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와 X로 연대한 잠실… “우리는 소속되지 않고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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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깃발 없는 광장] ③ 피드가 사람을 모았다
기성 집회 문법 깨부순 '해시태그 집회 세대'의 등장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정당의 깃발도, 무대 위에서 군중을 지휘하는 뚜렷한 지도부도 없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수만 명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위키트리는 이 광장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고 여섯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어느 진영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이유로 모였는지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광장에선 기존 집회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리가 눈에 띈다. 특정 대학의 과 점퍼도 정당 이름이 적힌 어깨띠도 없었다. 서너 명씩 소규모로 뭉쳐 다니는 젊은 참가자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면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난다. 서로를 본명 대신 SNS 닉네임으로 부르고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데도 깍듯한 존댓말을 주고받는다. 오랜 친구의 편안함 대신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 특유의 어색함이 배어 있다.
이들은 학연이나 지연으로 모이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동원해 모이지도 않았다. SNS 알고리즘이 띄워준 게시물을 보고 광장 앞 지하철역에서 처음 만난 2030 세대의 '시위 메이트'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된 잠실 봉쇄 시위 현장엔 깃발 중심의 기성 집회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연대 방식을 만들어가는 '해시태그 세대'의 풍경이 곳곳에 있었다.
잠실은 광장보다 피드 위에서 먼저 열렸다. 스레드와 X(옛 트위터)에 지금 얼마나 모였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는 글과 사진이 쉼 없이 올라왔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자신이 본 장면을 남겼고, 뒤늦게 확인한 사람은 댓글로 물었다. "지금 상황 어떤가요?" "오늘 무슨 일 있었나요?" "정리해 주실 분 있나요?" 답이 금방 올라온다. "아직 있습니다." "저녁부터 더 모이는 분위기입니다." "처음 온 분들도 많아요." 짧은 문장이지만 현장을 가늠할 단서로 충분했다.
해시태그로 만났다가 흩어진 2030 참가자들

현장에서 만난 한 청년 참가자는 이 흐름을 두고 "개인이 뉴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들이 계속 끊기지 않고 올려주는 게 지금은 제일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알려야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것 아니냐"고 했다. 이들에게 SNS 게시물은 단순한 후기나 인증 사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올라간 짧은 글 하나가 현장 상황을 알리는 속보였고 다음 참가자의 이동을 결정하게 하는 신호였다.
집회는 매번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낮에 다녀간 사람, 퇴근 뒤 도착한 사람, 주말에만 시간을 낸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피드는 단순한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그날그날의 상황을 기록하고 정리해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통로가 됐다. "오늘 상황을 정리해달라"는 질문에 현장 참가자들이 답글을 남기면서 광장에 가지 못한 이들도 잠실의 하루를 실시간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직장인 이 모 씨는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에서 스레드로 알게 된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원래 정치나 시위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관련 게시물을 몇 번 보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혼자 가기 망설여진다는 글에 댓글을 달았고 함께 왔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금방 대화가 이어졌어요." 그는 "혼자 가더라도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들어가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장인 참가자는 "SNS를 안 봤으면 혼자서는 못 왔을 것 같다"고 했다. "누가 데려온 것도 아니고 단체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어요. 계속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현장에 사람들이 있구나,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광장에 나온 이유를 참정권에 대한 침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말 자체에 납득이 안 됐습니다. 국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선거를 치르며 문제가 생겼다면 그냥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문제의식이 정당 활동이나 단체 가입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당 활동을 하거나 단체에 들어가라고 하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SNS에서 정보를 보고, 분위기를 확인하고, 갈 수 있을 때 움직이는 방식이라 올 수 있었어요."
청년들이 굳이 스레드와 X로 동행을 구한 데에는 플랫폼의 구조적 차이가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이미 아는 사람, 곧 지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올리면 직장 동료나 친척, 동창의 눈에 곧바로 띈다. 반면 스레드와 X는 '내가 누구를 아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에 관심 있느냐'를 기준으로 게시물을 추천한다. 잠실 현장 글을 몇 번 들여다본 사람의 피드에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낯선 이들의 글이 끝없이 따라붙었다. 직장과 가족에게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익명의 또래와는 연결될 수 있는 통로. 진영 노출의 부담은 피하면서 참여 욕구는 채우는 이 절묘한 균형이 두 플랫폼을 청년 시위 메이트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참가자도 "처음에는 현장 상황을 보려고 검색만 했다"고 했다. "그런데 관련 글을 몇 번 보다 보니 계속 잠실 글이 떴어요. 정치적으로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기보다는, 적어도 이 문제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글을 계속 본 겁니다. 그 글들이 계속 보이니까 현장에 안 가도 계속 연결돼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조직이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니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화면에 같은 현장이 반복해 떠오른 것이다.
