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만 봐선 안 된다”…하나금융이 17조 8000억 쏟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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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 확대와 함께 중소 제조업 지원 필요성 제기
금융권 역할, 단순 자금 공급 넘어 산업 성장 파트너로 확대해야

하나금융그룹이 생산적 금융의 방향으로 첨단산업과 중소 제조업을 함께 지원하는 금융 구조를 제시했다. 올해 생산적 금융 공급 규모를 17조 8000억원으로 늘리고 민간금융의 역할 확대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금융권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업에 돈이 흘러가야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지 판단하고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만드는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생산적 금융의 지원 대상을 첨단산업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래 산업을 키우는 동시에 제조업 현장을 떠받치는 뿌리산업과 중소형 제조업까지 함께 지원해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한국금융연구원, 산업연구원과 함께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산업정책과 금융정책을 어떻게 연결할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생산적 금융은 자금이 부동산이나 단기 수익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 성장, 산업 전환, 기술 혁신 등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는 분야로 공급되도록 하는 금융을 뜻한다. 최근 정부와 금융권이 첨단산업 투자, 벤처·스타트업 지원, 중소기업 금융 확대 등을 함께 거론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왼쪽부터)권남훈 산업연구원장,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하나금융제공
세미나에 참석한 (왼쪽부터)권남훈 산업연구원장,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하나금융제공

세미나에서는 산업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산업 전환과 혁신성장을 위한 금융의 역할,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의 협력 방식,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원 체계의 재설계 방향 등을 폭넓게 다뤘다.

이날 축사에 나선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금융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AI와 데이터, 전력·에너지 등 기술 중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금융도 산업 변화의 속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함 회장은 민간 금융회사도 단순한 자금 공급자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산업정책의 방향을 이해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창업과 성장, 혁신, 재도약 과정까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현재 재무 상태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의 미래성과 기술 경쟁력까지 살피는 금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함 회장은 생산적 금융의 범위를 첨단산업 중심으로 좁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AI, 배터리, 에너지 같은 미래첨단산업은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이지만, 이들 산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소재·부품·장비와 기초 제조 공정을 담당하는 뿌리산업의 기반도 함께 मजबूत해야 한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용접, 표면처리 등 제조업의 기본 공정을 담당하는 산업을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첨단 기술은 아니지만 자동차, 조선, 기계, 전자 등 주요 산업의 생산 기반과 연결돼 있다. 중소형 제조업 역시 대기업과 첨단산업 공급망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에서 한국금융연구원(KIF), 산업연구원(KIET)과 함께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하나금융제공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에서 한국금융연구원(KIF), 산업연구원(KIET)과 함께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하나금융제공

하나금융은 생산적 금융이 미래 산업 투자와 전통 제조업 지원을 함께 담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첨단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산업 현장의 기초 체력이 약하면 전체 공급망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올해 생산적 금융 공급 규모를 17조 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1조 6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세부적으로는 국민성장펀드에 2조 5000억원, 그룹 자체 투자에 2조 5000억원, 대출 지원에 12조 8000억원을 배정했다.

그룹 자체 투자에는 모험자본 공급 확대, 민간 펀드 결성, 첨단산업 투자 등이 포함된다. 하나금융은 이를 통해 국가전략산업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대출 지원은 산업 전환 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 금융 역량을 높이기 위한 내부 교육도 병행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 4월 산업연구원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룹 내 생산적 금융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매분기 열리는 ‘Hana One-IB Market Forum’에 산업연구원 전문가를 초청하고 있다.

해당 포럼에서는 산업 환경 변화와 금융 대응 전략에 대한 강연이 진행된다. 하나금융은 산업별 흐름을 이해하는 금융 인력을 키워 기업 평가와 투자 판단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함 회장은 “진정한 의미의 생산적 금융은 미래첨단산업 육성에만 머물지 않고 뿌리산업과 중소형 제조업까지 아우르는 포용금융이 결합될 때 완성된다”며 “하나금융그룹은 생산적 금융의 완성도를 높이는 민간금융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