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도 재혼 응원하더라”…이혼 1년 만에 '재혼' 결심한 스타,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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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년 만의 이혼…그가 재혼을 결심한 진짜 이유는?

이혼 후 새로운 삶에 대한 바람을 솔직하게 드러낸 스타가 있다.

심수창 일상사진. / 심수창 인스타그램
심수창 일상사진. / 심수창 인스타그램

야구 선수 출신 방송인 심수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2일 오후 10시 방송되는 TV조선 예능 '조선의 사랑꾼'에 등장하는 심수창은 개그맨 양상국의 6등급 클럽 오디션 무대에서 재혼을 향한 결심을 공개한다. 이혼 후 1년 만에 새로운 사랑에 나서려는 한 남성의 용기와 결단력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처도 응원한 '원만한 헤어짐'

심수창이 재혼을 결심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그의 이혼 과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귀책 사유가 없었다. 이는 일반적인 이혼 분쟁과는 다른 양상이다. 심수창과 전처 박모 씨의 이혼은 양측이 모두 합의한 원만한 협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이러한 점이 방송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이혼 후에도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심수창은 방송에서 전처에게 연락한 사실을 밝혔다. 그는 "전 아내에게 연락했다. 전 아내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라고 말했으며, 전처도 "응원한다"는 뜻을 비쳤다고 전했다. 이를 본 패널 김국진은 "응원한다는 것을 보면 잘 헤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8년 12월 주얼리 사업을 하던 박모 씨와 결혼한 심수창은 지난해 이혼 절차를 마무리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자녀가 없었다는 점은 재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재혼 결심한 심수창. / 유튜브 'TVCHOSUN STAR'
재혼 결심한 심수창. / 유튜브 'TVCHOSUN STAR'

자가에서 월세 오피스텔로, 새 인생의 시작

이혼은 단순한 법적 절차만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심수창은 이혼 과정에서 자신의 자가를 포기하고 월세 오피스텔로 옮겼다. 그는 "자가가 있었는데 이혼하며 많은 걸 내려놓고 월세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며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주거 이동이 아니다. 자기 집에서 월세 생활로의 전환은 경제적 변화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과정이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겠다는 표현은 이혼 과정에서 재산 분할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이 과정이 있었기에 그의 재혼 결심은 더욱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진다.

자녀에 대한 염원이 재혼을 부르다?!

재혼을 결심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자녀 문제였다. 심수창은 "원래는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자녀를 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그 다음 말에서 드러난다. 후배의 아들이 이번에 지명받아 프로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빨리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자녀를 갖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은 욕구가 그를 재혼의 길로 이끌었다. 자녀가 없었던 지난 결혼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새로운 관계에서는 이루고 싶다는 다짐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재혼 희망하는 심수창. / 유튜브 'TVCHOSUN STAR'
재혼 희망하는 심수창. / 유튜브 'TVCHOSUN STAR'

극복의 인생, 방송에서 빛을 발하다

심수창이 현재 방송인으로서 주목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그의 야구 인생과 그로부터의 극복이 있다. 2004년 프로야구 LG 트윈스에 2억 1000만원의 대졸 최고액으로 입단한 그는 한때 유망한 투수로 평가받았다. 2006년에는 10승 9패, 평균자책점 4.38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팀의 중심 투수로서 성공적인 경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야구 인생은 험난했다. 심수창은 2009년 6월부터 2011년 8월까지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큼 긴 연패를 경험했다. 18연패는 KBO 리그 투수 역대 2위의 기록이다. 2023년 한화 이글스의 장시환이 19연패를 기록하기 전까지 그는 최다 연패의 주인공이었다. 통산 42승 68패, 평균자책점 5.36으로 마무리된 야구 인생은 승패로만 보면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16년의 긴 프로 생활 동안 포스트시즌 경험도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심수창은 야구에서의 실패를 방송에서의 성공으로 전환했다. 그의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입담이 만나면서 예능인으로서의 길을 찾았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유튜브 콘텐츠 '스톡킹'의 메인 DJ로서 야구계의 뒷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을 선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자신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18연패나 2009년 조인성 포수와의 마운드 갈등까지도 유쾌한 자학 개그 소재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심수창은 프로야구 중계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을 거친 후 2024년 TVING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야구 현역 경험과 방송감각이 어우러진 그의 해설은 야구 팬들로부터도 호평받았다.


