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도 없는데 꽉 찼다… 잠실 광장을 떠받친 평범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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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깃발 없는 광장] ② “퇴근하고 다시 옵니다”
지휘부 없이 주말마다 수만 명씩 모일 수 있었던 이유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정당의 깃발도, 무대 위에서 군중을 지휘하는 뚜렷한 지도부도 없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수만 명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위키트리는 이 광장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고 여섯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어느 진영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이유로 모였는지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올케, 이리 와! 여기가 시원해!"


주말 오후 올림픽공원 한쪽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시위 참가자였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임시로 설치된 에어컨 쉼터가 있었다. 옆에는 생수가 쌓여 있었고, 그 너머로 치킨 배달 오토바이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모기퇴치제를 나눠주는 손길도 보였다. 한쪽 그늘막 아래에는 누군가 가져다 둔 간이 의자와 부채가 쌓여 있었다. 누군가 준비했다기보다 각자가 가져온 것들이었다. 동원된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모인 사람들의 광장이었다.

잠실 올림픽공원에 마련된 전세 버스들. / 위키트리
잠실 올림픽공원에 마련된 전세 버스들. / 위키트리

과거의 대규모 집회는 대체로 조직이 사람을 실어 날랐다. 단체가 인원을 모으고 버스를 대절해 현장으로 보내면, 집회가 끝나는 동시에 사람들도 함께 빠져나가곤 했다. 도로변에 늘어선 전세버스마저, 잠실에서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동원용이 아니라 더위를 피하는 쉼터로 쓰였다. 잠실에는 그런 동원의 흔적이 옅었다. 누가 데려온 것이 아니라 각자 시간을 내 찾아왔고, 그래서 머무는 시간도 떠나는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이 봉쇄 시위는 주말마다 대규모 인파를 만들었지만 현장을 채운 사람들은 한 가지 모습으로 묶이지 않았다. 갓난아이를 안고 온 부부, 사춘기 자녀의 손을 잡은 40대 부모,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청년 커플. 가족 단위가 눈에 띄게 늘었다. 광장은 하루 종일 같은 인원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며 계속 다시 채워지는 공간이었다.

평일과 주말, 광장의 얼굴이 달라진다

광장의 표정은 시간대마다 달랐다. 낮에는 아이를 데리고 잠시 둘러보는 가족이, 늦은 오후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이, 저녁에는 퇴근한 직장인이 차례로 자리를 채웠다. 늦은 밤에는 막차 시간에 맞춰 자리를 뜨는 사람과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키는 소수가 엇갈렸다. 같은 장소였지만 모이는 사람도, 머무는 길이도 시간에 따라 바뀌었다.

구호가 울리는 동안에도 쉼터 안에서는 사람들이 부채질을 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한쪽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생수를 나누고 아이를 달랬다. 격앙된 구호와 느슨한 휴식이 한 공간에 포개져 있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오히려 일부였고, 더 많은 사람은 그 둘레에서 지켜보거나 잠시 머물다 자리를 옮겼다. 적극적으로 외치는 핵심과 느슨하게 함께하는 다수가 겹겹이 층을 이뤘다.


잠실 올림픽 공원에 부착된 포스터들. / 위키트리
잠실 올림픽 공원에 부착된 포스터들. / 위키트리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씨는 퇴근 뒤 곧장 잠실로 왔다고 했다. "회사에서 바로 왔습니다.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마음이 불편했어요." 집회에 자주 다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이런 데 자주 나오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말은 그냥 넘기기 어려웠어요. 선거는 국민의 기본권인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특정 정당 지지자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당 활동을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누가 이기고 졌느냐보다, 선거 과정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됐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가 말한 참여는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 일상 사이에 시간을 내는 쪽에 가까웠다.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그래도 가능한 날에는 다시 오려고 한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왔다는 대학생 박모씨도 비슷했다. "시험 기간이라 오래 있을 수는 없는데, 계속 신경이 쓰여서 직접 와봤습니다." 박씨는 처음엔 현장에 오기를 망설였다고 했다. 기존 보수 집회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고, 혼자 가도 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꾼 건 SNS였다. "처음에는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건가 싶었는데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글을 올리고 있었어요. 정치적으로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은 건 아니지만, 이 문제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거죠." 박씨는 현장에 온 뒤에도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다음 일정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한 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뉴스나 온라인으로 전해 듣는 것과 직접 와서 보는 것 사이에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잠실 올림픽 공원에 나온 강아지. / 위키트리
잠실 올림픽 공원에 나온 강아지. / 위키트리