이들에게 SNS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창구가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선관위 논란이나 잠실 현장 관련 글을 몇 차례 본 사람의 피드에는 현장 사진과 참가 후기, 상황 정리, 준비물 안내, 질문과 답변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혼자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감각. 그 감각이 화면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첫 동력이었다.
게시물의 언어도 기성 집회 홍보물과 달랐다. "모입시다" "투쟁합시다"보다 "지금 분위기 이렇습니다" "처음 오는 분 참고하세요" "퇴근하고 가도 사람 있습니다" 같은 문장이 많았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그날의 상황을 전하는, 먼저 다녀온 사람이 뒤에 올 사람에게 남기는 생활형 안내에 가까웠다. 동행을 구하는 글도 마찬가지였다. "일산인데 내일 잠실 같이 갈 사람", "왕십리역 근처인데 같이갈 분", "지하철역 3번 출구에서 만나실 분" 같은 짧은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댓글과 메시지로 즉석에서 모임이 성사됐다. 정당 지부나 시민단체 사무실을 거치는 방식이 아니었다. 서로의 실명보다 닉네임을 먼저 알았고 직업이나 소속보다 오늘 갈 수 있는지, 어디서 출발하는지, 몇 시쯤 도착하는지가 먼저 오갔다.
경기 김포에서 온 한 참가자도 그런 글을 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차를 타고 왔다. "혼자 갈까 하다가 김포에서 출발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했어요. 댓글 달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시간만 맞춘 뒤 같이 왔습니다." 차 안에서 처음 인사했고, 오는 길에 현장 상황과 이번 사태를 이야기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돌아갈 때도 시간이 맞으면 같이 가고 아니면 각자 간다. 편도로만 같이 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함께 차를 탔다고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각자 보고 싶은 곳으로 움직였고 돌아가는 시간도 달랐다. 누군가는 올림픽공원까지 오는 길만, 누군가는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만 함께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 건 아니었다. 한편에선 재선거를 주장했고 다른 편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혁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누군가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언론 보도와 실제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시위 메이트와 함께 이동했다는 한 참가자는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눠봤는데 생각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재선거를 말했고 누군가는 제도 개선이 먼저라고 했어요. 그래도 지금 광장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은 비슷했습니다. 서로 100% 같은 생각이라서 만난 게 아니라 이 문제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는 마음이 겹쳤던 거죠."
이런 동행은 모임이라기보다 그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연결에 가까웠다. 오래된 친구도 같은 단체 회원도 아니지만 같은 날 같은 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서로를 깊게 알지는 못해도 처음 들어설 때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이였다. 현장에 도착하면 다시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였고 일정이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참여는 했지만 소속되지는 않았고 함께 움직였지만 묶이지는 않았다. 한 참가자는 같이 차를 탔다고 모임이 생기는 것도 현장에서 함께 걸었다고 연락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들에게 동행은 친목이라기보다 참여의 부담을 낮추는 방식에 가까웠다.

시위 메이트 문화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여성 참가자들의 안전 동기였다.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 집회의 특성상 긴장의 순간이 적지 않았다. 일부 참가자 사이에 사상 검증성 발언이 오갔고 취재진과 충돌하는 장면도 있었다. 한 번은 가스총을 소지한 80대 남성과 모형 소총을 갖고 있던 40대 여성이 경찰에 제지되는 소동도 벌어졌다. 혼자 광장에 서는 일이 누구에게나 부담일 수 있는 환경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 참가자들은 "혼자 왔으면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곁에 일행이 있으면 시비가 붙어도 대응이 수월했고 자리를 비울 때 서로 물건을 맡길 수도 있었다. 낯선 사람과의 동행이 오히려 안전을 키우는 역설이 이 광장에서는 일상이었다. 한 여성 참가자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과 함께 들어간다는 점에서 혼자 참가하는 것보다는 덜 불안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연결이 아무 경계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에는 위험이 따랐고 참가자들도 처음부터 의심 없이 움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고 이동 경로를 주변에 알리고 필요하면 중간에 빠질 수 있는 방식으로 조심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되 각자의 거리는 유지하는 식이었다.
조직보다 알고리즘이 앞선 새로운 집회 방식


광장이 넓어 처음 온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SNS는 소통 수단을 넘어 현장 정보망 역할을 했다. 참가자들은 "1-3 게이트 혼잡" "2-4 자원봉사자 부족" 같은 정보를 수시로 올렸다. 누군가 경기장 동쪽 상황을 사진으로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는 서쪽 출입구 영상을 게시했다. 이동 중인 사람도 그 글을 보고 동선을 바꿨다. 과거 집회에서 현장 방송이나 무전기가 맡던 역할의 일부를 스마트폰과 SNS가 대신한 셈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 묻는 메시지 하나면 넓은 광장에서도 쉽게 합류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관찰이 곧 수백 명의 이동으로 이어지는, 작지만 빠른 피드백의 연쇄가 광장 곳곳에서 일어났다. 올림픽공원과 특정 게이트 번호는 사실상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집결지였다.
