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멕시코 관중들이 체코 대신 한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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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의 기적' 효과가 아직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현장에서 MBN 기자가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승리에 흥분한 러시아 현지 여성에게 기습 뽀뽀를 당하고 있다. / MBN 방송 캡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현장에서 MBN 기자가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승리에 흥분한 러시아 현지 여성에게 기습 뽀뽀를 당하고 있다. / MBN 방송 캡처

멕시코 축구팬들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한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12일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전반전 내내 대표팀은 주도권을 잡고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에이스 손흥민을 앞세운 공격진의 창끝이 다소 무뎌 선제골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손흥민은 전반 12분을 시작으로 38분, 39분, 그리고 전반 추가시간까지 끊임없이 체코의 골문을 두드렸으나 슛이 수비수 맞고 굴절되거나 골대 밖으로 향하며 아쉬움의 탄식을 자아냈다.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하던 한국은 후반 14분 체코의 라디슬라프 크라이치에게 헤더 선제골을 허용하며 먼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홍명보호의 저력은 이때부터 발휘되었다. 후반 22분 이강인의 패스를 받은 황인범이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완벽하게 속이는 감각적인 로빙슛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기세를 잡은 한국은 후반 35분 황인범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정교한 크로스를 오현규가 골문 앞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극적인 역전극을 완성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무려 16년 만에 조별리그 첫 경기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을 획득하는 기쁨을 누렸다.

한국이 체코를 몰아붙이고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쓰는 동안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는 한국을 응원하는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한 네티즌은 경기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에서 "오늘 경기에서 멕시코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응원했다. 특히 한국이 골을 넣었을 때는 경기장 전체가 들썩였다"라고 밝혔다. 중계를 지켜본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현지 관중들이 한국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보낸 반응이 체코를 바라볼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는 말이 나왔다. 원정 경기임에도 홈그라운드 경기를 치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응원 열기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오현규와 황인범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 경기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 뉴스1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오현규와 황인범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 경기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 뉴스1

멕시코 팬들이 체코 대신 한국을 이토록 일방적이고 열렬하게 응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누리꾼들은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의 '카잔의 기적'을 꼽았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일으켰는데, 이 승리 덕분에 같은 조에서 탈락 위기에 놓여있던 멕시코가 극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감격한 멕시코 현지인들이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으로 몰려가 축제를 벌이고 한국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일화는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이때 생긴 "코레아노 에르마노, 야 에레스 멕시카노(한국 형제들, 당신들은 이미 멕시코인이다)"라는 우호적인 정서와 끈끈한 유대감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현지 축구팬들의 가슴속에 뚜렷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멕시코 내에서 신드롬을 넘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K-컬처의 폭발적인 인기도 현지인들이 한국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는 핵심 원인으로 풀이된다. 현재 멕시코는 중남미 지역에서 글로벌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본진급 팬덤'을 보유한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K-팝뿐만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 음식, 뷰티 등 대한민국 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도가 최고조에 달해 있어, 멕시코 청소년들과 젊은 층 사이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거대한 동경의 대상이다. 실제로 현지 정계에서조차 주요 공약으로 한국 아티스트 초청을 내걸 만큼 강력한 K-컬처의 영향력이 스포츠 현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한국 대표팀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과 일방적인 응원으로 분출된 셈이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를 거두자 붉은악마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 뉴스1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를 거두자 붉은악마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 뉴스1

네티즌들에 따르면 과달라하라 경기장에서도 한국 취재진과 현장 스태프들에게 하트를 날리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멕시코 팬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현장 분위기가 뜨겁고 유쾌함에 따라 과거 월드컵 대회 당시 화제를 모았던 전설적인 방송사고가 다시금 소환됐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현장에서 MBN 기자가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승리에 흥분한 러시아 현지 여성에게 기습 뽀뽀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체코전 승리로 한국은 앞서 개막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완파한 '홈 팀' 멕시코에 이어 A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다름 아닌 이번 경기에서 우리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던 멕시코다.


한국 관광객을 환영해주는 멕시코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