기존 보수집회와 닮은 듯 달랐던 광장

취재 중 한 60대 어르신이 기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젊은이가 앞으로 나가요, 하하." 시위 참가자로 오해한 것이었다. 민망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했지만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이 광장에는 세대의 선이 뚜렷하지 않았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구호가 이어지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서거나 공원 안쪽을 천천히 걸었다. 일부는 아이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짧게 설명했다. 주부 이모씨는 "아이를 데리고 오래 있을 수는 없지만, 선거와 관련된 문제라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치 구호를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온 건 아닙니다. 다만 투표가 왜 중요한지, 절차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하게 됐어요." 그는 낮에는 집안일과 가족 일정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저녁에야 현장에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 일정 때문에 자주 오기는 어렵지만, 그냥 끝난 일처럼 넘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연인이나 친구끼리 온 이들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연인과 함께 왔다며 "둘 다 정치 집회에 익숙한 편은 아닌데, 뉴스로만 보면 현장이 어떤지 알 수 없어서 직접 와봤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족 단위나 젊은 사람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의 말처럼 현장에는 격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만 있지 않았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사람, 휴대전화로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사람이 뒤섞였다.

기존 보수집회와 닮은 듯 달랐다. 태극기와 구호는 현장에 있었다. 부정선거를 직접 주장하는 사람도, 보수 성향 유튜버와 정치 인사가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잠실 시위를 기존 보수 집회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일부 참가자는 자신의 참여를 그 틀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특정 인물이나 정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 관리와 참정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나왔다는 것이다. 차이는 나이나 직업보다 참여 방식에서 더 잘 드러났다. 하루 종일 머물지 못해도 참여는 가능했다. 오지 못하는 시간에는 SNS로 상황을 확인했고, 갈 수 있는 날 다시 왔다.

한 30대 참가자는 이 차이를 '심리적 밀도'라는 말로 풀어냈다. "시위 자체가 생업인 사람들이 주도하는 광장과, 각자 본업을 지키며 출퇴근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광장은 근본적인 밀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제 발로 와서 제 시간을 쪼개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참여자 스스로도 이 광장의 진정성을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신뢰가 시위를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봤다.

처음 와봤다는 사람 유독 많았던 광장

다만 강제가 없는 자발적 참여인 만큼 사람 수는 들쭉날쭉했다. 비가 오거나 평일 일정이 겹치면 인원은 눈에 띄게 줄었다. 누가 끌어모으지 않기에 마음이 식으면 그만큼 빠르게 비어버릴 수 있는 광장이기도 했다. 자발성은 이 광장을 떠받친 힘인 동시에 가장 불안정한 토대였다.

이런 광장은 집회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문턱이 낮았다.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최모씨는 "원래 이런 데 자주 나오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고, 박씨는 처음엔 오기를 망설였다고 했다. 집회 경험이 없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부담 없이 한 번 발을 들일 수 있었다는 점은 이 광장의 머릿수를 불린 또 다른 이유였다.

잠실 올림픽 공원에 정차된 차  / 위키트리
잠실 올림픽 공원에 정차된 차 / 위키트리

현장에서 자주 들린 말은 "처음 와봤다"였다. 집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할지, 얼마나 머물러야 할지부터 살폈다. 누군가는 멀찍이서 분위기를 보다 안쪽으로 들어갔고, 누군가는 주변 사람에게 상황을 물었다. 익숙하지 않아 더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보고 간 사람이 다음 날 퇴근 뒤 들르거나, 주말에 가족과 함께 다시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람이 한두 시간씩만 머물러도, 그런 사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한 광장은 좀처럼 비지 않았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소수가 아니라, 잠깐씩 머무는 다수가 자리를 번갈아 채운 셈이다. 누가 명단을 짜 인원을 관리한 것도 아닌데, 빠져나간 만큼 새로 들어오는 흐름이 며칠째 끊기지 않았다. 흐름을 위에서 통제하는 사람도, 끝나는 시점을 정해둔 사람도 없었다.

이들이 같은 정치적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구호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사태를 보는 시각도 달랐다. 다만 선거 절차와 참정권 문제를 그냥 넘기기 어렵다는 감각만은 겹쳤다. 그 감각이 퇴근길과 하굣길, 가족의 저녁 시간 일부를 잠실로 향하게 했다. 강한 주장 옆에 조심스럽게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고, 오래 머무는 사람 옆에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한 조직의 명령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표에서 잘라낸 몇 시간이 광장을 떠받쳤다. 2026년 잠실의 봉쇄 시위는 오래 머문 사람들만의 현장이 아니라, 잠시 왔다 돌아가고 갈 수 있는 날 다시 오는 사람들의 현장이기도 했다. / 김지현·정혁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