LG 트윈스 시절 심수창. / 뉴스1
LG 트윈스 시절 심수창. / 뉴스1

피는 못 속이는 야구 DNA!…대를 이어 활약하는 '부자(父子)' 스타 5선

한국 야구 역사는 개인 위업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때론 한 가족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꿈을 이어가며 만든 전설들이 있다. 야구 무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역사를 쓴 네 가지 부자 스토리가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야구 전체의 자산이 됐다. 심수창이 부러워한 (父子), 아들과 함께 만든 세대를 이은 기록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4위. 박석민 & 박준현, 거포 3루수에서 신인 1순위 파이어볼러로

삼성 라이온즈 황금기를 이끈 박석민은 KBO 리그 역대 최고 수준의 3루수였다. 그는 NC 다이노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통산 269홈런을 터뜨렸다. 골든글러브를 3회 수상한 그의 플레이는 유쾌하고 영리했으며, 많은 팬들이 그의 타격을 사랑했다. 은퇴 후 그는 현재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로 복귀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아들 박준현은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북일고 시절 그는 최고 시속 157~159km에 달하는 압도적인 강속구를 뿌렸다. 고교야구 최대어로 평가받은 그는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키움 히어로즈에 지명됐다. 계약금 7억 원은 구단 역사상 장재영에 이어 역대 2위 규모다.

특히 주목할 점은 데뷔전 기록이다. 지난 4월 26일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코치로 있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군 선발 데뷔전을 가진 박준현은 호투를 펼쳤다. 이는 역대 13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이라는 기록이다. 아버지의 팀에서,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3위. 박철우 & 박세혁, 우승 DNA 완벽한 대물림

박철우는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를 이끈 거포였다. 좌타 거포이자 지명타자로서 그는 1989년 한국시리즈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놀랍게도 그는 지명타자 포지션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이는 당시 많은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들 박세혁은 고려대를 졸업한 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그는 탄탄한 수비와 영리한 투수 리드로 주전 포수 자리를 확보했다. 2019년 두산 베어스의 통합 우승 당시 그는 팀의 우승을 이끄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역사적인 순간은 여기서 탄생했다. 박세혁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인물이 됐다. 아버지 박철우는 1989년 해태의 우승으로 그 영광을 누렸고, 아들 박세혁은 2019년 두산의 우승으로 그 뒤를 이었다. 현재 박세혁은 NC 다이노스를 거쳐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베테랑 포수 중 한 명으로서 팀의 안방을 책임지고 있다.

2위. 정회열 & 정해영, 31년 세월을 뛰어넘은 동일 팀 부자 우승

정회열은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1993년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그는 주전 포수로 안방을 지킨 우승 공신이었다. 은퇴 후 그는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와 2군 감독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아들 정해영은 아버지가 뛰던 팀에 입단했다. 2020년 KIA 타이거즈는 정해영을 1차 지명으로 선택했다. 이는 KBO 역사상 최초의 동일 팀 부자 1차 지명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정해영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확고한 자리를 잡아갔다. KBO 최연소 100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운 것도 그였다. 2024년 KIA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 당시 정해영은 마지막 우승 순간 마운드를 지킨 헹가래 투수가 됐다. 아버지 정회열이 우승한 지 31년 만에, 같은 팀 KIA에서 우승 반지를 끼는 전설적인 패밀리 스토리가 완성됐다.

바람의 손자와 바람의 아들. 이정후-이종범 부자. / 뉴스1
바람의 손자와 바람의 아들. 이정후-이종범 부자. / 뉴스1

1위. 이종범 & 이정후, 바람의 아들에서 바람의 손자로

이종범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바람의 아들'이라 불린 그는 1990년대 한국 야구를 지배했다. 해태 타이거즈의 영원한 레전드로서 유격수와 외야수를 종횡무진했다. 한국시리즈 MVP 2회, 정규시즌 MVP 1회를 차지하며 KBO의 전설로 우뚝 섰다.

아들 이정후는 아버지를 쏙 빼닮은 천재적인 타격 재능을 타고났다. 그의 성장은 단계별로 증명됐다. KBO 신인왕을 거쳐 타격왕이 됐다. 2022년 정규시즌 MVP는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만들어진 기록이다.

이정후는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부자 MVP가 됐다. 아버지 이종범의 정규시즌 MVP와 아들 이정후의 정규시즌 MVP가 이뤄낸 전무후무한 역사다.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 가족이 이뤄낸 이 기록은 재현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다.

이정후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했다. 아버지 이종범은 코치로, 아들 이정후는 선수로 출전해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다. 부자가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목표로 일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24년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문을 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대형 계약을 맺고 미국 무대로 진출했다. 아버지 이종범이 쌓아올린 대한민국 야구의 자산을, 아들 이정후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바람의 아들에서 시작된 야구의 흐름은 바람의 손자로 이어져,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