이 현장 정보망은 전문 매체나 공식 계정만의 일이 아니었다. 각자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가 작은 중계 장비가 됐다. 누군가는 충전소 앞 상황을 올렸고 누군가는 화장실 위치나 자원봉사자 부족 구역을 공유했다. 누군가는 직접 본 장면을 짧게 정리해 올렸다. 현장의 한 청년 참가자가 말한 것처럼 개인이 곧 뉴스가 되는 구조였다. 공식 발표를 기다리는 대신 각자가 보고, 찍고, 쓰고, 퍼 나르면서 광장의 정보 흐름을 이어갔다.
서로를 부르는 방식에도 이 세대의 거리 감각이 묻어났다. 본명을 묻지 않으니 직장도, 사는 동네도, 정치 이력도 모른 채 함께 걸을 수 있었다. 닉네임은 가면이자 안전장치였다. 누군가의 신상이 드러나 불이익을 받을 일도, 누군가를 '아는 사람'으로 묶어 책임을 지울 일도 없었다. 온라인에 상시 공유되던 '올림픽공원 첫 방문자 안내'에도 그런 정서가 묻어났다. "물품지원소로 가면 친절히 안내해 주니 언제든 자원봉사에 동참하라", "친구 없이 혼자 와도 금방 친해지니 부담 갖지 말라"는 식이었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게, 그러나 서로의 거리는 지키도록. 광장의 불문율은 익명의 개인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깊게 묻지 않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언제 도착했는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정도가 오갔다. 이름을 몰라도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었고 오래 알던 사이가 아니어도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아도 각자 피드에서 다시 잠실 상황을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관계는 깊게 묶이기보다 그날의 현장 안에서 잠시 이어졌다.
이들은 특정 정당의 당원도, 뚜렷한 이념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흩어져 있다가 특정 사안이 떴을 때 해시태그를 매개로 잠시 뭉쳤다 흩어지는 '클라우드형 개인'에 가까웠다. 집회 뒤 뒤풀이나 연락처 교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음에 따로 또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직장인 박 모 씨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기성세대 시위처럼 끈끈한 조직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오늘은 오늘의 목적이 있었고 그걸 위해 만난 거죠. 끝나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다음에 또 중요한 일이 생기면 SNS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죠.“
이 느슨함은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조직이 없으니 동원도 없지만 책임을 질 주체도 없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여기 오신 분들은 다 개인 개인이라 누가 대표가 되는 게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했다. "점조직의 특성을 존중해 달라"는 당부였다.
닉네임·댓글로 이어진 잠실의 느슨한 동행들

한국의 대규모 집회는 오랫동안 깃발로 상징됐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정당과 지역 조직의 깃발이 빽빽이 꽂혔고 어느 단체가 몇 명을 동원했는지가 깃발 수로 가늠됐다. 잠실에는 그 깃발이 없었다. 사람들은 검색창에 '잠실개표소' '참정권' 같은 해시태그를 입력하고 찾아왔다. 깃발이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의 표식이었다면, 해시태그는 '내가 무엇에 관심 있는가'의 좌표였다. 소속이 아니라 관심사가 사람을 모았다. 깃발 아래 모이는 방식이 조직과 위계, 동원을 수반했다면 해시태그로 모이는 방식은 그 중간 단계를 건너뛰었다. 개인이 직접 정보에 접근하고 판단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 같은 새로움이 순수함을 보증하진 않는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빠르게 묶어주는 만큼 같은 정보만 반복해 보여주는 '메아리 방' 효과를 낳기도 한다. 광장에 'STOP THE STEAL' 문구의 태극기가 등장하고 부정선거를 단정하는 목소리가 섞여든 데에는 이런 알고리즘의 속성도 일부 작용했을 수 있다. 같은 피드가 동행을 짜고 그늘 자리를 나누게도 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확신을 함께 키우기도 했다.
정당도 시민단체도 앞에 서지 않은 광장에서 사람들은 피드를 따라 움직였다. 누군가는 댓글을 보고 출발하고 누군가는 처음 만난 사람과 잠시 같은 길을 걸었다. 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고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같은 문제의식을 보고, 같은 현장 이야기를 따라가고, 갈 수 있는 날 광장으로 향했을 뿐이다. 깃발 대신 피드가 먼저 움직였고 조직 대신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한 화면으로 불러 모았다.
해가 기울 무렵 박씨는 그날 처음 만난 메이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연락처는 주고받지 않았다. 아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또 봐요"라는 인사 대신 그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 김지현·정혁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