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경기력 안 떨어졌다” 차범근이 진짜 걱정한 건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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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이 털어놓은 솔직한 생각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이 손흥민을 둘러싼 경기력 논란에 직접 선을 그었다.

차범근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 / 뉴스1
차범근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 / 뉴스1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2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차범근과 나눈 인터뷰를 게재했다. FIFA는 73세의 차범근이 자신의 월드컵 데뷔 40년 만에 다시 멕시코를 방문해 한국 대표팀 경기를 직관했다며, 선수 시절 겪은 월드컵과 한일 양국을 비롯한 아시아 축구의 현재 위치, 축구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차범근은 1978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SV다름슈타트, 아인트라흐트프랑크푸르트, 바이엘04레버쿠젠을 차례로 거치며 뛴 한국 축구사의 산증인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A매치 통산 성적은 136경기 58골. 작년 출전 경기 수 1위 자리는 손흥민에게 넘겼지만, 득점 부문 1위는 아직 지키고 있다. 현재 격차는 2골이다.

인터뷰에서 차범근이 가장 먼저 짚은 건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의 활용 방식이었다. 조별리그 1, 2차전에 모두 선발로 나선 손흥민은 두 경기 모두 후반 들어 일찌감치 교체됐다. 체코전에서는 손흥민 자리를 이어받은 오현규가 결승골을 터뜨려 결과로 증명됐지만, 멕시코전 양상은 정반대였다. 상대 수비를 압박하던 손흥민이 빠지자 멕시코는 라인을 끌어올리며 적극적으로 맞섰고, 한국은 끝내 골문을 열지 못한 채 1골 차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차범근 전 감독 / 뉴스1
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과 차범근 전 감독 / 뉴스1

이를 두고 차범근은 "손흥민의 경기력이 떨어졌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신체 회복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기술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손흥민은 중앙보다 측면에서 뛰는 것이 더 편안한 선수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우리는 손흥민을 중앙 공격수로 활용했고, 그 방식은 체코전에서 두 골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저는 손흥민이 팀을 위해 아주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최전방에 서 있으면 상대 수비는 큰 압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선수들에게 공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나이를 둘러싼 우려를 일축한 데는 차범근 본인의 경험도 한몫했다. 그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나섰을 때 나이는 33세, 이번 대회에 출전한 손흥민과 같은 나이다.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무게의 책임을 짊어졌던 선배이기에, 후배가 처한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어 차범근은 대표팀 전체의 전망과 한국 축구가 마주한 구조적 과제로 화제를 넓혔다. 홍명보호의 월드컵 8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지금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력은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이 팀이 8강에 갈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축구 전체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경기장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팬들의 응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이 계속해서 대표팀을 응원하고,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언젠가 한국도 진정으로 월드컵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선수들이 계속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우리가 그랬던 것보다 더 훌륭한 다음 세대의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차범근이 진짜 걱정을 드러낸 대목은 일본 축구와의 비교에서였다. 1차전 네덜란드, 2차전 튀니지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하며 우승까지 목표로 내건 일본의 상승세를 짚으며, 그는 한국 축구가 마주한 격차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차범근 전 감독 / 뉴스1
한국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차범근 전 감독 / 뉴스1

차범근은 "일본에 중요한 건 실제로 월드컵을 우승하느냐가 아니다. 그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레이 방식의 일관성이다. 프로팀을 보든, 국가대표팀을 보든, 유럽에서 뛰는 일본 선수를 보든 같은 축구 철학이 보인다. 저는 일본이 오랫동안 이런 미래를 준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 현역 시절에도 이미 30년 뒤를 내다보고 계획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의 격차를 묻는 다른 질문에서는 한층 더 직설적인 진단이 나왔다. 차범근은 "일본은 내가 독일로 가기 전부터 독일의 유스 시스템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우리가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유소년 경기를 보면 우리가 안 된다. 일본은 3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축구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일본은 협회가 주도해 만든 시스템 덕분에 포지션별로 대표팀급 선수를 두 명 이상 채울 수 있다"며 "어떤 선수를 갖다 놓아도 플레이 패턴이 같다. 그게 일본의 무기"라고 짚었다. 국내 프로 리그 수준에 대해서는 "우리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일본에 비해 조금 빈약하고, 그게 경기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스타 한두 명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누구를 세워도 같은 색깔의 축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격차의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차범근은 자신의 1986년 월드컵 출전 비화도 함께 전했다. 당시 그는 독일 브레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스터드에 발목 힘줄을 정확히 찍히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수술을 받으면 월드컵 출전이 불가능했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싶지 않아 수술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32년 만에 다시 월드컵에 나가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팀을 돕고 싶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당시에는 유럽에서 뛰는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어린 선수들 덕분에 내가 월드컵 무대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당시를 매우 애정 어린 기억으로 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의 경기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정작 차범근이 무겁게 받아들인 건 눈앞의 한 경기가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의 토대였다. 일본이 30년을 내다보고 쌓아온 유소년 시스템과 협회 차원의 일관된 철학이, 지금 당장의 스코어보다 더 본질적인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2차전 멕시코전에서는 0-1로 패하며 1승 1패(승점 3)에 머물러 있다. 2승을 챙긴 멕시코(승점 6)에 조 1위 자리를 내준 상태다. 한국은 25일 오전 10시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남아공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를 확정하며 32강 진출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