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만에 드러난 경북 학도병 615명...'학적부에 숨겨진 소년들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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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종군부터 미군 통역까지, 잊혀진 학도병들의 숨겨진 역할
75년 전 멈춰버린 소년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

경북교육청이 추진 중인 중·고등학교 학적부 전수조사를 통해 학도병으로 추정되는 기록/경북교육청 제공
경북교육청이 추진 중인 중·고등학교 학적부 전수조사를 통해 학도병으로 추정되는 기록/경북교육청 제공

[대구경북=위키트리]이창형 기자=6·25전쟁 당시 전장으로 향했던 학도병들의 숨겨진 발자취가 75년 만에 공식 기록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북교육청이 추진 중인 중·고등학교 학적부 전수조사를 통해 학도병으로 추정되는 615건의 기록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던 이들이 남긴 자국들을 복원하는 이 작업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 왔던 학도병 역사를 공식 기록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조사는 2022년 추진된 학적부 전산화 사업 과정에서 시작됐다.

경북교육청이 1950년 전후 제적생들을 확인하던 중 일부 제적부에 '학병'이라는 기록을 발견했고, 실제 참전 사실이 기록된 사례들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전수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조사의 대상은 1951년 이전 개교한 중학교와 1953년 이전 개교한 고등학교 등 총 121개교다.

현재 경북 지역 32개 고등학교의 학적부 1만 5,132건에 대한 조사를 우선 완료했으며, 그 결과 학도병 참전으로 추정되는 기록 615건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은 학적부를 한 장 한 장 확인하며 전쟁 당시 학생들의 삶을 보여주는 기록을 추적했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기록들은 학도병들의 다채로운 입대와 복귀 경로를 드러낸다.

'징집으로 입대' '응소' '학병' '학도병' '학도의용대원' '종군' '상이제대' '명예제대' '종군 중 복교 졸업' 등 다양한 표현들이 학적부에 남겨져 있었다.

특히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기록도 발견됐다.

포항고등학교 한 학생의 학적부에는 '출정 시 복부관통'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어 전쟁터에 내몰렸던 소년들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을 짐작하게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학생들의 종군 기록도 발견됐다.

김천여자중학교 학생들의 학적부에는 '현역군인으로 복무' '군에 입대' 등의 내용이 기록돼 있었으며, 상주여자중학교 한 학생의 학적부에는 '종군'이라는 문구가 확인돼 여성 학도병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학도병들이 수행했던 역할은 단순한 전투를 넘어섰다.

이번 조사에서는 학생들이 전쟁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음이 드러났다.

한 학적부에는 '미군 제7사단 31연대 소속 콜롬비아 통변'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통변은 오늘날의 통역 또는 의사소통 지원 역할로, 당시 학생들이 외국군과의 연락과 문서 전달, 현장 의사소통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지역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전투뿐 아니라 군 관련 문서 작성과 편지 대필, 연락 업무, 통역 보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지원했다.

학적부 속 짧은 기록들은 이들이 단순한 소년병이 아니라 자신의 배움과 지식을 나라를 위해 사용했던 학생들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 학적부 조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기록 복원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향후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도병들의 삶과 활동을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기록화할 계획이다.

더불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도병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구술 자료와 사진, 생활 기록 등 다양한 사료를 연계해 경북 학도병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임종식 경북도교육감은 "학적부에 적힌 짧은 단어들은 75년 전 멈춰버린 소년들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라며 "남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시 불러줌으로써 잊혀졌던 소년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을 통해 무명으로 남겨진 학도병들의 존재가 공식적인 역사 기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개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왔던 학도병들의 이야기가 학적부라는 공식 기록으로 확인됨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일면이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보존될 것으로 기대된다.