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가족부 장관 “직을 걸고, 임신중지 약물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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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직구로 약 구하는 여성들, 안전성 검증 안 된 약물의 위험성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임신중지(낙태) 약물의 국내 도입을 임기 내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면서 관련 논의가 다시 정치권과 의료계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가까이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처음으로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 주목된다.

원 장관은 최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직을 걸겠다는 각오로 임기 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많은 여성들이 해외 직구나 불법 유통 경로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구매하고 있다며,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 뉴스1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 뉴스1

현재 국내에서는 임신중지 약물이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 여성들은 해외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약물을 구매하고 있지만, 진품 여부나 성분, 부작용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불법 유통이 여성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임신중지 약물은 임신 초기 단계에서 사용하는 의약품으로,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의료진의 관리 아래 처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의료 체계 안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만 국내 도입 과정에서는 해결해야 할 쟁점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논란은 임신 몇 주까지 약물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다. 또 의사의 진료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지, 원격진료를 허용할 수 있는지,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응 체계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등도 논의 대상이다.

원 장관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의 건강권과 안전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국회와 정부가 협력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노동시장 성평등 문제도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고용평등공시제에 대해 원 장관은 현재 논의되는 500인 이상 기업뿐 아니라 향후 50~100인 규모 기업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고용평등공시제는 기업 내 남녀 임금 격차와 고용 현황 등을 공개하는 제도다. 기업이 스스로 성별 임금 격차를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원 장관은 성과급 역시 공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성과급은 매년 금액이 달라질 수 있지만 실제 임금 격차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며 “성과급을 제외하면 보이지 않는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적 충격을 안긴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성 대상 폭력 대응 체계 강화 방안도 제시했다. 원 장관은 젠더폭력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을 국가 차원에서 분석하는 ‘여성 사망검토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 운영 중인 방식으로, 피해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범죄 피해를 입게 됐는지 추적해 제도적 허점을 찾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범죄 발생 이후 처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 중심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원 장관은 광주 사건을 언급하며 “스토킹 신고 이후 피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던 현실 자체가 공권력 보호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고 즉시 보다 강력한 조치가 가능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 2022.4.10/뉴스1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 2022.4.10/뉴스1

촉법소년 연령 조정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논의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달 이내에 국무회의 보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일부 청년층에서 제기되는 남성 역차별 논란과 관련해서는 “청년 공존·공감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성별 갈등을 줄이는 방향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발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성평등가족부가 추진할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임신중지 약물 도입 문제는 여성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태아 보호, 의료 안전성 등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향후 국회와 의료계, 시민사회 사이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장기간 이어진 입법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번 정부가 실제 제도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원 장관이 직접 “직을 걸겠다”고 밝힌 만큼 임신중지 약물 도입 문제가 향후 성평등가족부의 핵심 정책 과제 가운데 하나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