분했던 경기였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이기겠다며 주장 손흥민(LAFC)을 벤치에 앉히는 도박을 택했고, 그 승부수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한국 축구가 '1승 제물'로 여기던 최약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90분 내내 무기력하게 끌려다닌 끝에 0-1로 무릎을 꿇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5일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최종 3차전에서 남아공에 패했다.
1승1패(승점 3)로 무승부만 거둬도 조 2위로 32강 진출이 확정되던 한국은 1승2패(승점 3)에 머물며 조 3위로 추락했다. 자력 진출은 완전히 무산됐다. 같은 시각 멕시코가 체코를 3-0으로 꺾으며 3승(승점 9)으로 조 1위를 확정했고, 한국을 잡은 남아공은 1승1무1패(승점 4)로 조 2위에 올라 사상 첫 월드컵 토너먼트 진출을 이뤄냈다. 남아공은 오는 2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B조 2위 캐나다와 32강을 치른다.
패배의 씨앗은 선발 명단에서 뿌려졌다. 홍 감독은 첫 두 경기에서 침묵한 손흥민을 빼고 황희찬(울버햄프턴)과 오현규(베식타스)를 전방에 배치한 3-4-3 포메이션을 들고나왔다. 골키퍼 김승규(도쿄), 스리백에 이한범(미트윌란)·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이기혁(강원), 좌우 윙백에 설영우(츠르베나 즈베즈다)·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 중원에 황인범(페예노르트)·백승호(버밍엄), 측면에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세웠다. 비겨도 되는 경기에서 굳이 모험을 건 셈이다. 미국 ESPN은 손흥민을 제외한 결정을 두고 충격적인 선발 발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도박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황희찬과 오현규 투톱은 공격 기여도가 사실상 없었다. 황희찬은 최전방과 좌측면을 오갔지만 특유의 돌파력을 살리지 못한 채 전반 33분 먼 거리에서 시도한 중거리슛이 크게 빗나갔고 전반 45분 만에 교체됐다. 오현규는 전반 7분 설영우의 크로스를 힐킥으로 받아낸 장면을 빼면 빌드업 단계의 잦은 패스 미스 탓에 득점 지역에서 볼을 잡을 기회조차 거의 잡지 못했다.
전반전 내용은 졸전 그 자체였다. 한국은 볼 점유율에서 64%로 남아공(38%)에 크게 앞서고도 유효슈팅을 한 개도 만들지 못했고, 슈팅 수에서 4-10, 유효슈팅에서 1-3으로 밀렸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빌드업이 끊기고 1차 저지선이 뚫리며 남아공의 날카로운 역습에 거듭 위기를 맞았다. 전반 19분 마세코에게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내줬으나 이기혁이 몸으로 막았고, 음바타-막고파로 이어진 결정적 기회는 김승규의 슈퍼세이브로 간신히 넘겼다. 김승규의 선방이 없었다면 전반에 이미 무너졌을 흐름이었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손흥민과 김진규, 옌스 카스트로프(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한꺼번에 투입하고 황희찬·이태석·백승호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손흥민-옌스 조합이 처음 가동된 왼쪽에서도 빌드업은 풀리지 않았고, 흐름은 다시 남아공 쪽으로 넘어갔다. 결국 후반 18분 오른쪽 수비가 열리며 체팡 모레미(올랜도 파이리츠)의 패스를 받은 타펠로 마세코(AEL)가 박스 안에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먼저 실점했고, 그 실점이 그대로 패배로 직결된 경기였다.
용병술도 도마에 올랐다. 동점골이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은 후반 21분 김민재를 빼고 수비수 박진섭(저장)을 투입했다. 후반 29분에는 오현규 대신 조규성(미트윌란)을 넣어 5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소진했지만, 타깃맨 조규성에게 공중볼조차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고 이강인과 손흥민의 발끝도 끝내 살아나지 않았다.
해설을 맡은 박지성 위원은 답답함을 숨기지 않았다. 박 위원은 후반 한국이 끌려가는 상황에서 "골을 넣어야 한다. 박스 안에 숫자가 더 필요하다. 뒤에 너무 많다"며 "우리가 지고 있다. 골이 필요한데 득점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벤치에서 무슨 지시라도 내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술의 변화가 없다 보니 전반전에 보였던 모습만 계속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 언론도 이변에 주목했다. 복수의 외신은 이번 결과를 이번 대회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꼽으며, 개막전 멕시코전 패배와 체코전 무승부로 조 최하위에 처졌던 남아공이 사상 첫 토너먼트 진출을 이뤄낸 반전 드라마라고 전했다. 남아공이 중원의 핵심 테보호 모케나와 부주장 템바 즈와네를 출전 정지로 잃고도 거둔 결과라는 점에서 한국의 졸전은 더욱 뼈아프게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