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서 월드컵 보여준 교사 '색출' 논란…학생이 벌인 뜻밖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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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교사 향한 '색출' 논란에 학생들 반발
수업 시간에 월드컵 경기를 보여준 교사를 학교장이 찾으려 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해당 학교 학생이 공개 성명문을 내고 반발했다.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 따르면 경북의 한 고등학교 학생회 부회장으로 알려진 A 군은 최근 학교장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작성했다. 성명문은 지난 14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등을 통해 확산됐다.
논란은 지난 12일 오전 11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 이후 불거졌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체코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시간이 평일 오전 수업 시간과 겹치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 재량으로 학생들이 수업 중 경기를 함께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 중 월드컵 보여준 교사...학생은 “살아있는 교육”
체코전 승리 이후 SNS에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함께 경기를 보며 환호하는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 가운데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장이 월드컵 중계를 틀어준 교사들을 호출하고 해당 교사를 파악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 군은 성명문에서 “월드컵 기간 선생님들께서는 학업에 지친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자 수업 시간 일부에 경기를 보여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교사와 학생이 값진 정서적 유대를 쌓는 살아있는 교육이었다”고 주장했다.
A 군은 학교장이 해당 상황을 두고 “학교에서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다. 또 월드컵 중계를 보여준 교사들을 ‘색출’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기를 틀어준 교사들을 마치 범죄자를 대하듯 옥죄고 비난했다”며 “교사를 위압적인 태도로 대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이 과연 올바른 교육관인지 묻고 싶다”고 적었다.
A 군은 학교의 교훈인 ‘정직·명랑·근면’도 언급했다. 그는 “학교장이 평소 강조하는 교훈의 가치는 어디로 갔느냐”며 교사 색출 시도 중단과 사과를 요구했다.

성명문에는 세 가지 요구도 담겼다. A 군은 교사들을 비판하며 색출하려 했던 강압적인 행태를 중단할 것, 교사의 자율성과 권위를 무시하고 교육 현장을 경직되게 만든 데 대해 사과할 것, 말로만 외치는 교훈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본질을 되찾을 것을 요구했다.
특히 그는 학생회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내세우기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개인 자격으로 요구한다”고 밝혔다. 실명까지 내건 성명문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학생의 행동을 응원하는 반응이 빠르게 이어졌다.
학교 측 “실태 파악하려다 중단”…온라인선 갑론을박
논란이 커지자 학교 측도 입장을 밝혔다. 학교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12일 월드컵 경기를 보는 일부 학생들이 응원 등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교장 선생님이 시청 실태를 파악하도록 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태 파악을 하려다가 중단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오는 25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돼 시험이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수업 시간에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이 수업 진도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다.
학교 측은 월드컵 경기를 보여준 교사나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해당 사연이 알려진 뒤 온라인에서는 수업 중 월드컵 경기를 보여준 교사의 판단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교사의 재량권과 교육적 의미를 폭넓게 보는 쪽에서는 "이 정도는 교사가 판단할 수 있는 일",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을 함께 보는 것도 교육의 일부", "같이 응원하고 환호하는 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우리 아이도 학교에서 월드컵을 봤는데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 "대한민국 경기라면 공동체 의식을 배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문제만 푸는 것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교사의 선택을 옹호했다. 학생이 성명문에서 표현한 것처럼 교사와 학생이 같은 순간을 공유하며 정서적 유대를 쌓았다는 점에 공감하는 의견도 많았다.
반대로 정규 수업 시간에 경기 시청을 허용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반응도 나왔다. 이들은 "수업 시간은 수업을 위해 보장된 시간", "월드컵을 보고 싶은 학생도 있지만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도 있을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 동의 없이 정규 수업을 경기 시청으로 대체하는 게 맞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시험을 앞둔 시기였다는 점을 들어 학교 측 판단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학교장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한 반만 본 것이 아니라 여러 반에서 봤다면 학사 운영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면 결국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반응도 확인됐다.

"왜 우리 반은 안 보여줘요?"…남은 월드컵 경기도 변수
또 다른 쟁점은 교사별 판단이 달라질 경우 생기는 형평성 문제다. 어떤 반에서는 월드컵을 보고 다른 반에서는 정상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경기를 보여준 교사는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되지만 경기를 보여주지 않은 교사는 상대적으로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일부 교사 입장에서는 학사 일정과 수업 진도, 학부모 민원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 교사가 재량으로 경기를 보여준 뒤 다른 반 학생들이 "왜 우리 반은 안 보여주느냐"고 항의하면 같은 학교 안에서도 교사들이 서로 다른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업 중 월드컵 시청 문제는 단순히 낭만과 원칙의 대립을 넘어 학교 전체의 기준과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논란은 남은 월드컵 조별리그 일정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 대표팀은 오는 19일 오전 10시 멕시코전, 25일 오전 10시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을 치른다. 두 경기 모두 평일 일과 시간대에 열리는 만큼 학교 현장에서 경기 시청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