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 “감옥에서 자격증 취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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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목적 살인 제외하고 공소사실 대부분 인정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23)가 첫 재판에서 강간 목적 살인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피해자 측은 범행의 계획성과 잔혹성을 강조하며 엄벌을 요구했다
광주지법 형사13부(재판장 이정호)는 22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윤기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장윤기 측 국선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지만, 살인 목적이 강간인지에 대해서는 피고인과 협의가 필요하다. 다음 기일에 최종 의견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장윤기는 재판장이 변호인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묻자 동의한다고 답했다. 국민참여재판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장윤기는 옅은 황토색 반소매 수의를 입고 있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공개된 모습보다 다소 수척해진 상태였지만 재판 내내 큰 표정 변화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공소사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이를 악물거나 책상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고, 검찰이 준비한 범행 입증 자료를 간간이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은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장윤기는 지난달 5일 오전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대학교 인근 도로에서 귀가 중이던 고등학생 이채원 양(16)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그는 피해자를 차량으로 납치해 성폭행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수사 결과 장윤기는 범행 직전 우연히 이 양을 발견한 뒤 약 15분 동안 뒤따라갔다. 이 양은 약 1.2㎞ 구간을 걸어서 이동했고, 장윤기는 차량을 이용해 이를 계속 추적했다.
이후 대형 화물차 뒤편에 차량을 세운 장윤기는 피해자의 목을 조르며 차 안으로 끌고 가려 했다. 피해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저항하자 흉기를 수차례 휘둘렀다. 이 양은 다량 출혈에 따른 쇼크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시 현장을 목격하고 피해자를 도우려 달려온 고등학생 고 모 군(17)도 공격 대상이 됐다. 장윤기는 고 군에게 흉기를 네 차례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고 군은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조사 과정에서는 장윤기의 또 다른 범죄 혐의들도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장윤기는 범행 이틀 전인 지난달 3일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베트남 국적 여성 A씨(26)의 주거지에 침입해 성폭행한 뒤 약 13시간 동안 감금했다. 이후 A씨가 주변에 구조를 요청하고 직장 측이 두 사람을 분리 조치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A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윤기는 현금 100만원을 인출하고 집에서 헤어드라이어 등 짐을 챙겨 나온 뒤 흉기 두 자루를 구매했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영산강에 버린 뒤 공기계를 준비했고, 인터넷에서 '공기계 위치추적' 등을 검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장윤기가 계획적인 도주와 추가 범행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3일부터 4일까지 A씨를 찾아다니며 16차례에 걸쳐 빈 원룸에 무단 침입하거나 주거지 주변을 배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A씨를 찾지 못했고, 결국 귀가 중이던 이채원 양을 발견한 뒤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공소장에는 장윤기의 불법 촬영 혐의도 포함됐다. 그는 지난해 6∼7월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기 여중생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여성들의 사진을 불법 촬영한 사례가 여러 차례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강간 목적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벌어졌다.
장윤기 측은 "당시 블랙박스 영상 등을 확인한 뒤 강간 목적 인정 여부를 밝히겠다"며 관련 증거 열람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사실 인정 여부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를 먼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 측은 장윤기가 범행의 계획성과 중대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미래만 고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채원 양 측 법률대리인은 "피고인이 법원에 제출한 자필 의견서를 보면 강간 목적을 부인하고 있다"며 "피해자의 시간은 16세에 영원히 멈췄는데 피고인은 수형생활 중 자격증 취득과 같은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만 봐도 범행은 우발적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범죄였다"며 "양형 과정에서 이를 가중 사유로 적극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장윤기가 법원에 제출한 자필 의견서 내용도 공개됐다. 해당 의견서에는 수감 생활 중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방청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같은 날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장윤기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채원 양의 어머니는 "법이 허용하는, 아니 법을 만들어서라도 가장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도록 해달라. 그것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저희 딸을 위한 최소한의 정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향후 장윤기의 휴대전화 전자정보 분석 자료를 추가 증거로 제출하고 피해자 유족, 부검의, 피고인 지인 등을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피고인 신문도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앞으로 3~4차례 추가 공판을 열어 증거조사와 증인신문을 이어갈 방침이다. 다음 재판은 다음달 13일 오전 10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