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때문에 투표 못했다"...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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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3건 헌법소원, 실제 피해자 참여로 본안 심리 가능성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 가운데 첫 번째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의 선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17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일반 시민 1명이 제기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일 투표용지 부족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이 전날 지정재판부의 사전 심사 단계에서 각하됐다. 헌재는 청구인이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발생한 지역의 선거인이 아니어서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필요한 자기관련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헌법소원은 국가기관의 행위나 공권력 행사로 인해 자신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따라서 청구인은 자신이 해당 사안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거나 기본권 침해를 받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재선거 요구 메시지로 가득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컨테이너 카페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6.6.10/뉴스1
재선거 요구 메시지로 가득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컨테이너 카페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6.6.10/뉴스1

헌재 관계자는 "청구인은 자신의 주소지를 담당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준비했다는 등의 사정을 주장했어야 한다"며 "청구인의 주소지를 포함한 지역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나 투표 중단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각하는 청구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절차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료하는 결정이다. 이번 결정 역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청구인의 자격 요건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에 차질을 빚었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제기됐다. 이후 선거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비판과 함께 헌법소원, 진상조사 요구 등이 잇따랐다.

현재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헌법소원은 모두 4건이다. 이번 사건은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판단이 내려진 사례다.

나머지 3건에 대해서는 아직 지정재판부의 사전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한 건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던 도태우가 지난 8일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해당 청구에는 잠실7동 주민 등을 포함해 총 3만5216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향후 진행 중인 헌법소원 사건들의 경우 실제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한 만큼 자기관련성 여부를 충족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본안 심리에 착수하더라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헌법상 참정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선거관리 과정의 과실이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만큼 최종 판단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청구인의 자격 요건만을 판단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남은 헌법소원 사건들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된 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재선거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6.6.17/뉴스1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된 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재선거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6.6.17/뉴스1

헌법소원에서 '각하'란 무엇인가…기각·인용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번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청구 자격 문제를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청구인이 해당 사안으로 인해 직접 기본권을 침해받았는지 여부다. 이를 법률적으로는 '자기관련성'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점이 인정돼야 비로소 헌법재판소가 본안 심리에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청구인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의 선거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는 해당 청구인이 실제로 투표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본안 심리 없이 사건을 종료했다.

이처럼 청구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내려지는 결정이 바로 '각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각하는 흔히 "문을 열기도 전에 사건이 끝난 것"에 비유된다. 청구인의 자격이 없거나 청구 기간을 넘겼거나, 이미 같은 내용이 판단된 경우처럼 절차적 요건이 부족할 때 내려진다. 따라서 각하는 헌법소원의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한 결과가 아니다.

반면 '기각'은 본안 심리까지 진행한 뒤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즉 헌재가 사건 내용을 검토했지만 헌법 위반이나 기본권 침해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제도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가 심리 결과 해당 제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기각 결정이 내려진다.

반대로 '인용'은 청구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결정이다. 헌재가 국가기관의 행위나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인용 결정을 내린다.

쉽게 말해 ▲각하는 심리 자체를 하지 않고 끝내는 결정 ▲기각은 심리했지만 위헌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결정 ▲인용은 심리 결과 위헌 또는 기본권 침해가 인정되는 결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각하된 만큼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위헌성이나 참정권 침해 여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나머지 헌법소원 사건들, 특히 실제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한 사건에서 헌재가 본안 심리에 착수할지 여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만약 헌재가 향후 다른 사건에서 본안 심리를 진행하게 된다면,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헌법상 참정권 침해가 있었는지, 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첫 헌법적 판단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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